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중국과 인도는 한 묶음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할 나라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2005년 <이코노미스트>에서 중국과 인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친디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한 이래 하나의 흐름이 돼 버렸다.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는 세계경제전선에서는 한층 피부로 실감하는 이름이 친디아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두 나라를 합치면 무려 24억 명에 이르는데다 한 세대 안에 세계 교역량의 40%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고 보면 그러고도 남을 법하다. 이제 용과 코끼리로 상징되는 두 나라를 제대로 모르면 지구촌에서 못난이 신세가 되고 만다.
자연히 두 나라를 비교분석해 보여주는 책들도 다양하게 출현한다. 타룬 칸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쓴 <24억 기업가들이 온다>(세종서적)는 그런 부류의 책 가운데 하나지만 독특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두 나라의 일반적인 모습과 정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다른 저작들과 달리 직접 취재한 사회·문화적 현장과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흥미로운 경제·산업적 측면을 해부하고 있다. 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인도계 미국인인 지은이는 다른 서양학자들과 달리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한결 폭넓은 전문성을 보여준다. 칸나 교수는 지난해 한국 대기업이 서울에서 주최한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 강연자로 참석하는 등 한국 기업들에게 자문도 해왔다.
지은이는 두 나라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감흥 깊게 분석하면서 두 나라의 상호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를테면 이렇다. “인도 시스템은 잡음이 있되 편견 없는 정보를 생성한다. 중국 시스템은 잡음이 없되 편견 있는 정보를 생성한다. 한 나라의 강점은 다른 한 나라의 약점이다.” “질서, 조화, 계급이 중국이라는 국가의 변함없는 목표가 된 반면, 인도에는 다원주의, 반대, 토론이라는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다. 중국의 치국술은 언제나 질서, 조화, 계급을 지향해왔다. 중국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려는 나라라면 질서, 조화, 계급의 이면은 경직, 검열, 국가 통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속적으로 화교들을 환영함으로써 중국은 자국 경제를 밀어올린 반면, 자국 교민들에 대한 인도의 반대감정 병존은 심지어 역겨움마저 부추기면서 자국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차이점은 이것이다. 지난 세기에 걸쳐 중국은 화교들을 국가라는 구조의 일부, 국가의 현대화와 경제성장을 거들기 위해 활력을 불어넣어야할 자원으로 간주해왔다.(마오쩌둥 시대는 예외이다.)”
“중국과 달리, 독립 이후 인도는 외부 세계의 것이라고 의심하면서 외국인 투자를 반기지 않았다. 덩샤오핑이 중국을 세계에 개방하는 동안, 인도는 코카콜라와 IBM을 인도에서 내쫓았다. 중국과 달리 인도는 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그 자신의 실수 또는 중국으로부터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저자는 조국인 인도의 아킬레스건을 사정없이 건드리면서도 은연중에 중국 못지않은 강점을 내세워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는 연민의 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인도사람들은 오스카상 시상식의 자리 하나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석 하나와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여긴다. 미술품 경매업체 크리스티의 예술품 경매에 참여하는 것을 백악관 국빈만찬에 참석하는 것만큼이나 귀하게 여긴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중국에서 대단히 이례적이다. 중국의 영화 제작자들과 예술가들은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으며, 문화 대사로서보다는 정부 선전의 대변자로서 봉사한다. 인도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은 예술가는 예술가가 아니다. 실제로 그것이 그들의 정당성의 원천이다.”
“중국의 경우 바통이 총리로부터 장군에게, 그리고 당 간부에게 전달된다. 팀으로서의 인도는 국제적으로 각광받는 영화감독인 미라 나이리로부터 영적 강자인 디팍 초프라에게, 그리고 학문의 양심인 아마르티아 센,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황제인 아짐 프렘지에게 바통을 전달한다. 오렌지색 법복 차림의 비베카난다나, 왕성한 집필양을 보여주는 초프라에 해당하는 중국 사람은 없다.”
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중국과 인도 두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선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없을 것이다. 떠오르는 두 나라가 지나친 경쟁의식을 떨쳐버리고 서로 도와 미래의 길을 열어라.
