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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내적 소모효과’의 최적 모델, 정윤회 사건

 

 정윤회 씨 국정개입의혹 사건의 전개 양상을 보노라면 게잡이 어부의 바구니 속에 담긴 게들을 연상하게 된다. 게가 한 마리일 때는 쉽게 기어 나온다. 이때는 반드시 바구니 뚜껑을 덮어야 한다. 하지만 두 마리 이상 잡아넣으면 뚜껑이 필요 없다. 서로 엉켜 절대로 기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 한마리가 바깥으로 나가려 하면 나머지 게가 집게발을 이용해 밑으로 끌어내린다. ‘게가 엄지발을 떨구고 살랴’는 속담이 있을 만큼 게의 집게발은 강력하다. 다른 게가 출구에 다다를 때쯤이면 또 다른 게가 끌어내린다. 자기만 올라가 살려는 본성이 나타나서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모든 게가 기진맥진해 거품을 내뿜으며 포기할 수밖에 없다.

 구성원이 장기적인 공동 이익을 도외시하고 눈앞의 자기이익에만 급급하면 모두가 죽는다는 교훈적인 사례다. 조직 관리학에서는 이를 ‘내적 소모효과’라고 일컫는다. 내적 소모효과는 조직에서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과제다. 

                                                                                            


  정윤회씨 국정개입의혹 문건 보도 이후 청와대와 집권세력의 양태는 바구니 속의 게 못지않다. 파워게임 없는 정권이 없었지만 박근혜 정권처럼 한심한 쟁투는 일찍이 없었다. 정권의 비선실세의혹을 받는 정윤회·박지만 씨 측이 언론전을 펴는가 하면, 전·현직 청와대 비서관 간에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전직 장관의 폭로에 현직 장·차관이 나서 비난하고 법적 대응을 운위한다.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과 그가 임명했던 전직 장관이 진실게임까지 벌이는 모습에 국민은 아연실색한다. 그러자 집권당의 한 실세는 배신자론으로 전직 장관을 때린다. 언론은 ‘권력 암투’라는 말이 모자라 ‘콩가루 정부’ ‘막장 드라마’ ‘아수라장’ ‘난장판’ ‘궁중소설’ 같은 극단의 언어를 동원한다. 선진국에 진입하려는 민주주의 국가가 맞기는 한가 싶을 정도다.


 더 큰 문제와 본질은 해법이다. 해법은 있으나 실행 주체가 이를 거부하면 실타래는 꼬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 인식 간의 괴리가 너무나 커 보인다. 박 대통령은 어제(7일)까지도 ‘터무니없는 얘기이자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는 상황인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문서 내용은 ‘사실무근’, 문서유출은 ‘국기문란’으로 대못을 박으면 검찰 수사는 해보나마나다.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문서의 신빙성은 6할 이상”이라고 증언했는데도 대통령이 공식문서를 ‘찌라시’라고 서둘러 규정하면 누워서 침뱉기나 다름없다. 참모들로부터 ‘찌라시’를 보고받는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청와대 취재 경험에 비춰봐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그 정도로 엉터리 인물들이 복무하는 곳이 아니라는 건 상식에 속한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옷로비 사건 당시 ‘마녀사냥’이라고 지레 찍어 내렸다가 망신살을 산 적이 있다. 국민이 검찰수사를 믿지 못하자 국회 청문회는 물론 특검 수사까지 가고 말았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이 청와대 문건 유출로 비롯된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중요한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문서내용의 사실 여부를 밝혀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대통령의 인사철학이다. 대통령의 인식을 보면 ‘문고리 3인방’과 김기춘 비서실장 인책, 청와대 시스템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운 듯하다. 각계에서 주문하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은 인식의 틀부터 다르다. 이번 사건과정에서 배신자론이 새삼 부각된 터라 배신을 가장 혐오한다는 박 대통령이 수첩인사에 더욱 비중을 두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사태를 복기해 보면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사 실패의 가닥이 꿰맞춰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청와대 시스템도 비밀주의 행태를 버리고 투명성으로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다. 그럴 경우 국가혁신 차원에서 신설한 인사혁신처도 장식물로 인식되기 쉽다. 현 정부의 문제는 ‘수첩 인사’, ‘밀봉 인사’, ‘나홀로 인사’, ‘불통 인사’라는 부정적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대통령의 인사 실패에서 비롯했음을 심각하게 재인식해야 한다. 2년 가까이 겪은 참담한 실패는 대부분 빗발치는 여론을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강행한 끝에 나온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12월8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