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차르 체제의 러시아는 수많은 사회적 모순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이 때 한 편의 연애소설이 젊은이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다.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로맨스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새로운 시대의 자유와 혁명을 읊조리고 있었다.
사회적 반향은 실로 엄청났다. 시대와 삶에 질문을 던지던 청년들은 안정된 집을 박차고 나와 소설 등장인물들의 행동 방식을 모방했다. 이 소설은 젊은 지식인들에게 사랑과 혁명, 진보와 인간애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대위의 딸’,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와 더불어 러시아 혁명 문학사의 걸작으로 꼽힌다. 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인민주의 혁명가 체르니셰프스키는 이 소설도 옥중에서 탈고했다.
혁명을 꿈꾸던 청년 니콜라이 레닌도 여느 러시아 청년들이 그랬듯이 이 소설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이 소설이 나온 지 꼭 40년이 되던 1902년 레닌은 똑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은 나를 완전히 압도했다. 이 책은 당신의 전 생애를 내걸어도 좋을 만한 훌륭한 소설”이라는 극찬과 함께. 정치 팸플릿인 레닌의 책 ‘무엇을 할 것인가?’((원제 Что делать?)는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고 추종하는 모든 사람들이 숙독해야할 ‘혁명교과서’가 됐다.
레닌이 서른두 살에 내놓은 이 책은 대중들의 자생성에 의존하는 조합주의적 경제투쟁을 비판하면서 의식성과 정치투쟁을 강경한 목소리로 설파한다. 사회주의 혁명과 계급해방을 위해서는 소수정예의 ‘프롤레타리아 전위당’이 나서 사회주의적 계급의식을 확고하게 심어줘야 한다는 게 주장의 고갱이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 의식이 노동자들에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오직 외부에서 들여올 수 있을 뿐이었다. 노동자 계급은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노동조합주의 의식, 즉 조합으로 단결하여 고용주들과 투쟁하고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이러저러한 법률들을 정부가 제정하도록 하는 등등의 것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마련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모든 나라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사회주의 학설이라는 것은 유산 계급의 교육 받은 대표자들, 즉 지식인들이 일궈 낸 철학, 역사, 경제 이론들에서 자라난 것이다.”
레닌이 이 책에서 주로 공격하고 있는 경제주의자들은 단순히 ‘경제투쟁’만을 중요시하는 노동조합주의 정치가들이었다. 레닌은 이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마치 자신들이 아메리카 대륙이라도 발견한 듯이 당신들이 떠벌리며 열중하고 있는 바로 그 ‘고용주의 정부에 대한 노동자의 경제투쟁’이라는 것은, 러시아 벽촌의 대중들 가운데서 파업이라는 것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사회주의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노동자들도 스스로 하고 있는 일 아닌가. 우리는 ‘경제적’ 정치라는 죽 하나만으로 먹여 키울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인들이 우리 스스로도 아는 일을 반복해서 말하지 말고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 공장의 경험과 ‘경제적’ 경험으로는 스스로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 바로 정치적 지식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더 많이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레닌은 농촌공동체를 기반으로 자본주의를 뛰어넘으려는 인민주의 노선(브나로드 운동)과는 달리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 혁명의 싹을 찾았다. 더욱 중요한 건 프롤레타리아의 ‘자생적 의식’을 지도하는 혁명 전위를 앞세웠다는 사실이다. 레닌의 전위주의는 이후 20세기 전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모델이 됐다. 프롤레타리아 바깥에서 혁명적 계급의식을 가르치는 지도부가 따로 있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중앙에 권력이 집중돼야 한다는 ‘중앙집중주의’로 이어졌다.
레닌은 여기서 이론 투쟁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혁명적 이론이 없다면 혁명적 운동도 있을 수 없다. 실천 활동의 가장 협소한 형태에 매몰되는 것이 기회주의의 최신 유행 설교와 서로 얼싸안고 있는 시기에, 이러한 생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에서 이론의 중요성은 사람들이 자주 잊고 있는 또 다른 세 가지 상황에 의해 더욱 커지고 있다. 첫째, 우리 당은 이제 겨우 자리를 잡고 제 면모를 갖춰 가고 있으며, 운동을 올바른 길에서 끌어내릴 위험이 있는 다른 경향의 혁명 사상들과 결산조차도 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둘째,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운동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민족적 쇼비니즘과 투쟁해야 한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또한 청년기의 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는 운동은 다른 여러 나라의 경험을 체현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당의 국민적 과제는 전 세계 그 어떤 사회주의 정당도 직면해 본 적이 없던 성격의 것이다. 선진적 이론으로 지도되는 당만이 전위 투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방부처리된 레닌의 시신>
레닌은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이분법적으로 강조한다. “유일한 선택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냐 둘 중의 하나다. 여기에 중도는 없다.” 레닌은 이데올로기 개념을 허위의식이라는 부정적 의미로만 사용하지 않고 긍정적 의미로 확장시켜 이데올로기가 계급투쟁에서 차지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학설로서의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경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또한 그런 경제 관계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낳은 대중의 빈곤과 비참함에 반대하는 투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계급투쟁은 나란히 발생하는 것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전제 조건 아래에서 생겨난다. 현대의 사회주의적 의식은 깊이 있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
레닌은 매스 미디어의 위력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한 혁명가였다. “매우 자주 발간되는 전 러시아적 신문 없이는 오늘날의 러시아에서 그러한 활동을 생각할 수 없다. 이 신문을 중심으로 저절로 형성되는 조직, 신문의 협력자들의 조직이 이른바 모든 것, 즉 최악의 혁명적 ‘탄압’의 시기에 당의 명예, 권위, 계승성을 지켜나가는 것에서부터 전 국민적인 무장봉기를 준비하고 그 시기를 정하고 봉기를 수행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할 준비를 갖출 것이다.”