<책 속의 한두 줄>
▲어떤 회의론자는 중국과 인도의 관계를 가리켜 바람결에 들리는 휘파람소리에 불과할 뿐, 다가오는 질풍노도를 가리키는 숨길 수 없는 징표는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이런 회의론은 합리적일지 모르지만 전적으로 잘못 짚은 것이다. 낙관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세계 체제에 미친 충격으로서, 중국과 인도의 세계경제 동시진입과 맞먹는 사례는 그다지 최근이 아닌 역사적 기억 속에서조차 극히 드물다. 1800년대 세계 전체 GDP 가운데 중국과 인도가 치지한 몫은 50%나 되었다. 둘째, 개념적 관점에서 볼 때 상부상조의 가능성이 높다.
▲왜 중국은 도시들을 순식간에 건설하는데 인도는 그렇지 못한가? 중국에서였다면 분명 이주 당했을 사람들이 도시 재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쫓겨나지 않은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가? 역사적으로 인도 법률은 그들의 주거지를 원칙의 문제로 보호해왔다. 대법원 판사인 지반 레디는 개발에 대한 법원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람들이 그것을 ‘분배 정의’라고 부르건, ‘인간의 얼굴을 한 개발’이라고 부르건 관계없이, 최종적인 진실은 모든 개발의 목적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개발을 위한 개발은 있을 수 없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우선순위들이 뒤집히거나 진정한 관점이 실종되어서는 안 된다.” 그 법률은 천명한다. “모든 개발의 목적은 인간이다.” 푸둥이 순식간에 건설되도록 법률에서 허용한 중국과 달리, 인도는 ‘인간의 얼굴을 한 개발’에 우선순위를 둔다. 정말이지, 쿠프 퍼레이드의 부촌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시 정부에 대고 그 판잣집들을 철거해 달라고 촉구해왔다. 종종 그런 청원에 따라 철거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판잣집들은 늘 다시 세워진다. 부자들은 그들의 정치인들을 내세우고 뇌물을 써서 그 동네를 생선 없는 열반으로 강제로 가꿀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부자들이 좀체 투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마치마르 마을의 주민들은 열심히 투표한다. 그래서 최상의 경제인(homo-economicus)인 정치가들은 빈민층의 재산권을 지켜줌으로써 그들의 투표에 보답한다.
▲“뭄바이는 결코 상하이가 될 수 없다.” 인도에서 ‘상하이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가 되었다.
▲중국과 인도가 직면한 또 다른 도전은 강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의 양쯔 강과 인도의 나르마다 강은 오랜 세월 동안 그들 나라의 시인들과 작가들에 의해 신격화되어왔다...이 어마어마한 강들의 자연적인 힘을 가두기에 충분히 거대한 댐들을 짓는 계획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각국의 그 의사결정 기질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댐 건설논란에 대응했다. 중국은 명령 권위에 의해, 인도는 민주적 반대에 의해 대응했다.
▲불행하게도 중국의 많은 금융 범죄자들은 수사관들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낼 수 있기 전에 증발한다. 2004년 중국 상무부는 지난 24년 동안 부패한 관리 4,000명이 500억 달러를 들고 도망쳤다고 추정했으며, 공안부는 500명의 중요한 ‘경제범죄용의자들’이 해외에서 살고 있다고 추정했다. 부패는 지방관리들에게 부여된, 견제 받지 않는 자치권에서 유래한다. 은행원들은 지방의 당 간부들에게 예속되어 있다.(실제로 은행원과 정책 입안자는 종종 같은 사람이다.) 이 바람에 돈을 빼돌리겠다고 작정을 하고 덤비는 은행원들을 제지할 믿을만한 방법이 없다.
▲인도 독립 후 불과 몇 년 뒤인 1954년, 네루는 인도가 사회주의 형태의 사회를 창설하기를 원한다고 선언했다. 네루식 사회주의는 인도 민간 부문의 병폐들 가운데 많은 것들의 원인으로 비판받아왔다.
▲하버드 대학교의 중국법 학자 윌리엄 애퍼드는 서구의 인식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중국인들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책을 훔치는 것은 우아한 범죄다”라는 중국 속담을 가리킨다. 중국의 사제 관계에서 베끼기는 스승에 대한 헌사의 한 형태이다.
