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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위기관리 최악정권 재확인한 황교안

 국가 지도자와 정권의 역량은 위기대처능력으로 측정된다. 위기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돌발하기 때문에 평소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은 국정농단을 제외하고도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골든타임을 놓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무능을 적실하게 보여줬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사태, 2016년 조류 인플루엔자, 2017년 구제역 같은 초대형 국가위기로 말미암아 해마다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상황이 위기인지 판단할 능력조차 없는 듯하다. 세월호 참사가 탄핵 사유의 하나로 꼽힌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뒤 권한대행을 맡은 황교안 국무총리도 대선주자 코스프레를 하느라 자신의 책무를 잊어 위기를 키우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대란이 100일 넘게 지속돼 살처분된 가금류 숫자가 무려 3천2백여만 마리를 넘어 사상 최대기록을 세운 것은 컨트롤 타워 부재와 초동 대응실패 때문이다. 황 권한대행은 생매장한 닭과 오리가 1천만 마리를 넘어선 뒤에야 부랴부랴 원점에서 재검토를 지시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월 24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를 방문, 보급품에 관해

                      설명을 듣다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함께 건빵을 먹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최악의 메르스 사태 때도 그랬듯이 이 정부에서는 위기상황마다 컨트롤 타워와 초동 대응이 논란거리로 떠오른다. AI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것은 지난해 10월28일이었지만, AI 확진 판정은 보름이 지난 11월11일에야 나왔다.

 

   첫 발견 이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AI 방역대책본부가 설치됐으나 이미 전국으로 확산된 뒤였다. 황교안 총리는 “농식품부가 컨트롤타워가 돼 운영을 하고 있으며, 저는 총리실에서 고심을 하고 있다”고 한가한 답변만 했다. 그 결과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역사상 처음으로 달걀을 수입해 오는 소동으로 이어졌다.


 같은 시기에 AI가 발생한 일본이 한국의 5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136만 마리 살처분으로 그친 위기대응과 사뭇 대조적이다. 일본 정부는 철새 배설물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뒤 3일 만에 추가로 나오자, 즉각 AI 경보 수준을 최고 단계인 ‘3등급’으로 올렸다. 한국이 발생 한 달 만에야 사상 처음 최고단계인 ‘심각단계’로 상향 조정한 것과 비교된다. 아베 신조 총리는 곧바로 산하에 AI 정보연락실을 설치했다. 방역 인력 규모도 한국의 2배 넘게 투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생한 구제역 대란 대응도 AI 파동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안이한 황교안 대행체제의 리더십이 그대로 표출됐다.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경보가 울리고 있지만, 컨트롤 타워인 황 대행은 역시 정확한 상황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구제역 백신 재고가 부족해 긴급 수입해야 할 처지임에도 황 대행은 9일 ‘이번 주 내에 백신 접종을 완료하라’란 엉뚱한 지시를 내린 뒤 평창올림픽 지원행사장으로 서둘러 갔다.

 

  A형 백신을 수입해 접종하려면 2주일 이상 방역 공백이 생기는데도 ‘주내 접종 완료’를 지시한 셈이다. 정부가 현재 보유 중인 백신으로 기존의 O형 유전자와 다른 A형을 방어하기 어렵다. 정부는 일요일인 12일에야 최근 물량 부족 사태를 빚고 있는 ‘O+A’형 구제역 백신 160만 마리분을 이달 말까지 긴급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관계부처 장관회의도 구제역 발생 닷새 만에 처음 열었다.


 2000년 구제역 발생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새벽 2시에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방역은 제2의 국방’이라며 군 투입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군 병력이 새벽 4시부터 방역과 도살 처분에 나서 조기에 차단했다.  


 하기야 메르스 사태 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2주가 지나서야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었을 만큼 위기의식이 없었다. 그래서 남은 건 38명의 소중한 목숨과 2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위기관리는커녕 출근도 하지 않은 채 관저에서 7시간동안 뭘 했는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황 대행의 마음도 콩밭에 가 있으니 국가재난이 눈에 들어올 리 있겠느냐며 쓴웃음을 짓는 사람이 많다. 황 대행의 행적을 보면 ‘대통령 코스프레’란 말이 나오지 않으면 외려 이상하다. 권한대행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위기관리다. 영화 ‘곡성’의 명대사를 빌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따져 묻고 싶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