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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강대국이 그은 국경선의 비애

 세계지도를 보면 대부분의 국경선이 곡선이지만 아프리카는 자로 잰 듯한 직선으로 된 곳이 유독 많다. 국경선이이야말로 산과 강 같은 자연 요인, 종족, 전쟁,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말미암아 곡선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직선 국경을 지닌 까닭은 강대국의 농간 때문이다.


 아프리카 국경선을 그은 이들은 아프리카라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유럽 관료들이었다. 유럽 강대국들은 19세기 말 아프리카의 영유권을 다투었다. 이로 인해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한 관련국들은 1884년 베를린에 모여 아프리카 땅을 피자 자르듯 나눠 가졌다. ‘베를린 의정서’가 그 결과물이다. 베를린 회의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열세 나라, 미국과 오스만튀르크 등 모두 15개국이 참석했다.


 마음대로 그은 국경 지도를 갖고 아프리카 내륙을 일제히 침공한 뒤에야 경계가 지리적으로나 경제적, 민족적 실상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분쟁이 다시 불거지는 걸 바라지 않았던 침략자들이 합의를 그대로 밀고 나가 오늘날의 국경으로 남게 됐다. 서로 다른 부족이 한 국가로 묶이고 여러 나라로 나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잔혹한 내전이 그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지역도 그리 다르지 않다. 오늘날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은 영국과 프랑스 외교관들이 1918년 지리, 역사, 경제를 무시한 채 모래 위에 마음대로 그어놓은 국경선의 산물이다. 이들은 당시 쿠르드인, 바그다드 사람, 바스라 사람들은 모두 이라크 국민이 된다고 막무가내로 정했다.

 

  원래 한 나라였던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은 프랑스가 갈라놓았다. 누가 레바논 국민이 될 것인지, 누가 시리아인·요르단인이 될지를 결정한 것은 프랑스 외교관들이었다. 지정학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분할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은 그렇게 유럽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오늘(25일) 이라크의 쿠르드족 자치정부가 강대국과 주변 관련 국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강행하는 것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하겠다.” ‘쿠르디스탄’이라고 불릴 최초의 민족국가를 세우려는 이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이라크 정부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주민투표를 연기하라고 다그쳤지만, 이들은 자유를 위한 어떠한 대가도 치를 준비가 돼 있음을 천명했다. 독립을 반대하는 쪽과 진지하게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채비도 갖추었다는 신호등 또한 켰다. 쿠르드족은 최근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 격퇴전쟁에 참여해 일등공신으로 기여하면서 명분을 쌓았다.


 약 3700만 명이 이라크 외에 터키, 이란,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은 독립국가가 없는 세계 최대의 민족이다. 쿠르드족의 비극은 1920년 체결된 세브르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오토만 제국이 붕괴한 뒤 서방 전승국들은 세브르조약을 통해 쿠르드족 독립국가 창설을 약속했다.

 

  그렇지만 터키의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세브르조약이 체결될 당시 이미 이 조건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약을 재협상하는 과정에서 이 약속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1923년 세브르조약 후속으로 체결된 로잔조약에 따라 처음 약속은 효력을 잃고 말았다. 

                                                                               


 그 뒤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쿠르드족의 끊임없는 투쟁이 이어졌지만, 가혹한 탄압만 받아왔다. 비극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쿠르드 독립국가 건설은 중동 전체와 맞물려 있는 핵폭탄의 하나다. 중동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와 수자원이 대부분 이들 거주지에 분포해 이해관계가 한결 첨예하다.


 최종 투표결과가 무난히 찬성으로 나오더라도 쿠르드족이 수세기에 걸쳐 숙원한 꿈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중앙정부가 반대하는 데다 이라크의 분리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걱정하는 미국까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쿠르디스탄’ 국가 독립을 지원하기는커녕 방해만하고 있다. IS 격퇴를 위해서는 쿠르드족을 철저히 이용하면서 말이다. 쿠르드족의 눈물겨운 분투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져야 마땅하다. 우리 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과 소련이 남북한을 분할해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국인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