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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영화 ‘남한산성’에 담긴 국가안보 메시지

 영화 ‘남한산성’에서 가장 처연한 장면은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면서 굴욕적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올리는 순간보다 막다른 상황에 처해서도 신하들을 거느리고 명나라 수도 북경을 향해 절을 올리는 ‘망궐례’(望闕禮)가 아닌가 싶다. 명나라 누구 하나 그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음에도 그랬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망궐례 격식을 둘러싸고 신료들이 난상토론을 벌인 뒤 임금과 소현세자 부자가 예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황제 생일과 설날 같은 때 행하는 망궐례는 뼛속 깊은 모화(慕華)사상과 사대주의를 표징한다. 임진왜란으로 망할 뻔한 나라를 명나라가 구원군을 보내 살려준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듬뿍 담겼다. 청나라가 침략한 병자호란 때는 명나라가 조선을 구해주기는커녕 제 코가 석자인 처지였던 건 천하가 다 아는 일이었다.

 

  임진왜란을 당한 선조는 ‘재조지은’을 잊지 못해 죽을 때까지 명나라가 있는 서쪽을 등지고 앉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의 눈으로 보면 어이없는 삽화다. 선조는 이순신과 의병들의 활약은 무시한 채 명나라에만 모든 공을 돌린 한심한 임금이었다.


 ‘인조반정’을 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광해군이 배은망덕하여 천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랑캐(후금·청)에게 성의를 베풀어 조선을 오랑캐와 짐승의 나라로 만들었다’는 죄목이었으니 극단적인 숭명반청(崇明反淸)은 예정된 수순이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허무한 일이지만, 쿠데타로 쫓겨난 광해군이 그대로 있었다면 최소한 정묘호란·병자호란은 피했을지 모른다.

                                                                  

 

  광해군도 자주국방 능력은 갖추지 못했으나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고, 나라의 존립을 위해 떠오르는 강대국에 적대적인 외교를 펼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조 당시에도 뜻있는 신료들은 명에 대한 과잉 충성과 사대적 의리 때문에 조선이 참담한 지경으로 내몰렸다고 인식했다. 사실 왕과 볼모로 잡혀간 왕족, 신하들이야 수치심만 참으면 됐을지 모르지만, 죄 없이 끌려간 50만 명에 이르는 부녀자와 민간 백성들이 당한 참상은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이처럼 교훈적인 영화 ‘남한산성’을 한가위 연휴 동안 앞 다퉈 관람한 정치인들의 촌평은 대부분 본질을 짚기보다 곁가지 만지기나 ‘제 논에 물대기’에 가깝다. 보수진영 정치인들은 주로 무능한 인조 임금에만 초점을 맞췄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문제 대응 자세를 빗대려는 목적에서다. 제1야당 대표와  한 국회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명길로 대표되는 주화파와 김상헌이 대표주자로 등장하는 척화파 모두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었을 뿐이라는 평가는 몰역사적 인식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인조와 ‘숭명반청’에 모든 걸 바친 이들이 내재적 시각에서는 충신일지 모르나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한 책임을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인조와 쿠데타로 당권을 잡은 서인들은 정권안보에만 급급했을 뿐 국가안보와 백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외교적 지혜에 방점을 찍은 서울시장의 시각도 일부는 맞지만, 나라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자주국방력 부재를 빠트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 바른정당 의원이 그나마 가장 근접한 교훈을 거론했다. 그는 (남한산성)굴욕의 가장 큰 원인으로 총체적 국력과 국방력, 정보부재에 따른 정세판단의 무능을 꼽았다. 촌평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균형 잡힌 외교정책을 펼칠 수 없었던 원천적 한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외교노선과 정책은 오늘날 더욱 유효한 반면교사다.


 자주국방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한결 한심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독자적인 방위력을 토대로 한 전시작전권 환수를 강조하자 보수진영이 벌떼처럼 달려든 것은 남한산성의 교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일이다. 내일, 아니 내년에 당장 하자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제1야당 대표가 전시작전권 환수계획을 마치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한미동맹을 파기하려는 음모로 매도하고 ‘코미디’로 치부하는 것은 침소봉대이자 견강부회다.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리처드 스틸웰 장군은 대한민국의 작전권 이양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형태로 주권을 양보한 사례다.” 자주국방과 전시작전권 환수는 보수진영이 더 큰 목소리를 내야하는 덕목임을 ‘남한산성의 굴욕’이 증언하고 있다. 자주국방능력은 단지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농단과 위협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수단이기도 해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