호머 헐버트(1863~1949)에게 붙일 수 있는 수식어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이란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는 마치 뼛속까지 한국 사랑 유전자를 지닌 듯하다. 아니 전생에 한 맺힌 한민족 역사를 가슴 아파한 한국인이었지 싶다. 그만큼 그의 일생은 한국 사랑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헐버트는 젊디젊은 23살에 조선을 만나 교육자, 한글학자, 언어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아리랑 채보자, 선교사, 황제의 밀사, 독립운동가로서 63년 동안 한민족과 고락을 함께했다.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김동진 지음, 참좋은친구)는 헐버트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이 30년간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영국 곳곳을 누비면서 발품을 팔아 헐버트의 한국 사랑을 엮어낸 일대기를 읽노라면 경탄을 금치 못한다.
헐버트가 1886년 여름 조선에 당도하자마자 한글의 우수성을 간파하고, 한자만을 고집하던 사대부에 일기당천으로 항거하며 한글 사용을 주장한 흔적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는 한글을 배운지 4일 만에 읽고 썼으며, 1주일 만에 조선인들이 위대한 문자 한글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선의 어느 학자도 발견하지 못한 실로 코페르니쿠스적 통찰력의 발로였다. 헐버트는 조선이 창제 직후부터 한글을 받아들였다면 조선에는 무한한 축복이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언어학 천재였던 그는 조선에 온 지 3년 만에 한글로 책을 저술하여, 1891년 1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사민필지>라는 한글 교과서를 탄생시켰다. ‘사민필지(士民必知)’는 선비와 백성 모두가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으로 천문, 지리, 사회를 망라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서적이다. 헐버트는 1889년 <뉴욕트리뷴>지에 <조선어The Korean Language>라는 글을 기고하여 한글 자모를 직접 그려 보이며 한글에 필적할 만한 글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지은이는 이 글은 역사상 최초의 우리 말글에 대한 언어학적 고찰이라며, “26살 외국인 청년의 글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라고 벅찬 소회를 밝혔다. 헐버트의 한글 평가는 중국과 일본에 한글을 쓰도록 권했다는 사실에서 절정에 달한다. 헐버트가 1913년 신생 중화민국에 어려운 한자 대신 한글을 쓰라고 제안한 사실을 미국 신문에서 찾아냈다.
헐버트는 또 민족의 혼 아리랑에 최초로 음계를 붙이고, 한민족이 뛰어난 음악성을 가졌다고 평가하여 우리 젊은이들이 오늘날 k-pop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을 한 세기 훨씬 전에 예언하였다. 지은이는 헐버트가 왜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요, 조선인들이 노래하면 워즈워스 같은 시인이 된다.”라고 말했는지를 헐버트의 학창시절까지 추적하여 그의 음악적 재능을 책에 담았다.
헐버트 한국 사랑의 진수는,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 직후 고종 침전에서 불침번을 선 이래 50년에 걸친 독립운동의 치열함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헐버트는 1907년 한국에서 추방된 후에도 광복을 맞을 때까지 미국에서 자신의 영달을 마다하고 38년간 강연, 기자회견, 기고 등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지은이는 한국인 중에서도 50년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드물다며 헐버트야말로 한국인이 꼭 기억하여 은혜를 갚아야 할 존재라고 주장했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이 책은 헐버트가 고종 황제의 특사를 세 번이나 지냈다는 사실은 물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였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밝히면서 우리가 몰랐던 헐버트 독립운동 역사를 소개했다. 한국인들도 한국의 독립이 가망 없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헐버트가 처절하게 펼친 독립운동 과정을 읽노라면 눈가가 촉촉해지며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일본의 한국 주권 침탈과 관련하여 미국 책임론을 들며,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에게 끈질기게 도전하여 루스벨트의 승복을 받아내는 과정도 흥미롭다.
헐버트는 루스벨트를 친구의 나라 한국을 배신한 사람이라고 <뉴욕타임스> 등을 통해 맹비난했다. 지은이는 “남의 나라를 위해 자기 나라 대통령을 상대로 이토록 장대한 싸움을 벌일 수 있겠는가”라고 탄복한다. 지은이는 헐버트의 독립운동은 정의(justice), 인간애(humanity), 올바른 애국심(right patriotism)에 기인한다면서, 우리 청소년들이 본받아야 할 가치관의 귀감으로 제시했다. 지은이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은이는 책 말미에서 헐버트가 한민족에게 남긴 가장 값진 선물을 묘파했다. 헐버트는 죽음 한 달 전인 1949년 7월 미국 신문과의 회견에서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이다.”라고 당당하게 설파한다. 그 이유로 한글, 거북선, 기록문화, 이민족 흡수문화, 한민족의 항일독립운동 등 다섯 가지를 들었다.
특별히 독립운동을 한민족의 가장 위대한 정신문화 유산이라고 칭송하며, 3·1혁명에서 보여 준 한민족의 충성심은 ‘세계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국심의 본보기’라고 평가했다.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정신문화 가치를 가장 품위 있게 그려내지 않았는가.
이 책은 또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이 탈취해 간 고종 황제 내탕금 문제 등 숱한 근대사 비사를 소개했다. 지은이는 어떻게든 일본이 강탈해 간 내탕금을 받아내 우리가 민족정기가 살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호소한다.
헐버트의 죽음 과정은 한민족과의 숙명적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1949년 7월 8일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으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빈초청장을 받아들고 대사관 문을 나설 때 AP통신기자가 86세의 헐버트에게 한국으로 가는 소회를 물었다. 헐버트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라고 답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미인이면 누구나 가장 묻히고 싶은 명예의 전당이 아닌가. 그리도 고대했던 한국 땅을 40년 만에 밟았지만 헐버트는 내한 일주일 만에 서거하여 3천만의 통곡 속에 소망대로 서울 마포 양화진 한강변에 영면하였다.
한국인이 헐버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는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한마디면 충분하다.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라도 잊어서는 아니 되오.” 중국 뤼순 감옥에서 일본 경찰에 공술한 내용이 담긴 통감부 기밀문서(1909년12월 2일)를 지은이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굴하여 소개하였다. 헐버트는 우리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건국훈장과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역사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매우 낯설다. 지은이는 헐버트를 한민족의 은인이자 가치관적 영웅이라며, 헐버트를 우리 역사에 올바로 자리매김하여 우리가 은혜를 아는 선진문화민족이 되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지은이는 “헐버트가 남긴 흔적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한민족에게 심어준 민족적 자긍심과, 한민족이 세계 속에 우뚝 서리라는 헐버트의 한민족에 대한 꿈”이라고 매듭짓는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이 책은 헐버트의 삶을 밀도 있게 조명한 보기 드문 수작의 평전으로 무한한 교훈을 주는 자기 계발서이다. 동시에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대서사시이자 감동과 희망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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