▲인구의 70%가 평균 인구 약 1500명인 오지 마을에서 자급자족으로 먹고사는 인도에서 그 영향력은 증폭되었다. 인도의 촌락지역은 독립 이래 계속된 정책당국자들의 전반적인 무관심 때문에 제대로 기능을 갖추지 못했다. 촌락 가구들 가운데 89%는 전화가 없으며, 52%는 전기가 없다. 인도의 평균적인 절전 시간은 하루 3시간, 장마기간 중에는 17시간이다. 농촌 인구 가운데 20%는 안전한 음용수에 부분적으로만 접근하거나 아예 접근하지 못한다. 평균적인 마을은 포장도로로부터 1마일 이상 떨어져 있다. 마을 한복판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주민들은 그런 도로에 아예 접근하지도 못한다.
▲“세계 최대 과일 생산국에서 과일 주스 제품을 고작 두세 가지 밖에 구할 수 없다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겁니다. 과일은 도로변에서 썩고 있어요. 그런데 그 바로 곁에는 배고픈 어린아이들이 있지요.” 방갈로르의 경우 전체 신선 토마토 재고의 25%가 농장과 산매업자 사이의 어디에선가 썩어 없어진다.
▲“중국의 잔은 넘치고, 인도는 흘러내린 것을 줍는다.” <이코노미스트>의 2005년 3월호에 실린 이 상당히 전형적인 제목은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유치하려는 중국과 인도의 노력에 관한 대중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중국의 FDI 550억 달러는 인도의 50억 달러를 수월하게 압도한다.
▲다국적 기업의 수는 중국에 더 많지만 뿌리 깊은 다국적 기업들은 인도에 더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교민-국가 관계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어왔다. 중국은 일관되게 화교들을 특별대우해왔다. 이렇게 해서 하이구이, 즉 바다거북들의 지갑(우스개 삼아 이렇게 불리는데 그것은 중국어에서 ‘돌아오다’와 ‘거북’의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이 줄지어 중국으로 오게 되었으며 그 지갑들은 현대의 가장 위대한 성장 이야기와 관련해 중국에 도움을 주었다.
▲1997년 캐나다의 <맥린즈>지는 이처럼 독특한 현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세계의 5700만 화교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강력한 경제를 지배한다.”
▲중국의 화교관리술--1949년 중국인 해외거주자는 1억700만 명이었다. 1978년부터 화교와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중국의 모든 성, 자치구, 지방자치단체에 교무판공실이 설치되었다. 1978~1990년에 중국은 모든 화교들에 대한 차별 없는 공평한 대우를 위해 특색에 따른 배려를 추구하는 50건의 법률과 규정들을 통과시켰다. 거의 모든 공식 성명에서 중국 공산당은 화교를 중국의 일부로 지칭한다.
▲인도의 교민관리술--1970년대가 되자 인도인 이민자들의 면면은 달라졌다. 전문직 엘리트들이 대거 고국을 떠나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떠났다. 인도 언론은 이런 현상을 “두뇌유출”이라고 불렀다. 인도의 뛰어난 도시 지역 중등교육과 의학 및 기술학교를 이용해 개인의 직업적 영달을 꾀하면서 고국에는 아무 것도 되돌려주지 않는다는 비난이 이들을 향해 쏟아졌다. 비거주 인도인(NRI)을 가리켜 “결코 돌아오지 않는 인도인” 혹은 “요구되지 않는 인도인”이라고 빈정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이렇게 해서 1980년대 내내 중국이 화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조직을 잇달아 만드느라 바빴던 반면, 인도는 자국의 해외교민들을 차단했다. 속지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인도에 거주하는 인도인들만을 인도에 기여하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것은 현대에 들어 국가적 자원을 가장 잘못 관리하는 최악의 사례들이다.
▲(중국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환경미화원들이었다. 먼지를 마시지 않으려고 마스크를 낀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일했다.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전혀 없었다. 이런 모습은 인도와는 참으로 판이했다. 인도에서는 시 정부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환경미화원들을 고용한다. 이들은 일터에 나타나지 않아도 해고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친노동적 법률과 선거정치 때문에 정부의 어떤 보복위협도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설사 시 정부가 거리 청소 용역을 민간 기업자에게 맡기더라도 부패 때문에 그 용역 계약은 직접 그 일을 하지 않는 친구에게 가기 십상이다.
