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매화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꽃이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고고하게 살아가는 선비의 대명사다. 여성의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꽃말까지 ‘고결한 마음’과 ‘인내’이다. 자연스레 시와 그림의 단골 소재가 된다. 조선시대 문인 신흠(申欽)의 시는 한국인들이 가장 자주 떠올리는 매화찬가 가운데 하나다. ‘오동나무는 천 년을 묵어도 변함없이 제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 동안 추위의 고통 속에서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매난국죽(梅蘭菊竹)을 일컫는 사군자(四君子) 중에서도 매화가 맨 앞자리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매화는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전령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봄은 섬진강변의 매화에서 시작된다. 봄날 전남 광양시 다압면 일대 매화마을은 ‘무릉매원’(武陵梅源)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중국에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의 별천지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다면 한국엔 무릉매원이 있다고 말해도 손색이 없지 싶다. 고희를 눈앞에 둔 매실장인(梅實匠人) 홍쌍리(洪雙理)가 개척한 ‘청매실농원’은 이 마을을 대표하는 매화농원이다.
‘매화의 어머니’
청매실농원은 풍광부터 유다르다. 19만8000여㎡(6만여 평)의 드넓은 매화밭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다. 해마다 1백만 명 이상이 찾을 정도다. 1만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3000여 개의 장독과 80년 역사의 대나무 숲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임권택이 만든 ‘취화선’과 인기 드라마 ‘다모’(茶母)의 촬영지인 대나무 숲은 매화와 더불어 비발디 교향곡 ‘사계’ 중 ‘봄’을 연주하는 듯하다. 대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장독과 기와집은 청매실농원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다. 전통미를 자랑하는 팔각정 전망대에 오르면 전라도와 경상도를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 세트장인 초가집 주변의 ‘문학동산’에서는 매화를 상찬하는 시 바위들이 농원의 격조를 한껏 높여준다. 고금의 한국 명시 30여 편이 바위에 새겨져 길손들의 시심을 돋운다. 강줄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멀리 지리산과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 화계장터가 어른거리듯 보인다. 매화나무 아래에는 초록색 보리가 자라 앙상블을 이룬다.
청매실농원은 꽃과 풍광만 빼어난 곳이 아니다. 매화나무의 열매로 친환경식품을 만들어 연간 40억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농장이다. 매실식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모든 게 홍쌍리 대표의 눈물 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그는 말한다. “1만 그루가 넘는 매화가 하나같이 내 눈물을 받아먹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매화나무에 핀 꽃은 딸, 열매는 아들이라고 부른다. “난 세상에서 아들딸이 가장 많은 사람이지요.” ‘매화의 어머니’란 말이 결코 무색하지 않다.
유기농법 고집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세계적인 매화마을을 가꾸기까지 말과 글(筆舌)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헤치고 나왔다. 그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24살 때인 1966년 낯설고 물 선 이곳으로 시집왔다.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단한 육체노동으로 시집살이를 이어가야 했다. 가출 보따리를 수없이 쌌다가 풀었다. 매화꽃 향기를 맡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꽃잎 가운데 “엄마, 울지 말고 나랑 살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고 한다.
그가 시집올 무렵, 집 뒷산에 밤나무와 매화나무를 합쳐 5000여 그루의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시아버지인 김오천(金午千)씨가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13년간 광부로 일해 모은 돈으로 투자한 것이었다. 김씨는 이미 1917년 지금은 보호수로 지정된 청매화 몇 그루를 심어 가꾸고 있던 터였다. 1995년 청매실 농원에서 시작한 3월의 매화축제는 이제 광양국제매화문화 축제라는 지역 축제로 자리잡았는데, 이 축제의 시작이 김오천 추모제인 이유가 여기 있다.
