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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새 교육문화수석에게 기대해도 좋을까?

 

 지난 주 장·차관급 인사에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인사의 초점과 논란의 대상이 단연 국가안전처 장·차관과 인사혁신처장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자리에 발탁된 김상률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가 교육문화계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어서다.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기용하던 인물성향과 다른 점이다.


 추천 경위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더러 있으나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의 전공분야와 언행, 대외활동 같은 것들이 주류와 거리감이 있거나 진보적인 성향에 가까워 정권과 코드가 같지 않은 사실이 눈길을 끈다. 김 수석은 미국문학사 외에 미국소수자문학,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등 진보적 사상을 연구하고 가르쳐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대학의 시장화와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반대하고,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지지하는 성명발표에 참여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와 다른 색깔을 보여 왔다. 이 때문에 청와대 수석으로 발탁된 것이 의외라는 견해도 많다. 그 자신은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거나 정치적 활동을 해본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불명예 퇴진한 송광용 전 교육문화수석이 뉴라이트 역사관까지 지녀 논란의 대상이 됐던 점에 비춰보면 약간은 다른 기대를 갖게 한다.

                                                                                   

           
  실제 행정은 황우여 교육부장관과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지만, 김 수석의 역할로 말미암아 교육과 문화정책에 작은 변화의 씨앗이라도 가져다 줄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교육 분야에선 보수적인 교육부와 진보적인 지방교육청 간의 갈등이 첨예하다. 자율형사립고 지정취소, 누리과정 예산 편성, 9시 등교 같은 교육 현안의 조율이 발등의 불같다. 문화 분야도 정부의 지원정책에서 진영논리가 반영되는 게 눈에 띌 정도다. 정부에 다소 비판적인 목소리라도 내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받기 십상이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문화계 인사와 지식인들의 역할을 편견 없이 존중할 줄 아는 정치지도자였다. 케네디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세상을 떠난 직후 추모행사에 참석해 역사에 남는 추도사로 미국 정치의 문화적 폭을 드러내보였다.

 

  “권력이 인간을 오만으로 몰고 갈 때, 시는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줍니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 영역을 좁힐 때, 시는 인간 존재의 풍요와 다양성을 일깨워줍니다. 권력이 부패할 때, 시는 정화해줍니다...한 나라가 위대해지는 데 권력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기여는 불가결합니다. 그러나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기여 역시 불가결합니다...자유 사회에서 예술은 무기가 아니며, 논쟁과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한 시인의 추모식에 직접 참석해 추도사를 한 것은 차원이 다른 문화적 품새를 엿보게 한다. 프로스트를 존경했던 케네디는 대통령선거 유세 때마다 그의 시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의 마지막 구절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로 연설을 마무리하곤 했다.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비서관>


 취임사에서 ‘경제부흥’ ‘국민행복’과 더불어 ‘문화융성’을 3대 정책기조의 하나로 천명한 대통령이 어떠한 칸막이도 없는 교육·문화정책을 펼치는 데는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분야에서 군사정권의 복고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부에서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대통령 수석비서관의 권능에는 한계가 따르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렇잖아도 현 정부 들어 ‘뉴라이트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주요 인사들이 교육·문화계의 요직에 포진해 있는 실정이다. 뉴라이트를 노골적으로 표방하지 않으면서 뉴라이트의 가치를 공유하는 인사들의 소리 없는 약진도 있어왔다.


 교육과 문화야말로 다양성과 창의성이 생명이다. 다르지만 함께 하는, 무지개 같은 사회에서 교육과 문화는 한결 풍요로워진다. 교육과 문화 콘텐츠 생산에서는 개인의 상상력이 가장 긴요하다. 다양한 창작활동과 문화·예술 단체에 대한 지원에서도 편견이 개입되지 않은 포용성이 절실하다. 새 교육문화수석이 교육과 문화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게 이 시대에는 과욕일까.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