▲마오쩌둥의 유명한 명언인 “여자가 하늘의 절반을 떠받친다.”는 지금도 중국 촌락에서 인기 있는 구호이다. 2002년 현재 15세 이상의 중국인들 가운데 91%가 읽고 쓸 수 있었으며, 같은 연령대 여성의 87%, 남성의 95%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도 성인의 식자율은 2002년 60%인데 여성은 48%, 남성의 70%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들은 1947년에 두 건의 거대한 과제와 직면했다. 하나는 약 5억 명에 달하는 촌락사람들을 찢어지는 가난에서 구출할 경제계획을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의 다인종 사회를 반영할 정치적 틀을 만드는 것이었다. 반대가 없는 마오쩌둥의 경제 정책들과는 달리, 인도는 이런 과제들을 민주주의 하에서 달성해야만 했다. 그런데 민주주의에는 의회 절차의 고수와 개인 자유의 보호가 요구되었다. 신생 국가의 세 거물들은 이런 사안을 놓고 거듭 충돌했다. 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 인도 헌법의 기초자인 빔 라오 암베드카리, 그리고 국가의 아버지인 간디가 그들이었다. 경제-산업 정책의 문제를 놓고 간디와 네루는 상반된 견해를 지녔다. 네루는 소련식 중앙계획과 공업화에 대한 강조를 선호했다. “인도는 촌락들에서 산다”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긴 간디는 촌락 및 소규모 산업 개발을 옹호했으며, 인도의 50만 개 촌락들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촌락 수준의 지배를 추진했으며, 인도 민주주의와 개발의 체계로서 그람 스와라지(촌락공화국)를 꿈꾸었다. 암베드카리는 그람 스와라지라는 개념을 신뢰하지 않았다.
▲후커우(戶口·주민증)와 카스트의 오늘--비록 인도의 초근 대통령인 K. R. 나라야난이 달리트, 즉 불가촉천민이라고 할지라도 신분제도는 여전히 인도의 촌락들에서 단지 상징적으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생활의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후커우의 중요성은 퇴색되어 가고 있으며, 중국의 근로대중 가운데 교육 받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후커우는 당의 권위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경제적 분권화, 중국의 촌락 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식 결핍에 의해 시험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위는 대체로 여전히 도전받지 않고 있다.
▲슬프게도 인도는 네루가 천명했던 다음과 같은 목표에 아직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가 화장실을 가지게 되는 날, 나는 우리나라가 발전의 정점에 도달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도는 도시지역에서조차 오수체계에 연결된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인구는 28%에 불과하며, 단지 21%만이 정화조나 침출구덩이에 연결된 화장실을 사용한다. 약 7억5천만 명이 아직도 노천에서 똥을 누거나 비위생적인 양동이 변소를 사용한다.
▲인도 영화산업, 발리우드는 인도가 자국의 연성권력을 수출하는 주된 수단이다. 발리우드의 규모는 할리우드의 그것을 능가한다. 2003년 36억 명이 발리우드 영화 1100편을 보았다. 할리우드 영화 600편을 본 관객은 26억 명이다.
▲중국인들에게 ‘인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었다.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인 80%가 영화 산업을 지목했다. 1위와 한참 격차를 둔 2위는 불교였다. 소프트웨어는 3위였다.
▲인도의 주된 연성권력 수출품들 가운데 성공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후보는 인도의 지적 전통이다. 지난 200년에 걸쳐 사람들은 19세기 외교관 찰스 엘리엇 경이 “인도 사상의 확산”이라고 불렀던 것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들을 목격했다. 가장 현저한 사례들 중 하나는 스와미 비베카난다였다. 오렌지색 법복차림으로 다니는 승려인 그는, 1893년 시카고 세계종교대회 참석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비베카난다는 자신을 ‘작은 인도’라고 특징지었는데 이는 그가 조국의 철학을 전하는 문화적이고 영적인 대사라는 뜻이었다. 그의 영향은 미국에서 그의 가르침을 계속 실천하는 수십 개 선교 단체들에 의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더 현대에 활동하는 문화대사로는 디팍 초프라가 있다. 인도계 이민자 의사인 초프라는 미국에 거주하는 자가치유자이다. 지난 20년에 걸쳐 초프라는 미국 주류 의학계에서 내적 치유를 전파하고 요가의 복음을 퍼뜨리는 사람으로 떠올랐다.