<끌어내려지는 레닌 동상>
레닌은 하부구조의 상부구조 결정론에 입각한 카를 마르크스의 소극적 언론관과 달리 언론 자체를 혁명의 수단이자 주체로 규정했다. ‘신문은 비단 집단적 선전자, 집단적 선동자일 뿐 아니라 집단적 조직자’라는 유명한 명제가 그것이다. 이 같은 언론관은 이후 모든 공산국가가 신문뿐 아니라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매스 미디어 전반에 적용하는 전체주의적 언론통제의 패러다임으로 발전했다.
레닌이 이 책을 쓴 것은 1901년 봄부터 겨울 사이였다고 한다. 스스로 서문에 고백했듯이 짧은 시간에 쫓기면서 쓰다 보니 ‘문학적 퇴고가 부족한 상태’로 출간됐다. 자연히 간결하고 정연한 문장과는 거리감이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당시 러시아의 혁명운동은 이론·조직·실천면에서 모두 변화와 정립이라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레닌이 서둘러 책을 내게 됐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아노프가 본명인 그는 이 책에서 니콜라이 레닌이란 필명을 처음 썼고, 그 후 공식 이름으로 사용한다.
이 책은 1917년에 성공한 소련 공산 혁명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기초 문서가 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레닌의 또 다른 대표작 ‘제국주의론’과 더불어 전 세계 혁명가들의 필독서가 되기에 이르렀다. 마르크스주의당 창설을 위한 각종 이데올로기적 원칙 수립이라는 지대한 역할을 수행해 국제 공산주의 운동사에 결정적인 획을 그었다.
20세기 후반까지 중국의 마오쩌둥,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베트남의 호찌민,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 북한의 김일성에 이르기까지 지구 표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의 정치·사상적 지도자들이 이 책을 읽고 따랐다. 이 책은 자연스레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역사를 송두리째, 그것도 부정적으로 바꿔 놓았다. 사회주의 체제는 20세기의 맨 윗자리에 놓일만한 격변이었다.
이 책은 1980년대 한국의 386세대 운동권 바이블이 되기도 한다. 온건진보 정치인이 된 심상정 의원 같은 이는 급진주의자였던 20대 때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째로 암송할 정도였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이 책에 그토록 열광적이었던 현상은 당시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왜,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알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소련·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붕괴와 더불어 20세기 지구촌을 혁명의 열기로 달궜던 레닌과 ‘무엇을 할 것인가’는 악마의 다른 이름으로 전락했다. 레닌이 마르크스 사상에서 폭력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발굴한 것이 결국 독이 됐다.
레닌과 ‘무엇을 할 것인가’는 21세기 들어 좌파들에 의해 복권이 시도되고 있는 모습이 간간이 엿보인다. ‘레닌 재장전’이라는 책의 출간은 그 일환이다.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프레데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같은 쟁쟁한 좌파 지식인 17명이 공동 저자다. 2001년 독일 에센의 문화과학연구소가 ‘무엇을 할 것인가’ 출간 100주년을 맞아 개최한 국제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논문들이 기반이 됐다.
2013년 봄 사망한 중남미 좌파의 대부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생전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날 기회가 있으면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물하겠다고 밝힌 적도 있다. 워너 본펠드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를 비롯한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글을 모은 ‘무엇을 할 것인가’는 혁명의 교본으로 쓰였던 레닌의 이 책을 중심으로 레닌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책이다.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정치이념이 애써 복권을 꿈꾸는 것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을 때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몸부림인 듯하다.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4년 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9)--<손자병법> 손무 (1) | 2014.04.01 |
---|---|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8)--<한비자> 한비 (1) | 2014.03.04 |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6)--<나의 투쟁> 아돌프 히틀러 (1) | 2013.12.30 |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5)--<국가론> 플라톤 (0) | 2013.12.04 |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4)--<인구론>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0) | 2013.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