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관객 돌파 영화 ‘변호인’에는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원제 What is history?)가 불온서적인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 간의 공방이 벌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검사는 부림사건 피고인들이 소지한 책이 불온서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검사는 치안연구소 연구원을 ‘전문가’라며 증인으로 부른다. 이 증인은 “이 책의 전반적 흐름이 유물사관을 띠고 있으며 저자인 카는 소련에 장기 체류한 공산주의자였다”고 진술한다.
이에 맞선 변호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에서도 이 책을 필독 권장도서로 지정했다. 게다가 카는 영국 외교관으로 소련에 체류했을 뿐이다”며 검사를 몰아세운다. 그는 이어 “영국은 카가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자 자랑스러워하는 학자라고 생각하며,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도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어보기 바란다”는 영국 외교부 답변서를 낭독한다.
영화 흥행의 부수적인 효과로 군사독재시절 대학가의 필독서였던 ‘역사란 무엇인가’는 한동안 서점가에서 새삼스레 바람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부분이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이 말을 자주 인용할 만큼 명언이다. 카는 이 말에 앞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역사가는 사실들의 비천한 노예도 아니고 난폭한 지배자도 아니다.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다…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어내고 또한 자신의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한다. 둘 중 어느 한쪽에 우위를 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자신의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데없는 존재다. 자신의 역사가를 갖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하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이 명제는 ‘역사는 역사가의 해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사가의 해석이 있어야만 역사적 사실이 성립한다는 말과 같다. 역사가의 해석은 자신의 현재 입장과 가치관의 반영이다. 이러한 시각은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 역사가 레오폴트 폰 랑케의 실증사학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랑케의 역사철학은 ‘역사가의 과제는 단지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역사적 자료에 충실하면서 사료의 개념을 편견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끝까지 객관적으로 저술하는 게 랑케의 지론이다.
<E.H. 카>
랑케가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게 역사가의 임무’라고 한데 반해, 카는 “사실은 스스로 말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가 말을 걸 때만 말한다”고 반론을 편다. 카는 역사적인 사료 가운데서 골라내 가위로 잘라내고 그 부분을 풀로 붙여내는 것과 같은 ‘가위와 풀의 역사’에 반대한다.
카는 “완전한 객관적 실증주의란 불가능하다”면서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는 고전학자 알프레드 에드워드 하우스먼의 명언을 인용한다. 동시에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 사실을 주관적으로 왜곡하는 오류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카는 실증주의 역사학의 사실 숭배를 비판하는 의미에서 ‘가위와 풀의 역사’라고 불렀지만, 역사 연구의 기초적인 과정을 무시하거나 오롯이 부정하려는 뜻은 없다. ‘가위와 풀’이 역사 연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베네데토 크로체는 “모든 역사란 현재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영국 역사가 로빈 조지 콜링우드도 “역사가는 현재의 아들”이라며 역사를 역사적 인물들의 생각을 재수집한 것이라고 했다.
<레오폴트 폰 랑케>
카는 중심을 과거에 두는 역사관과 현재에 두는 역사관의 중간 입장을 따른다. 그는 사실과 주관이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며, 역사는 역사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건을 뽑아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 사실을 해석할 때 사실은 사라지고 해석만 남게 되는 허무주의적 결론도 경계했다.
카는 역사가를 흥미롭게 비유한다. “역사가란 높은 절벽 위의 독수리나 사열대에 앉은 귀빈처럼 행진하는 대열을 초연하게 바라보는 이가 아니라 단지 행진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묵묵히 걸어가는 희미한 존재일 뿐이다.” 역사학이란 역사의 일부일 뿐이어서 역사학의 변화는 역사적 사실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뜻이다.
저자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 부분에 있었던 더 게 아닌가 싶다. “역사는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한 사람들이 아닌 기존 질서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사람들에 의해 진보했다.” 그는 19세기식 단선적 진보주의자는 결코 아니다.