▲카체리는 힌두어로 ‘법원’이라는 뜻이며, ‘법원 카체리’라는 용어는 ‘법원의 괴롭힘’을 의미한다. 법원 카체리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인도 시민들은 심지어 법을 명백히 준수하고 있을 때조차 정식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1997년 12월, (나의) 아버지는 뉴델리의 인근 도시인 파리다바드의 어느 공장 출입문 근처에서 운전기사가 모는 승용차를 타고 도로 나들목을 내려오고 있었다. 짐을 과적한 삼륜차 한 대가 그분이 탄 차 곁에 다가왔다. 오토바이보다는 크고 경차보다는 작은 이 전형적인 삼륜차는 일반상품이나 식품을 과적하며, 승객을 빼곡히 여섯 명까지 태운다. 아버지의 경우 그 삼륜차가 아버지의 차를 추월하려다 그만 넘어진 것이었다. 삼륜차 승객 중 한 사람은 복합골절을 입었다. 그 삼륜차는 결코 아버지 차와 접촉하지 않았다. 다친 승객은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인도 정부는 정부대로 또 다른 소송을 냈다. 전자의 소송은 보험회사에서 그 부상자에게 4만 루피(약 1천 달러)를 지급하는 선에서 두 달 만에 취하되었다. 정부는 소송과 관련하여 이런 추론을 들이댔다. 자동차 소유자인 아버지는 ‘우월한 자동차’에 타고 있었고, 다른 일방의 자동차는 더 ‘취약’했으며, 아버지는 다치지 않았고 다른 일행은 다쳤기 때문에 자동차 소유자는 그 자체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이한 추론은 단지 법조체계를 통과하는 부조리한 여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스무 차례의 법원 심리가 넉 달에서 여섯 달 간격으로 열렸는데, 심리 때마다 하찮은 일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아버지의 법원 카체리가 약식 무죄로 종결되기까지 8년이 걸렸다. 경찰관, 병원 직원, 자동차 수리공으로부터 아버지의 승용차는 잘못이 없음을 증언한다는 증언이 채취되었다. 문제의 삼륜차에 탔던 승객들 가운데 한 사람의 증언도 채취되었다.
▲누군가가 지역구 국회의원의 사무실에 불쑥 찾아가 “아내가 아파서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돈이 필요합니다” 또는 “딸이 결혼하는 데 결혼 자금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면 그 국회의원은, 많은 경우 그 아픈 아내 또는 그 결혼하는 딸을 위해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준다. 이것이 그 봉건적인 사고방식이다. 그 정치인은 이처럼 일을 성사시키는 전능한 사람이 되며, 그러한 후견인제도를 강화한다. 일반적인 인도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가 내 당면한 걱정거리를 처리해 줄 능력이 있는 한, 나는 선거가 끝나면 지역구민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보다는 그에게 투표해야 한다.”
▲공산당 당원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면서 부패 또한 늘었다. 중국 공산당의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부패한 당 간부들에 대한 형사처분확률은 거의 무시해도 될 수준이라고 말했다. 2006년에 발간된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패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중국 공산당 당원들 가운데 약 82%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다. 게다가 그 보고서에서 다룬 6년 기간 중, 처벌 받은 사람들 가운데 중국 공산당에서 출당된 사람은 18%에 불과했다.
▲중국과 인도의 협력 가능성--“협력은 두 개의 탑과 같습니다.(한 탑은 하드웨어이고, 다른 탑은 소프트웨어입니다) 힘을 합치면 우리(중국과 인도)는 세계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그날 IT산업에 아시아의 세기가 도래했음을 의미할 겁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인도 방갈로르에서 했던 연설>
▲중국과 인도는 예전에 서로 관대하게 교역하면서 아이디어와 부를 공유했다. 우리 자녀 세대의 중국과 인도는 또다시 그럴 가능성이 있다. 희망과 조심스러운 신뢰가 다시금 만연해 있다. 서구의 발흥 이래 처음으로 아시아계 기업인들은 뉴욕과 런던을 거의 전적으로 무시하고도 수십억 달러짜리 기업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의 무게중심은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를 잇는 다리--GE의 중국 사업은 인도 사업 덕분에 더 잘 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것은 조직 차원의 실험과 점진적이며 거듭된 변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GE 의료 서비스에서 중국의 하드웨어는 인도의 소프트웨어와 결합한다. 최고급 방사선 장비인 프로테우스에 들어가는 719가지 부품은 12개국의 GE 시설에서 개발되었다. 소프트웨어 알고리즘과 스캐너의 발전기 개발은 방갈로르에서 수행되었으며, 최종 조립은 베이징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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