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 인생--사랑이 꽃피는 밥집: 민들레 국수집 대표 서영남
이 식당의 간판에는 분명히 ‘국수집’이라고 쓰여 있지만 메뉴에 국수가 없다. 밥과 7~8가지 푸짐한 반찬이 곁들여진 뷔페식이다. 음식 값은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손님은 모두 예외 없이 VIP대접을 받는다. 특이한 식당임에 분명하다. 전형적인 달동네인 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 화도고개 꼭대기에 자리 잡은 ‘민들레국수집’이 그곳이다.
형식만 보면 노숙자나 불우 이웃을 위한 무료급식소이지만, 내용과 정신은 여느 급식소와 사뭇 다르다. 한 손님이 하루에 여러 번 와서 식사를 해도 문전박대하지 않는다. 실제로 하루 다섯 번 와서 정상적인 양의 밥을 먹는 사람도 있다. 아주 많게는 하루에 일곱 번 와서 먹은 손님도 있었다고 한다. 늘 배가 고픈 사람은 먹고 돌아서면 또 시장하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 곳곳에서 오는 노숙자들은 이곳에서 먹고 싶은 양만큼 스스로 음식을 담아서 먹는다.
이 식당에서는 반드시 먼저 온 사람 순서대로 먹지 않는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와 줄을 서야하는 경우 선착순이 아니라 배가 고파 참을 수 없는 사람에게 먼저 밥을 먹게 한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찾아오면 서영남(徐英男·58) 대표가 직접 마중을 나가 자리에 앉히고 밥과 반찬을 떠 먹여 주기도 한다.
식당 한쪽 벽엔 칠판을 달아놓고 늘 오는 손님의 명단을 적어 놓았다. 밥을 얼마나 많이 먹는가. 어떤 국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국은 뭔가. 국물을 좋아하는가, 건더기를 더 좋아하는가. 명함에 ‘민들레국수집 주인장’이라고 새긴 서 대표는 세세한 식성까지 메모해 손님에게 사랑을 쏟는다. 메모장에는 손님의 과거와 현재의 처지, 희망사항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서 대표는 하루에 400~500명이 찾는 손님들을 모두 ‘VIP’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보낸 최고의 손님’이라는 뜻이다. 벽에 걸린 글귀가 그가 왜 이런 식당을 운영하는지 알려준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천주교 수사(修士)로 일하다 평신도로 환속한 서 대표는 10년 전쯤(정확하게는 2003년 4월1일 만우절) ‘민들레국수집’을 처음 열 때부터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음식 값을 받지 않는 무료급식소라는 티를 내지 않은 채 정식 음식점으로 내고 싶어 관할 보건소에 가 건강필증을 받고, 사업자 등록도 해 정식 요식업 절차를 밟았다. 석 달 동안 학원 조리사 자격 코스에 등록하고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재활용한 간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옅은 노란색 글씨로 만들어 달아 드나드는 손님들의 자존심을 배려했다. 단돈 300만원이라는 재정 형편 때문에 3평(9.9㎡)의 좁은 공간에서 시작할 때는 비참한 노숙자들에게 잔치국수라도 대접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님들이 국수를 먹으면 금방 배가 고프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밥으로 메뉴를 바꿨다. 간판은 ‘민들레국수집’ 그대로 두기로 했다. 손님들이 영양상태가 좋아져 국수를 찾을 때까지 식당을 계속하겠다는 각오가 담겼다.
서 대표는 민들레국수집을 열면서 네 가지만은 꼭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기부금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다. 부자들이 생색내는 돈은 받지 않는다. 후원회를 만들지 않는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하루 한 끼만 제공해야 하고, 한 사람당 쌀 155g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비현실적인 규정을 지켜야 한다.
“정부 규정이라는 게 인정머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배고픈 사람들이 실컷 먹지 못하게 만드는 정부의 규칙을 따를 생각이 없다. 그 대신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는 개미후원자들의 기부와 자원봉사를 바탕으로 식당을 운영해나간다. 후원회 조직과 부자들의 돈도 좋은 취지에 맞지 않다고 여긴다.
