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재벌가 갑질 행태를 보면 조선시대 양반가의 승경도(陞卿圖) 놀이가 불현듯 떠오른다. 당시 양반들은 승경도 놀이로 자녀들에게 복잡하기 그지없는 벼슬자리 체계를 흥미롭고 손쉽게 가르쳤다. 승경도 놀이는 종9품 말단에서 정1품 영의정까지 관직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보드게임의 일종이다. 관직 쟁탈전을 벌여 누가 먼저 높은 자리에 올라가나를 겨루는 놀이인 셈이다.
종경도(從卿圖), 종정도(從政圖)라고도 불리는 승경도는 ‘벼슬살이를 하는 도표’라는 뜻이다. 커다란 도표에 벼슬 이름을 쓰고, 윷가락 같은 ‘윤목’(輪木)을 굴려 나온 수만큼 말을 이동하다 영의정을 거쳐 마지막 벼슬인 ‘봉조하’(奉朝賀·은퇴한 고위 관리에게 특별히 내린 벼슬)에 도착하는 사람이 이긴다.
윷놀이가 서민의 오락이라면, 승경도 놀이는 양반의 게임이었다. 승경도는 태조 이성계를 도운 개국공신 하륜(河崙)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왕조와 다르게 관제를 복잡하게 개편하면서 관직을 쉽게 알리는 방법을 궁리하던 중 사찰에서 스님들이 성불도(成佛圖)라는 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창안했다고 한다. 하륜의 취지야 나쁘지 않았겠지만, 소수 지배계층을 위한 입신양명의 놀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책임감과 도덕적 의무를 가르치기보다 고관대작의 길을 자연스레 배우는 결과를 낳았다.
중앙과 지방을 합해 3800명을 넘지 않은 조선시대의 관리들은 300여 종의 관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양반 자녀들은 일곱 살 때부터 승경도 놀이를 하면서 서민들과 현격히 차별화된 삶을 꿈꿨다. 승경도 놀이를 잘하는 사람이 실제 학문적 성취보다 높게 평가받는 폐단까지 있었다고 한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청백리는 많아야 218명, 적게는 87명에 불과했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청백리 칭호를 받은 관리는 뇌물을 안 받은 사람이 아니라 이미 받을 만큼 받아 뇌물에 관심이 없어질 정도의 고위관리가 많다는 학설도 있다. 오죽했으면 청백리 되는 일이 3대가 영의정을 역임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까지 있을까.
재벌기업 총수들의 자녀 교육은 양반 가문의 승경도 놀이 차원을 넘어선다. 입사 3~4년 만에 ‘기업의 별’인 임원이 되고, 단기 속성 과외로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능력 검증이 되지 않은 자녀를 무리하게 승진시키는 사례도 예삿일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나라 경제 전체의 위험도를 키운다는 우려가 제기된 지도 오래다. 대한항공·한진그룹 삼남매와 이들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 행태에서 속속 드러나는 재벌가의 횡포와 특권 의식은 세계적인 유명세를 치르는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들은 대개 재벌 3세들이다. 이들은 정상적인 입사와 승진 절차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국내 주요 15개 그룹 28명의 재벌 3세들은 평균 28세에 입사해 31세에 임원이 됐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입사부터 임원 선임까지 걸린 기간이 평균 3년에 불과하다. 이들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수단도 대부분 일감 몰아주기 같은 편법을 통해서다. 교육과정도 일반인들과 달라 외국 유학 시간을 거치며 한국의 사회, 경제 전반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부잣집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 훌륭한 리더가 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된 적이 있다. 션 마틴 보스턴대 경영학 교수 등 3명의 연구자는 이 논문에서 ‘부잣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기도취성이 강한 어른으로 자라 조직을 이끄는 훌륭한 리더가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자식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강하고 충동적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반집 도련님이나 규수처럼 자라 특권의식만 가득한 재벌 3세들이 갑질 횡포로 구설에 오르는 것도 이런 탓이다.
총수 일가의 자녀라고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고 경영권을 승계 받는 관행은 청산돼야할 적폐의 하나다. 외국 유수 기업들처럼 재벌 자녀들이 소유권을 물려받는 대신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영에 참여하더라도 일정기간 체계적인 경영 능력을 검증받아야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은 대주주의 독점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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