당시에는 매실이 시고 떫은맛이 강해 밤에 비하면 천덕꾸러기였다. 홍쌍리는 시아버지에게 “밤나무를 베어내고 매화나무를 심자”고 졸랐다. 산촌에서 사람이 그리웠던 그는 매화나무를 심으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11년의 설득 끝에 시아버지의 고집을 가까스로 꺾은 그는 이때부터 매실농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홍쌍리는 이렇게 돌산 기슭의 척박한 땅에 조성한 매화밭을 46년째 가꾸고 있다. 수확한 매실로는 된장, 고추장, 장아찌를 담갔다.
처음에는 “가정에서 담근 것이 무슨 상품이 되느냐”면서 행정관청이 허가를 내주지 않았지만 매실의 정화 능력을 믿고 꾸준히 상품을 개발했다.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독학으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매실전문가로 거듭났다. 남편이 한때 경기도 남양의 광산에 투자했다가 망해버려 꽁보리밥으로 하루 한 끼를 때운 적도 있었으나 매실에 대한 집념은 포기하지 않았다. 20대에 두 번이나 암 수술을 받고, 30대에는 류머티즘으로 2년 7개월이나 목발에 의지해야 했으며, 교통사고로 7년 동안 등이 굽은 채 생활하는 시련도 이겨냈다.
그는 ‘옛 사람들의 식단으로 돌아가야 약상(藥床)이 된다’며 처음부터 농약을 뿌리지 않는 유기농법을 고집했다.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매화마을이자 ‘깨끗한 먹을거리’를 상징하는 청매실농원은 그의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가꿔졌다. 청매실농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한 것은 18년 전이다. 입장료는 물론 없다. 처음 3년 동안 농원을 찾는 이들에게 된장, 고추장, 장아찌 등을 무료로 선물했다.
서른 가지가 넘는 매실 가공식품 개발
그는 “매실이 자연의 일부요,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며, 환경 친화적으로 농원을 가꾸고, 매실로 사람들의 아픈 몸을 치료해 준다는 생각으로 매실 상품을 만들었다. 1994년 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아 매실 제품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돌며 기후에 알맞은 유기농 기법을 연구해 ‘홍쌍리’라는 이름 석 자를 브랜드화하기에 이르렀다.
‘흙이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다’는 홍 대표의 생명사랑이 청매실농원을 해외에서도 찾아오게 하는 매실명가로 만든 토대가 됐다. 친환경 매실 농사로 가공식품을 만드는 것과 더불어 청매실농원을 관광상품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이 간 길을 답습하는 법이 없다. 늘 새로워야 하고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매실 농사를 짓는 곳이 없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지요.”
매실전문가가 된 그는 매실로 서른 가지가 넘는 먹을거리를 개발했고, 매실농축액으로 1997년 국가 지정 한국 전통식품 명인 14호가 되었다. 농업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대산농촌문화상’과 석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쓸모 없는 과실로 여겨지던 매실을 30년 넘게 새로운 식품으로 개발해 왔으며, 험한 바위산을 매화동산으로 바꾼 결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명인’이라는 이름이 아닌 그저 땅을 가꾸고 나무를 키우는 농사꾼으로 불리길 원한다.
그는 자연히 매실전도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매실은 ‘물 해독’ ‘피 해독’ ‘음식 해독’ 세 가지 해독작용을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약이 되는 매실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주성분이 탄수화물이고, 당분 10%와 다량의 유기산을 함유하고 있지요. 그래서 매실을 오래 복용하면 좀처럼 피로를 느끼지 않고 체력이 좋아집니다.”
매실 원액을 만드는 일은 무척 고되다고 한다. 30㎏짜리 매실에서 겨우 한 대접만큼의 원액만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생산된 매실 원액은 아픈 위장을 낫게 하고, 뱃속을 깨끗하게 만들며, 얼굴 표정을 맑게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매실은 그의 건강비법이기도 하다. 지난날 몸이 극도로 안 좋아졌을 때 손수 키운 매실과 유기농 채소 덕분에 건강을 되찾은 체험이 더없이 좋은 자산이 됐다. 국내외 방송에 출연 요청이 이어지고, 인터뷰를 원하는 신문이 쉼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농원에서는 3년 전인 2009년부터 매화뿐만 아니라 향기가 가득한 여러 꽃들을 볼 수 있다. 상사화 2000여 송이를 비롯해 구절초, 초롱꽃, 민들레, 금낭화, 자운영, 맥문동, 벌개미취, 목단, 도라지 등 61종의 야생화 수천 포기를 심었다.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사계절 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야생화 밭만 매화 밭의 절반 정도인 9만9000㎡(3만 평)이다. 이곳은 이제 섬진강 일대를 찾는 여행객들이면 한 번씩 꼭 들르는 명소가 됐다.