“노숙자가 게을러 밥을 주는 데만 찾아다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낮 12시에 배부하는 식권을 받아 오후 5시에 주는 밥 한 끼를 먹으려면 온종일 거기에만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다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서 대표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손님들의 자존심이다. “열심히 사셔야 합니다” 같은 은근히 강요된 주문이나 특정 종교를 내비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한번은 술 취한 젊은이가 찾아왔지만 싫은 기색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더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밥을 먹고 나가는 손님이 원하면 담배를 한 개비씩 나눠주기도 한다.
이곳을 찾는 ‘VIP’들은 10대 소년소녀에서부터 80~90대 어르신까지 실로 다양하다. 처음엔 6명이 앉으면 꽉 차던 식당이 이젠 한꺼번에 24명까지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다. 옆집을 전세로 얻었기 때문이다.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도 몰라보게 늘어났다. 금전적인 후원자도 있지만 현물로 지원하는 이들도 많다. 이웃 주민들도 쌀, 김치, 깍두기, 호박, 오이, 고기, 고등어자반 같은 다양한 식재료를 가져와 아낌없는 도움을 준다. 맨 처음 집을 빌려 준 주인은 월세의 3분의 1을 후원금으로 낸다.
서 대표는 “장 보러 가면 콩나물 파는 노점상 할머니가 콩나물 몇 상자를 내놓고, 식당에 왔던 노숙자가 휴지를 주워 판 돈을 내기도 하고, 회사에 다니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이 하루를 쉬며 봉사하러 오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일흔여덟 살 먹은 할머니가 인근 덕적도에서 직접 잡았다는 게와 바지락을 비닐봉지에 담아와 서 대표에게 건넸다.
어느덧 20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도 알아서 오고, 어쩌다 사람이 부족하면 밥을 먹던 사람들이 스스로 자원봉사에 나선다고 했다. 쌀이 남아 형편이 어려운 동네 사람들에게 20㎏들이 1000포를 나눠줄 때도 있었다. 서 대표의 가장 큰 후원자는 아내 베로니카와 대학원 휴학생인 딸 모니카다. 아내는 동인천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운영해서 번 돈을 모두 식당에 내놓고 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식사만 해결해주는 게 아니다. 자립 의지가 있는 노숙자에게는 방을 얻어 주고, 생필품과 옷가지까지 마련해 준다. ‘홀로’, 그렇지만 ‘함께’ 느슨한 공동체 형태로 살아가는 20여 명의 식구들이 월세 방 등에서 생활한다. 국수집 주변 달동네엔 이들을 위한 6~7곳의 민들레 집이 있다. 최근엔 자립해 나간 사람도 생겼다.
늘어난 후원금 덕분에 4년 전부터 ‘민들레국수집’에서 150m쯤 떨어진 곳에 아이들을 위한 ‘민들레꿈 어린이밥집’ ‘민들레꿈 공부방’ ‘민들레 책들레도서관’을 열었다. 이름 그대로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다. 학원이나 다른 공부방에 갈 수 없는, 형편이 어려운 동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간식과 저녁을 먹고 책을 읽거나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다. 36㎡ 공간의 1층에는 식당, 비슷한 넓이의 3층에는 공부방을 갖춰놓았다.
“아이들이 ‘민들레국수집’에서 어른들과 섞여 식사하기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이곳을 새로 마련했습니다. 1층은 월세로 얻었지만 3층 방은 무료로 빌렸고요, 식당은 건축업을 하는 후배가 수백만원짜리 일을 공짜로 리모델링해 주었습니다. 식탁도 기부 받았지요. 한 봉사단체가 화재보험도 대신 들어줬습니다.”
이 식당과 공부방을 이용하는 학생은 하루 평균 100여 명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가 끝난 뒤 식사와 공부를 할 곳이 마땅치 않은 동네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식당을 열어 놓고 언제든지 와서 먹게 한다. 물론 모두 무료다. 밥 먹을 때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혹시라도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창문을 가리는 이동식 가림막까지 갖춰놓았다. 3층 공부방에는 후원자와 출판사가 보내온 위인전이나 동화 책 수백 권으로 책장이 가득하다. 이곳은 서 대표의 딸 모니카가 주로 맡아 운영한다.
