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초상화(영문판 제목·Great Korean Portraits)--조선미/돌베개
조선시대 사람들은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래야만 대상 인물의 외형과 내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초상화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조상이나 선현 그 자체로 여겼다. 전란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초상화와 신주를 가장 먼저 챙기게 된 것도 그런 까닭이 있어서다. 조선의 초상화에서는 렘브란트나 반 고흐의 자화상,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상 등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내적 정서나 개별적 성정이 표출되지 않는다.
조선미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 겸 박물관장이 쓴 이 책(Great Korean Portraits)은 고분벽화로 유명한 고구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초상화의 이같은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왕, 사대부, 공신, 여인, 승려 등을 그린 74점의 한국 걸작 초상화를 역사적·회화적 관점에서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서 형식, 표현기법, 대상 인물의 삶까지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는 한국의 미술사 박사 1호인데다 40년 가까이 초상화를 천착해 와 ‘초상화 연구의 일인자’로 불린다.
저자는 “중국 초상화가 인물의 지위와 신분을 돋보이게 하고, 일본의 경우 개인의 특징을 잘 잡아내 변형하거나 강조한 것과 달리 조선의 초상화는 묘사의 사실성에서 두 나라의 초상화를 압도한다”고 설명한다.
배경 없는 화면에 인물 한 사람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는 것도 조선 초상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부와 권력,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시립동자나 시녀 등을 삽입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초상화와 달리 조선 초상화는 인물의 사회적 신분이나 교양, 기호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나 도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인물에 대한 과장이나 변형을 통해 개성과 미학을 표현하는 것은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도 흡사하지만 조선시대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문판은 코리아 헤럴드 주필을 역임한 언론인 이경희씨가 맛깔스럽게 번역해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 우리나무의 세계 1,2--박상진/김영사
나무에도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있다. 나무에는 사람들의 애환도 담겼다. 수백 년, 운이 좋으면 천년도 넘게 사는 나무는 스스로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책이 단순히 한국의 나무에 관한 생태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탁월한 인문서가 되는 것도 바로 감흥 깊은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다. 임학자로 출발했던 지은이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나무 문화재 연구의 한국 최고 권위자로 우뚝 섰기에 이같은 역작이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1000종이 넘는 한국나무 가운데 242종을 골라 ‘꽃이 아름다운 나무’ ‘과일이 열리는 나무’ ‘약으로 쓰이는 나무’ ‘정원수로 가꾸는 나무’ ‘가로수로 심는 나무’ 등 쓰임새별로 나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은이가 적지 않은 발품을 팔아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4대 역사서를 비롯해 고전소설, 선비들의 문집, 시가집, 근ㆍ현대 문학작품 등 나무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찾아내 꼼꼼히 정리하고 분석했다고 한다.
매화에 대한 시 91수를 모아 <매화시첩>으로 묶을 정도로 매화 사랑이 각별했던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두향이란 기생과 매화로 맺어진 사랑 이야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퇴계에게 반해 전전긍긍하던 두향은 퇴계의 각별한 매화 사랑을 알고 희면서도 푸른빛이 도는 진귀한 매화를 구해 그에게 선물했다. 매화에 감복한 퇴계는 결국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 후 퇴계는 그녀가 선물한 매화를 도산서원에 옮겨 심었다. 퇴계의 마지막 유언도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는 것이었다. 한국 1000원권 지폐에도 퇴계의 얼굴과 함께 도산서원의 매화나무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의 저명한 화가 김홍도, 신윤복, 정선의 작품 소재가 된 나무, 국민 시인으로 불리는 김소월, 유치환 시의 주인공이 된 나무 이야기도 나온다. 700여장의 나무 사진과 50여장의 옛 그림 같은 시각 자료도 풍성하다. 지은이의 앞선 저작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 <궁궐의 우리나무> <우리문화재 나무 답사기> 등을 함께 읽으면 한층 유익할 것 같다.
■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박완서/현대문학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이었던 박완서는 몇 가지 별명을 지녔다. ‘영원한 현역’이라는 별명은 80세를 일기로 지난 1월22일 타계할 때까지 쉴 새 없이 열정적으로 작품을 써온 그에게 근사하게 어울린다. 1970년 불혹의 나이(40세)로 늦깎이 등단을 한 그는 40년간 끊임없이 치유와 위로의 글쓰기를 계속해 왔다. ‘문단의 어머니’이란 별칭도 나이를 잊은 창작열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기 때문에 붙여진 것 같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란 별명은 인간의 속내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데 능했고, 이를 명쾌하고 거침없는 서사로 표현하는 데 일가견을 가진 그였기 붙여진 듯하다.
