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미국 민주당과 한국의 자유한국당이 보조를 맞추고 있는 듯한 모습은 역설적이다. 야당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미국의 진보정당과 한국의 보수정당이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어서다. 이질적인 두 나라 정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훈수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북미정상회담에 딴죽을 거는 듯한 공통분모를 지녔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미국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4일 북미정상회담 합의에 포함돼야 할 다섯 가지 원칙을 담은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 서한은 북한의 핵무기는 물론 생화학 무기까지 폐기하는 것을 첫 번째 요건으로 제시했다. 로버트 메넨데즈 의원은 여기에다 북한 인권 문제도 이번에 다뤄야 한다고 숟가락 하나를 얹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밖에도 북미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들과 상의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의회가 언제든지 제재 의무화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제재 유예에 관한 대통령의 권한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무리한 요구는 상대가 있는 협상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북한 비핵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협상에 곁가지를 더해 달라는 것은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민주당의 이 같은 행태는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이 목전에 둔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벌써부터 트럼프의 노벨평화상까지 거론되고 있기도 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민주당의 행태를 참고 넘길 리 만무하다. 트럼프는 주무기인 트위터로 대응했다. “오바마, 슈머(상원 원내대표), 펠로시(하원 원내대표)는 북한에 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정상회담에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조언이 필요하지 않다!” 민주당 정권이 ‘전략적 인내’만 하고 있었을 뿐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음을 꼬집은 것이다.
트럼프에게 까칠하기로 유명한 뉴욕 타임스도 칼럼을 통해 민주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민주당, 유치하게도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노력에 저항하다’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힐난했다.
“(민주당에는) 충격과 공포!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 무언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북한과의 평화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깎아내리는 데 더 관심 있어 보인다.” 국무부 한반도 담당관을 지낸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도 민주당의 요구사항이 그 누구도 달성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점에서 회담 실패를 위한 처방전과 같다고 쏘아붙였다.
한국의 자유한국당도 미국 민주당의 대응과 흡사하다. 홍준표 대표가 북미정상회담을 ‘위장평화회담’ ‘우려했던 최악 시나리오’로 매도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지난 7일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더 나아가 “종전 선언이 이뤄지는 것을 결단코 반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자유한국당 의원 36명도 트럼프에게 전달하는 성명서에서 북한의 생화학무기 폐기, 인권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해야한다며 이상주의에 함몰된 모습을 드러냈다.
궁합이 맞지 않은 두 당이 비현실적인 주장을 함께 펼치고 있는 것에서는 ‘당파적 심술’이라는 공통점이 엿보인다. 미국의 중간선거와 한국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여기에 포함된다. 진보적인 미국 민주당이 북미정상회담의 파탄을 고대하는 세력으로 꼽히는 군산복합체·네오콘(강경 신보수진영)과 보폭을 같이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민주당에게는 트럼프가 북핵문제 해결에 성과를 내는 건 ‘끔찍한 시나리오’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음에 틀림없다. 이는 미국 외교정책 기득권세력의 힘이 어느 정도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일단 성공하더라도 뛰어넘어야할 장애물이 적지 않음을 실감하는 전조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고대하고, 태극기 집회에서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친미 극우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게 자유한국당이라는 점은 또 다른 역설의 하나다. 독재정권의 후신으로 종북을 빌미삼아 인권탄압에 앞장서온 반인권 세력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더욱 관심을 쏟는 듯한 언행도 모순적이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미국 민주당과 한국의 자유한국당의 초당적 지지를 이끌어내야 시너지효과를 얻을 있다는 점이 한미 정상에게는 또 다른 과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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