뿐만 아니라 서 대표는 2년 전쯤 인근 인현동에 노숙자를 위한 문화공간인 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새로 마련했다. 많은 노숙자를 만나면서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삶의 이유를 깨닫게 하는 문화라고 생각했다. “희망을 심어주는 게 가장 요긴한 일이죠.” 이 센터 건립에 천주교 인천교구사회복지회에서 3억2000만원을 지원했고, 서 대표의 오랜 지기인 건축가 이일훈씨가 리모델링을 맡는 등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1층은 따뜻한 물로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실과 최신형 컴퓨터를 갖춘 정보검색실·도서실·영화상영실로 꾸몄다. 2층엔 빨래방과 샤워실·수면실·휴게실이 어연번듯하게 만들어졌다. 샤워를 마친 노숙자들은 건조기에서 옷이 마르는 동안 준비된 간이복을 입고 낮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 이 시설을 이용하기 전에 간단한 신상명세를 적은 회원 카드만 내면 된다. 노숙자들이 책 한권을 읽고 독후감을 써와 낭독하면 3000원과 양말 한 켤레를 주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들에게 이 돈은 매우 소중한 액수다.
이곳에서는 2010년부터 인하대병원 의사 6명이 개인 차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민들레진료소도 운영한다. 하루 만성질환자 100여 명이 소중하게 이용하고 있다. 또 근처에 별도로 마련한 민들레 가게에서는 노숙자와 불우한 이웃에게 필요한 옷가지와 신발, 가방 등을 무료로 나눠준다. 이 밖에 2011년부터 필리핀 빠야따스(빈민촌) 아이들에게 옷과 생활용품을 지원하는 해외사업도 시작했다.
주 사업인 ‘민들레국수집’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목요일과 금요일만 문을 닫는다. 이날은 서 대표가 수사시절부터 해오던 본업인 교도소 재소자 교정사목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사형수와 장기수들의 말벗이 되고, 영치금도 넣어준다. 부인과 딸도 재소자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을 도와준다.
서 대표는 배고프고 힘든 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준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민들레국수집은 미국 여성 도로시 데이가 1930년대 대공황기에 뉴욕에 세운 ‘환대의 집’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데이가 지은 ‘잣대는 사랑’이란 책은 서 대표의 삶 자체와 민들레 국수집을 열 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환대의 집’은 노숙자나 실업자가 언제든 들러서 밥을 먹고, 세탁을 하고, 책을 읽고, 잠잘 수 있는 곳이다. ‘환대의 집’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서 대표는 힘들 때마다 벽에 붙여놓은 김남주 시인의 ‘사랑’ 시구를 되새긴다. ‘사랑만이/겨울을 이기고/봄을 기다릴 줄 안다/사랑만이/불모의 땅을 갈아 엎고/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천년을 두고/봄의 언덕에/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사랑만이/인간의 사랑만이/사과 하나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안다.’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국수집, 아니 사랑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가는 밥집을 보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구절(욥기 8장7절)이 떠오른다.
<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계간으로 발간하는 KOREANA 2012년 겨울호에 실린 것입니다.>
A Soup Kitchen Where Love Blooms
Author/Position Kim Hak-soon Journalist
“Many think that homeless people seek out soup kitchens because they are lazy. But, in fact, they have to spend all day standing in a queue to get a meal coupon to have a bowl of rice at 5 p.m. So, how can they do anything else?”
While it may look like a typical soup kitchen for the homeless or needy, Mindeulle Noodle House is quite different in regard to its activities and treatment of visitors. Nobody is ever turned away, no matter how often they may come by. Indeed, some people come five times in one day and eat a full meal each time. In an exceptional case, a person had seven meals here in one day. A hungry person will always feel hungry. Homeless people coming from all over Seoul and its vicinity are allowed to help themselves to as much food as they can eat.