지금은 북한 땅으로 변한 개성 부근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비극의 역사를 실향의 한과 가족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체험으로 내면화해 사랑과 화해, 용서의 서사로 승화시켰다.
지난해 여름 마지막으로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도 작가 자신의 잊을 수 없는 비극적 체험을 빼놓지 않고 담았다. 그는 “6·25전쟁의 경험이 없었으면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전쟁 경험을 줄기차게 우려먹었고, 앞으로도 할 말이 얼마든지 더 남아 있는 것처럼 느끼곤 한다.”고 고백한다. 전쟁이 없었더라면 학문의 길로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회고담에서 이 책의 제목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는 마지막 소망을 이 책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이 책은 한겨레신문이 뽑은 2010년 올해의 책(국내 부문) 10권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작가는 등단작인 <나목>에서 시작해 <휘청거리는 오후> <아주 오래된 농담> <너무도 쓸쓸한 당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친절한 복희씨> 등의 소설집과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호미> 등 주옥같은 산문집을 남겼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KOREANA 영문판 2011년 여름호에 실린 것입니다.>
Kim Hak-soon Journalist
Ancient Portraits Provide Glimpses of Korea’s History and Culture
‘Great Korean Portraits’ Cho Sun-mie, Dolbegae Publishers, 352 pages, 50,000 won ($45)
Artists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painted portraits with the belief that the incorrect depiction of even a single strand of hair would end up making the subject a different person. They adhered to such rigorous attention to detail so that they might capture not only the outward appearance but also the inner spirit of the subject.
Koreans in those days regarded portraits of their ancestors or the sages as their physical manifestations deserving veneration rather than mere artworks. As such, in times of war or natural catastrophe, they would save their family portraits and ancestral tablets before anything else. Joseon portrait paintings, however, did not attempt to reveal the subject’s psychological state or individual temperament as in the self-portraits of Rembrandt and Van Gogh, or the portrait of Tokugawa Ieyasu, the 17th-century Japanese shogun.
Written by Cho Sun-mie, professor of art at Sungkyunkwan University, “Great Korean Portraits” explores these characteristics of Korean portraits, focusing on the period between the Goguryeo Kingdom (37 B.C.-A.D. 668), when portraits were produced in abundance in tomb murals, and the Joseon Dynasty. Subtitled “Immortal Images of the Noble and the Brave,” this English edition, an edited version of “Korean Portrait Painting: An Art of Forms and Images” (2009), is designed for general readers as well as Korean Studies researchers.
The original Korean edition presents portraits of 74 historical figures, including kings, the literati, meritorious retainers, women, and monks. It discusses style, expressive techniques, and even the lives of the subjects, and offers comparisons to Chinese and Japanese portraits from various perspectives. This English edition features the portraits of 50 individuals of historical and artistic importance selected from the original book. The content has been edited to give readers a glimpse of Korean history and culture through the portraits and related stories.
The first art historian to earn a Ph.D. in Korea, the author has studied portraits for nearly 40 years and is recognized as a pioneer in the field. “While Chinese portraits emphasized the subject’s social position or status and Japanese portraits tended to stress or distort the subject’s personal traits, Joseon portraits surpassed their contemporary counterparts in terms of realistic representation,” she said.
According to the author, the empty background is also a distinctive feature of Joseon portraits. Unlike the Chinese and Japanese practice of adding servant boys or maids in the background of a portrait to reveal the subject’s wealth, power, and dignity, Joseon painters used no such device to reflect the person’s social status, refinement, or tastes. In addition, the aesthetic distortions and alterations that Chinese, Japanese and even European portrait painters utilized to express individuality are not found in Korean portraits of the Joseon period.
“Great Korean Portraits” has been edited and translated into English by Lee Kyong-hee, former editor-in-chief of The Korea Herald. Thanks to her meticulous editing and practical translation, general readers as well as professionals will be able to readily enjoy this book.