그는 “진보는 만인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진보를 의미하지 않으며, 또 그러한 의미를 가질 수도 없다”며 비연속적인 진보를 주장한다. 그가 연 새로운 지평은 역사가에게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요구하는 동시에 역사에 대한 인간의 책임에 비중을 둔다. 그는 “역사에서 절대자는 과거나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쪽으로 움직여 나가고 있는 미래에 있다”고 말한다.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이 책의 테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게 하나이고, ‘역사는 과학이다’라는 것이 다른 하나다. 역사가들이 연구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는 유사성이 크다고 한다. 카가 역사를 과학이라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학’과 ‘진보’는 근대의 전형적인 거대담론이 됐다. 그는 또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라.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우선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고 주문한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라는 이유에서다.
카는 ‘왜 역사는 영웅만을 기억하는가’라는 문제에도 혜안을 제시했다. 영웅을 하나의 사회 현상이자 한 시대를 보여주는 대변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인물이란 특출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일정한 사회세력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위대한 인물은 항상 현존하는 세력의 대표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존 권위에 도전하는 방법을 통해 그가 그 창조를 돕는 세력의 대표자일 것이다.” 영웅을 추앙하기 위해서 기억하는 것이라기보다 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사회 현상이자 대변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그의 견해는 많은 역사가의 동의를 얻어냈다. 영웅 한 사람이 역사를 바꿔 버렸다는 영웅주의 논리는 자연스레 힘을 잃기 시작했다.
<베네데토 크로체>
이 책은 카가 1961년 케임브리지대에서 6차례 연속으로 진행한 강연을 엮은 것이다. 당시 유럽의 역사학은 회의와 불신의 늪에 빠져 있었다. 1, 2차 세계대전,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혁명, 미·소 냉전의 개시 같은 사건을 겪은 후 유럽은 자신들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잃었다고 느꼈던 탓이다. 진보에 대한 신념 역시 흔들렸다. 카는 진보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영국 사회에 희망을 주려했다.
역사의 본질을 묻는 역사철학서인 ‘역사란 무엇인가’가 나오자 20세기 역사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 책은 영국과 미국의 역사학·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잊지 않으려는 지식인들에게 이 책은 전범(典範)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역사학 이론서로 자리 잡았음은 물론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장착한 이 책은 1960∼1980년대 세계 각국에서 번역·출판돼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장 큰 파장을 낳은 곳은 저자의 모국인 영국과 유럽이 아니라 한국이었다. 1970년대 유신체제와 1980년대 군부독재체제를 거치면서 사회 변혁운동에 온몸을 던졌던 청년들에게는 이 책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한여름의 소낙비와 같았다.
무엇보다 386세대(지금은 486세대라 부른다)를 키운 공로자 가운데 하나가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이 책은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한국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 운동권에서 의식화를 위한 필수 교재로 사용된 것은 카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이 책은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역사학 입문서이면서 역사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은 우리나라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다.
이 책에는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공감을 표시한 대목도 군데군데 나온다. 군사독재정권은 이 책을 금서로 묶는 명분을 여기서 찾았다. 카는 ‘소비에트 러시아 역사’라는 불후의 저작을 남기고 한때 친소비에트·스탈린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엄격하게 말해 공산주의자도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철저한 현실 분석을 바탕으로 삼은 엄격한 리얼리스트였다. 그는 국제정치에서 이상주의나 자유주의의 허약한 인식을 현실주의의 이름으로 공박하곤 했다. 이 때문에 좌·우파 양쪽으로부터 공격 받았다. 카는 19세기 역사학계 주류였던 랑케의 실증주의 학풍과 이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빌헬름 딜타이, 크로체, 콜링우드의 주관주의 학풍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역사학자로 평가받는다.
세월이 흐르자 카의 역사관을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진보로서의 역사’와 ‘과학으로서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카의 역사인식이 궤도수정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학에서는 과학성보다 문학성이 더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굿바이 E. H. 카’(원제 What is History Now?)라는 책은 ‘역사란 무엇인가’ 발간 40주년을 기념해 런던에서 열린 학술회의의 산물을 담고 있다. 여기서는 종교사·문화사·지성사·제국사·여성사·젠더사 같은 미시사가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그렇지만 카의 거대담론은 여전히 쉽게 허물 수 없을 만큼 우뚝하다. ‘굿바이 E. H. 카’라는 번역 제목과는 달리 카의 이론을 뛰어넘을 만한 내용은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의 학문적 산맥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4년 10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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