Every Visitor a VIP
Here, the rule is not the usual “first-come, first-served.” If many people arrive at the same time and have to stand in a long queue, those who are so hungry that they can’t wait in line are allowed to go first. Hanging on the wall is a whiteboard that lists the names of regular visitors. Suh goes around making the visitors feel welcome and takes notes about their preferences: how much rice they like to have, what kind of soup they prefer, and whether they like more or less of the solid ingredients in their soup.
Suh’s notepad also contains details about each visitor’s past and current circumstances, and even hopes for the future. He calls each of the 400 to 500 daily visitors a “VIP,” which in his mind means “the highest guest sent by God.” Framed words on the kitchen wall tell us why he runs this establishment: “Freedom from possessions; the joy of being with the poor; and sacrifice for a better world.”
Suh, 58, is a former Catholic friar turned layman. He opened Mindeulle Noodle House (mindeulle means “dandelion”) on April Fools’ Day 2003, on Hwado Hill, an ordinary low-income neighborhood in Hwasu-dong, Incheon. He paid attention to details that others would fail to notice. Though not necessary for a soup kitchen, he went to the local public health office and received a clean bill of health, then registered as a restaurant business operator. He even attended three months of cooking classes.
On a recycled signboard, he wrote the name of the soup kitchen in a pale yellow color that is not easily noticeable, out of respect for his visitors’ pride. When he started the kitchen in a cramped space measuring little more than nine square meters with a paltry budget of some three million won (about $2,700), he had intended to serve noodles. But after hearing that hunger soon returns after a bowl of noodles, he changed to a rice menu. Still, he stuck with the name Mindeulle Noodle House since it reflects his determination to keep operating the soup kitchen until its visitors are well-fed enough to seek out noodles.
Four Principles
When he opened the soup kitchen, Suh vowed to adhere to four principles: don’t receive any government subsidy; don’t launch any donation drives; don’t accept condescending donations from the wealthy; and don’t form a supporters’ group. Places that receive government subsidies must limit visitors to one meal per day with a serving of no more than 155 grams of rice each time.
Suh calls these government rules “cold-hearted.” He refuses to operate by such rules that prevent hungry people from eating their fill. Instead, he runs his soup kitchen with small amounts of money sent by individual donors from across the country and with the help of volunteers. He considers neither the formation of a supporters’ group nor the acceptance of rich people’s money consistent with his purposes.
“Many think that homeless people seek out soup kitchens because they are lazy. But, in fact, they have to spend all day standing in a queue to get a meal coupon at noon to have a bowl of rice at 5 p.m. So, how can they do anything else?”
Suh pays great attention to the pride of his visitors. He never mentions or implies any moral or religious precepts, such as: “Don’t waste your life away.” One day, when a clearly drunken young man entered, Suh warmly welcomed him. Sometimes he even hands out cigarettes to visitors after their meal.
The “VIP” visitors range from teenagers to elderly people, some in their 80s and 90s. The once small, cramped kitchen that could accommodate only six people at a time was enlarged to 24 seats when Suh rented a house next door. The number of donors and volunteers has steadily increased as well. Some people donate money, while many others make donations in kind. Neighbors generously help out by contributing rice, cabbage kimchi, diced radish kimchi, pumpkins, cucumbers, meat, and salted mackerel. The building owner returns a third of the monthly rent as a donation.
“When I visit the market, an old woman vendor gives me a few boxes of bean sprouts. A homeless man once donated the money he had earned by collecting waste paper. Some office workers and market merchants take a day off and come by to help as volunteers,” Suh said. During our interview, a 78-year-old woman handed Suh a plastic bag full of crabs and clams that she had gathered on nearby Deokjeok Island.
About 20 volunteers work here regularly. When the kitchen is short-handed, the visitors offer to help out. Once, when Suh found himself with a surplus supply of rice, he distributed one thousand 20kg bags of rice to needy households in the neighborhood. Suh’s biggest supporters include his wife, Veronica, and his daughter, Monica, who is on a leave of absence from her graduate studies. His wife donates all the money she earns from her clothing store in east Incheon.
Facilities for Children
Feeding the hungry isn’t Mindeulle Noodle House’s only mission. It also helps homeless people with a determination to get back on their own feet by offering them a place to stay, daily necessities, and even clothes. About 20 such people live “alone but together” in rented homes of an informal community. There are several Mindeulle homes near the soup kitchen, from which some of the residents have recently left after becoming self-reliant.