홍쌍리 대표는 한국 나이로 일흔인 지금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매화 밭으로 나선다. 이때는 카메라, 메모지, 가지치기(剪定) 가위를 빼놓지 않고 가져간다. 꽃이 미소를 지으면 카메라에 담고, 뻗어 나온 나뭇가지가 불편하다 싶으면 주저 없이 가위를 들이댄다. 매화와 대화를 나누다 생각이 떠오르면 기록한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4월 초순에도 그는 매화 밭을 매만지고 있었다. 특유의 ‘몸빼 바지’에 밀짚모자를 쓴 채였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가장 존경한다. 한국의 베스트셀러 저술가 이지성이 쓴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란 책을 읽고 잔뜩 감명을 받았다. 힐러리처럼 열심히 일하며 사는 여성이 자신의 표상이라고 여겼으리라.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농사꾼으로 살 작정입니다.” 흙과 더불어 사는 그의 손은 거칠었지만, 얼굴 표정은 넉넉하고 해맑았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KOREANA 2012년 여름호에 실린 것입니다.>
Plum Farmer Preaches the Health Virtues of Maesil
Author/Kim Hak-soon Journalist
Photographer Ahn Hong-beom Photographer
Plum blossoms have a special meaning to Koreans. They are traditionally associated with upright scholars who are willing to endure any hardship in order to maintain their lofty ideals. They also stand for a woman’s chastity. In the language of flowers, the plum blossoms symbolize a “noble mind” and the virtue of “patience.” As such, they are often the central theme or motif for poetry and paintings. One of Koreans’ favorite poems about the plum blossom was written by Shin Heum (1566-1628), a scholar-official of the Joseon Dynasty: “Paulownia trees [used to make the gayageum zithers] endure a millennium, never changing their tune; Plum flowers withstand the painful cold, never selling their fragrance.” It is no coincidence that plum blossoms head the list of the “four gracious plants” (plum blossom, orchid, chrysanthemum, and bamboo), since they herald the arrival of spring by bursting into bloom ahead of other flowers, even as the winter cold lingers on.
These days, the start of spring in Korea is signaled by the blooming of plum trees along the Seomjin River. In springtime, Maehwa Maeul (Plum Blossom Village) in Daap-myeon, Gwangyang, is a worthy candidate for the poetic name Mureung Maewon (“the land of plum blossoms,” taking after China’s Wuling Taoyuan, “the land of peach blossoms” or Shangri-la). If legend says that Shangri-la existed in ancient China, Korea can boast of its Mureung Maewon. The foremost maesil farm in the village is Green Plum Farm (Cheongmaesil Nongwon), developed by Hong Ssang-ri.
Mother of Plum Blossoms
The landscape of this plum farm is picturesque. The scene of Seomjin River, seen from the hillside of the vast orchard, measuring about 198,000 square meters, is just like a traditional ink-and-wash painting. Every year, more than one million visitors stop by at the farm to view its 10,000 plum trees, 3,000 large earthenware crocks standing nearby, and 80-year-old bamboo forest. “Chihwaseon” (Painted Fire, 2002), a hit film by Korea’s leading director Im Kwon-taek, and “Damo” (The Undercover Lady Detective, 2003), a popular TV drama series, were filmed in this bamboo forest. With the adjacent plum orchard, it seems that the bamboo trees could be an orchestra playing the “Spring” concerto of Antonio Vivaldi’s “Four Seasons.” Earthenware crocks and a tile-roofed house seen through the bamboos are other memorable sights of this famed plum farm. An octagonal pavilion, steeped in traditional charm and natural beauty, offers a panoramic view of the Seomjin River, which meanders through the Jeolla and Gyeongsang provinces.