A Scientist’s Cultural Account of Trees: ‘There Is a Story Hidden in Every Tree’
‘The World of Korean Trees’ (Vol. 1, 2) Park Sang-jin, Gimmyoung Publishers, 608 pages (Vol. 1), 572 pages (Vol. 2), 30,000 won
Trees bear witness to a country’s history and culture. Trees share people’s joys and sorrows. Trees, which live for hundreds or even thousands of years, have sometimes played a leading role in folktales. What makes this book an excellent work of the humanities rather than simply an ecological treatise is the inspiring storytelling that forms its framework. This colossal book on trees as cultural resources has been written by one of the foremost authorities in the field: Park Sang-jin, a dendrologist and professor emeritus of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e author has selected 242 trees, out of the more than 1,000 native Korean species, and classified them into such categories as trees with beautiful flowers, fruit-bearing trees, trees with medicinal efficacy, garden trees, and roadside trees. The interesting accounts that he tells about these trees are the result of his painstaking research, which included analyses of information related to trees from various sources encompassing the four major works of historical literature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History of Goryeo,” and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 as well as classical novels, literary anthologies, poetry collections, and works of modern and contemporary literature.
A love story about the prominent Confucian scholar Yi Hwang (1501-1570) and a professional entertainer named Duhyang is centered around a plum tree. Yi’s love for plum blossoms was so extraordinary that he wrote 91 poems on the subject, which he compiled into an anthology. According to the story, Duhyang fell in love with Yi when he was the magistrate of Danyang and presented him with a rare plum tree with bluish-white flowers. Yi was so deeply moved by the beautiful tree that this opened his heart to Duhyang. Later, the tree was transplanted at Dosan Academy, a Confucian school dedicated to Yi, and it is even mentioned in his last words: “Go and water the plum tree.” Today, the Korean 1,000-won note depicts images of Yi Hwang and the plum tree at Dosan Academy.
This book also introduces the trees that have inspired renowned Joseon artists, such as Kim Hong-do, Shin Yun-bok and Jeong Seon, and other trees that appear in the 20th-century poetry of Kim Sowol and Yu Chi-hwan. The book is rich in visual content, including some 700 photographs and almost 50 old paintings of trees. Those interested in further reading on the subject would find the author’s previous books useful: “The Secret of the Woodblocks of the Tripitaka Koreana,” “Trees Carved with History: Trees Speak of Thousand Years of Life,” and “Trees in Korean Palaces: My Exploration of Trees as Cultural Heritage.”
The Last Collection of Essays Bequeathed by ‘The Storyteller of Our Time’
‘The Road Not Taken is More Beautiful’ Park Wan-suh, Hyundae Munhak (Modern Literature), 268 pages, 12,000 won
Park Wan-suh, a masterful contemporary Korean writer, is known by several nicknames. One is “active-duty writer,” apt for a novelist who never lost her passion for writing until her death at the age of 80, in January 2011. Park was 40 years old when she made her belated literary debut in 1970. Over the next 40 years she produced numerous works that have provided healing and consolation for both herself and her readers. Park was “the mother of the literary scene,” who provided an example to younger writers with her unwavering dedication to her work. She also had keen insight into the human condition and described people in a clear and unreserved style for which she was known as “the storyteller of our time.”
Born in the vicinity of Gaeseong (Kaesong, North Korea), Park lived through the tragic war that underlies the modern history of Korea. Her personal experiences of the war and her sorrow over the loss of her hometown and deaths of her family members found expression as stories of love, reconciliation, and forgiveness.
A collection of essays published in the summer of 2010, “The Road Not Taken is More Beautiful” is Park’s final work, in which she once again describes her unforgettable experiences of the tragic war. She confesses: “I have consistently written about the Korean War — to the extent that I sometimes think I wouldn’t have become a novelist had I not lived through the war. But I feel I still have more to say about it.” Her remark that she might probably have taken the path of an academic had the war never occurred enables us to guess what she means by the book’s title, especially in relation to Robert Frost’s classic poem: “The Road Not Taken.” In this book, she expresses her last hope to readers: “I hope never to lose my resilience of mind until the day God decides to take me out of this world, because I still wish to write more good works and to be loved and needed in this life.”
Park’s last book generated such a positive response that it was listed as one of the 10 greatest books of 2010 by The Hankyoreh newspaper. Starting with her debut novel, “The Naked Tree,” Park produced a wide range of works including novels and short-story collections — “A Faltering Afternoon,” “A Very Old Joke,” “The Loneliness of You,” “Who Ate Up All the Singa?” and “Kindhearted Bok-hee” — and collections of essays — “Applause for the Back Marker,” “Why I Am Infuriated Only by the Small Stuff,” and “A 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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