Four years ago, thanks to an increase in donations, Suh opened a facility for children that consists of Mindeulle Dream Kitchen for Children, Mindeulle Dream Study Room and Mindeulle Chaekdeulle Library, in a small three-story building located about 150 meters from Mindeulle Noodle House. There is a dining area on the first floor and a study room on the third floor. Any needy child who can’t afford private tutoring or other after-school care can come to the house to read or study, and also for dinner.
“I opened this facility because I thought children would feel uncomfortable eating together with the adults at Mindeulle Noodle House. I rented the first floor, but borrowed the third floor space for free. An acquaintance of mine remodeled the dining area for no cost. The tables were also donated and a volunteer group paid for a fire insurance policy,” Suh explained.
About 100 children visit this facility every day. Most of them are elementary students from low-income families who have nowhere to eat or study after school. The dining area is open from 1:00 p.m. to 6:00 p.m. And of course, the meals are free. So as to not hurt the children’s pride, Suh places a movable screen near the window. The shelves of the study room are filled with children’s books and biographies of great people donated by supporters and publishing houses. This room is managed by his daughter Monica.
Offer of Hope
Through his contact with so many homeless people, Suh has come to believe that what they really need is to find their purpose in life.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give them hope,” he said. And for this, about two years ago, he opened Mindeulle Hope Center, a cultural center for the homeless in nearby Inhyeon-dong. The Catholic Diocese of Incheon provided 320 million won (about $290,000) for the construction costs, and among the many others who also helped out, Lee Il-hoon, an architect and longtime friend, remodeled the facility.
The first floor consists of a room where visitors can wash their feet with warm water, a computer room with the latest equipment, a library, and a movie room. The second floor has a wash room, shower room, sleeping room, and rest area. Visitors can take a shower and do their laundry, and while their clothes are in the dryer, take a nap or watch TV in casual outfits available on this floor. To use this facility, visitors simply have to complete a membership application, with basic personal information. Interestingly, this facility gives 3,000 won and a pair of socks to anyone who reads a book and prepares a written review of the book to read before other members. The money is very valuable to these individuals.
Another well-known facility is Mindeulle Clinic, where six doctors from Inha University Hospital have provided volunteer services since 2010. About 100 patients with chronic ailments visit the clinic each day. In addition, Mindeulle Store provides free clothing, shoes, and bags to the homeless and needy neighbors. In 2011, Suh also began sending aid packages of clothing and daily necessities to children of a poverty-stricken neighborhood in Payatas, Quezon City, the Philippines.
Mindeulle Noodle House is open from 10 a.m. to 5 p.m. every day, except Thursdays and Fridays. On the off days, Suh does the same things that he has done since he was a Catholic brother: he visits prisons across the country, where he talks with death-row inmates and long-term prisoners, and even gives them money. His wife and daughter also help prison inmates to write letters to their families or friends. In 2011, the Korean government conferred on Suh the Order of Civil Merit Seongyu Medal in recognition of his dedication to the needy and disadvantaged.
Mindeulle Noodle House is modeled after the House of Hospitality, which Dorothy Day (1897-1980), an American Catholic social activist, established for the homeless and jobless people in New York City during the Great Depression in the 1930s, and has remained in operation ever since. Moreover, “All Is Grace: A Biography of Dorothy Day” written by Jim Forest had a decisive influence on Suh’s own life.
Whenever he has a difficult time, Suh likes to read Kim Nam-ju’s poem “Love,” which hangs on the wall. It reads: “Only love / can overcome winter blues / and wait for spring. / Only love / can plow up the wasteland / and sow the ashes of its own bones. / It can plant a tree / on a hill of spring / over a thousand years. / And on the harvested field, / only love, / only human love, / knows how to split an apple into two pieces / and share them with others.”
Mindeulle Noodle House, where love spreads like dandelion spores in the breeze, may remind you of Job 8:7, which reads: “And though your beginning was small, your latter days will be very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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