At the Hill of Literature (Munhak Dongsan) near a thatched-roof house, an on-site location of Im Kwon-taek’s 100th film “Cheon Nyeon Hak” (Beyond the Years, 2007), rocks of various shapes and sizes are engraved with poems that sing the praises of the plum blossom, adding a touch of elegance to the orchard. Inscribed on the rocks are some 30 well-known Korean poems from ancient and modern times, reopening visitors’ eyes to the beauty of poetry. Glimmering far beyond the river, in the Mt. Jiri area, is the town of Pyeongsa-ri, the setting for the late Park Kyung-ni’s epic novel “Toji” (The Land), and the historic Hwagye Market. Green barley growing beneath the plum trees creates a quiet counterpoint with the blossoms.
The flowers and gorgeous landscape are not this plum farm’s only claims to fame. The farm generates 4 billion won (about $3.6 million) annual revenue from the sales of eco-friendly food items made with the green plum, including those exported abroad. All this comes from the hard work of the proprietor, Hong Ssang-ri.
“Each of the more than 10,000 plum trees has been grown on my tears,” Hong says. Calling the plum blossoms her daughters and the plum fruits her sons, she adds: “I have more sons and daughters than anyone else in the world.” Her nickname “Mother of the Plum Blossoms” seems to be well deserved.
Organic Farming
As a woman, Hong experienced even greater hardship in the process of creating her now renowned plum-themed village. Born in Miryang, South Gyeongsang Province, she moved here to her husband’s hometown, far away from her own, shortly after her marriage in 1966 at the age of 24. She had not finished middle school. Married life was demanding at her in-laws’ home. She packed her suitcase several times, but each time she decided against running away. Despite the plum blossoms’ delightful fragrance, she would weep endlessly. Sometimes she thought she could hear the blossoms whispering to her: “Stop crying, Mother. You can live here with us.”
When Hong first arrived here, there were about 5,000 chestnut and plum trees on the hilly area behind her family’s house. Her father-in-law, Kim O-cheon, planted the groves with the money he had saved while working as a miner in Japan for 13 years, after being conscripted by the colonial government. Already in 1917, Kim had planted a handful of green plum trees, now a protected tree species. (The plum blossom festival that began at this farm in 1995 has since been developed into a regional event: “Gwangyang International Plum Blossom Festival.” The annual festival, therefore, begins with a memorial service for Kim O-cheon.)
Back then, the green plums from the trees, tasting bitter with a harsh dryness, were treated with contempt. They were thought to be worthless compared to chestnuts. But Hong repeatedly asked her father-in-law to cut down the chestnut trees and plant more plum trees instead. Living in a mountain village, she missed being around people and thought that plum trees would encourage people to visit. After persisting for 11 years, she finally persuaded her father-in-law to do as she had asked. Hong then took to plum farming in earnest. For the past 46 years she has been tending the orchard, which she cultivated on rocky and barren land. With the green plums she harvested, she made soybean paste, red pepper paste, and pickled green plums.
Her efforts hit a snag, however, when the authorities were reluctant to issue her a permit. They did not see how homemade items could be considered saleable products. But believing in the detoxifying effect of green plums, she continued to develop plum-based products. Though she had no formal education, she taught herself until she had become a maesil expert. When her husband went bankrupt due to a failed investment in a mine project in Namyang, Gyeonggi Province, the family was forced to survive on one bowl of boiled barley per day. Still, Hong persisted with her plum farming. While in her 20s, she survived two cancer operations, and then in her 30s she had to use crutches for more than two years due to rheumatoid arthritis. Later, she even had to endure a stooped posture for seven years as the result of a traffic accident.
From the start, Hong has insisted on wholly organic farming, with an emphasis on “traditional culinary wisdom.” Her plum orchard, a representative green plum village and a symbol of “clean food,” was built on this philosophy. Eighteen years ago, she opened her orchard to tourists. There were no admission fees, and for the first three years, she even handed out to visitors free samples of her fermented soybean paste, hot pepper paste, and pickled maesil.
Wide Variety of Maesil Products
“I grow maesil with a belief that they are part of nature and my body,” Hong says. She developed maesil-based products not out of a simple desire to earn money, but to communicate with nature, tend to the farm in eco-friendly ways, and develop remedies for people’s illnesses. Full-fledged manufacture of maesil products began in 1994 after she obtained a food manufacturing license.
She toured the world and researched organic farming techniques suitable to the local land and climate. Eventually, she turned her own name, Hong Ssang-ri, into a brand name. Her love for life, and her philosophy of life ? “people can survive only when the soil is alive” ? enabled her to develop her orchard into an internationally recognized tourist attraction and the source of her eco-friendly health products. She has never followed in the footsteps of others as she firmly believes that everything should be new and original. “I’m proud that there’s no farm like this anywhere else in the world,” she says.
Hong has developed more than 30 kinds of food items based on the green plum. In 1997, she was designated Traditional Korean Food Master No. 14 by the government for her maesil extract. She has also received the Daesan Agriculture Award, the most prestigious award of its kind, from the Daesan Foundation and the Tin Tower Order of Industrial Service Merit from the government. These achievements are the fruit of her more than 30 years of tireless endeavor to develop the green plum, long considered useless, into new food products after turning a rocky hillside into a fertile orchard. For all this, she does not want to be called a “master,” but a “farmer” who cultivates the land and grows trees.
It was natural for Hong to preach the virtues of maesil. Her expression became animated as she explained maesil’s three detoxification functions, which help to purify water, human blood, and food. “Maesil is alkaline. It consists mainly of carbohydrates, with 10 percent sugar, and a high amount of organic acid. That’s why you do not get tired and can remain alert if you consume maesil-based foods for a long time,” Hong says.
It is a very lengthy and tedious task to produce maesil extract. As much as 30 kilograms of fruit will yield only a small amount of liquid. The benefits of this extract include a healthy, calm stomach, detoxification of the digestive system, and a bright beaming face, Hong claims. She speaks from experience. In the past, when she was seriously ill, she regained her health thanks to the maesil and organic vegetables she had grown. This success story has stirred public interest, thus making Hong a favorite figure for interviews and appearances on TV and radio programs at home and abroad to describe her personal experiences.
Since 2009, the farm has been alive with the colors and scents of a diverse variety of flowers, in addition to the plum blossoms. To provide visitors with a view of flowers during all four seasons, Hong has planted thousands of wildflowers of over 60 varieties, including Siberian chrysanthemums, bellflowers, dandelions, dicentras, Chinese milk vetches, liriope rhizomes, Korean starworts, peonies, and balloon flowers, as well as 2,000 magic lilies. Her wildflower fields measure 99,000 square meters, about half the size of the plum orchard, making her farm a must-see attraction for tourists visiting the Seomjin River area.
Even now, at the age of 70, Hong gets up at 5 o’clock every morning and heads to the farm. She always carries with her a camera, memo pad, and pair of pruning shears. She takes photos of the plum blossoms “if they are smiling,” and does not hesitate to take out the pruning shears when she finds unnecessary branches sticking out. She takes out her memo pad to write down anything that crosses her mind while conversing with the trees. When I visited her for this interview in early April, I found her tending the fields dressed in baggy work pants and a straw hat.
The person that Hong admires most is U.S. Secretary of State Hillary Clinton. She was impressed by the American woman leader after reading “Women, Follow the Footsteps of Hillary,” a book written by Lee Ji-seong, one of Korea’s best-selling authors. Presumably, she takes Hillary Clinton as a role model because of her work ethic. “I’m going to live as a hardworking farmer who takes care of people’s health while my own health permits,” she says. Her hands may be coarse from work, but her face beams brigh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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