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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개미보다 생각 짧은 공직자들

 

 환경건축가 믹 피어스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에어컨 시설이 없는 쇼핑센터를 지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건축주는 에너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같이 주문했다.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란 피어스는 연평균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아프리카에서 불가능한 아이디어라고 여겨 망설였다.

 

  하지만 그는 고심 끝에 이 주문을 받아들였다. 일교차가 30도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개미집 안에서 끄떡없이 생활하는 아프리카 흰개미의 지혜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피어스는 흰개미집을 본따 뜨거운 공기를 배출할 수 있는 원리를 이용했다. 10층 건물 옥상에 63개의 통풍 구멍을 뚫었다. 지표 아래도 구멍을 내 찬 공기를 건물로 끌어들이도록 설계했다. 1층엔 공기유입이 쉽도록 여러 개의 출입구를 냈다. 필요하면 공기통로를 여닫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지었다.

                                                                 

 

  그 결과, 이 건물은 한여름 대낮에도 에어컨 없이 실내 온도를 24도로 유지할 수 있다. 이 쇼핑센터의 에너지 소비량은 크기가 같은 다른 건물의 10퍼센트에 불과하다. 에어컨 대신 공기의 자연 순환을 이용해 냉난방을 자동조절하는 것은 물론 신선한 공기도 실내로 흘러들어온다. 세계 최초의 자연 냉난방 건물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는 이렇게 이미 18년 전에 세워졌다.

 흰개미집의 비결은 최대한 집을 높게 지어 천장에 구멍을 뚫고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도록 하는 반면 시원한 공기는 아래 머물게 하는 데 있다. 지하 방을 통해 들어온 시원한 공기가 내부를 순환하면서 식혀 주고 밤이 되면 거꾸로 차가운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 온도를 조절한다.

 

  아프리카와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6미터 높이의 거대한 흰개미집은 100만 마리가 넘는 개미가 모여 사는 초고층 아파트나 다름없다. 흰개미들의 건축술은 놀랍다. 개별 흰개미는 집을 지을 만한 지능이 없다. 하지만 흰개미 집합체는 역할이 다른 여왕개미, 일개미, 병정개미, 수개미가 ‘떼지능’으로 거대한 탑을 만든다. 자연 습도·온도 조절 기능이 있는 경이로운 예술성과 창조성, 효율성을 지닌 게 흰개미집이다. 이 집은 인간의 척도로 보면 쿠푸왕 피라미드의 5배에 해당하는 크기에 인간의 허파와 같이 정교한 기능을 갖고 있는 구조물이라고 한다.
                                                                                    

                                                             <짐바브웨의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

 

 호주 멜버른의 시의회 청사도 건축가 피어스가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처럼 흰개미집의 원리를 이용해 에어컨 없는 빌딩으로 지었다. ‘CH2’라는 별칭을 지닌 이 청사는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건축물로 손꼽힌다. 최고 기온 섭씨 38도, 최저 기온 5도를 오르내리는 멜버른에서 냉난방 시설을 가동하지 않고도 실내 온도는 언제나 섭씨 24도 안팎으로 유지된다. 같은 수준의 다른 건물에 비해 전기는 85%, 가스 87%, 물은 28%나 절약한다. 당연히 온실가스도 적게 발생한다.

 

 비밀은 천정에 설치된 알루미늄 판에 숨어있다. 곡선형태의 천정 아래에는 곡선 모양의 패널을 만들었다. 차가운 물이 들어있는 패널이다. 차가운 물은 알루미늄을 차갑게 만들며, 이것이 열을 흡수한다. 천정이 곡면으로 되어 있는 것은 표면적을 넓혀 찬 공기가 더 많이 닿게 하기 위해서다. 차가운 물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더운 공기를 차단한다.

                                                                 

                                               <멜버른 시의회 청사>

 

  냉방을 위해 내부에는 차가운 파이프가 있다. 공기가 냉각되면 창문 앞으로 차가운 공기가 떨어진다. 이것은 더운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 밖은 덥지만 실내는 시원하다. 바닥에는 찬 공기를 내뿜는 통풍구가 있다. 내부에서 데워진 공기는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팬을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유사한 사례도 흔하다. 2002년 새로 지은 영국 런던 시청사만해도 자연 환기와 열 차단원리로 에너지를 절감하는 친환경 관청건물의 국제적인 모델로 손꼽힌다. 화석 연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완벽한 친환경 건축물을 짓는 이른바 ‘생체모방 건축’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건 신기술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만으로 가능한 문제다. 개미들은 이미 인간보다 오래 전에 이런 지혜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업적 채산성은 이제 기술의 발달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비용으로 맞출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멜버른 시의회 청사 외벽 파이프라인>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시민단체가 외려 앞장서고 있다. 창원의 YMCA 회관은 최근 흡수식 냉난방기, 고효율 형광등, 자연 통풍, 자연 채광이 가능한 친환경 건물로 지어졌다. 태양광 발전소, 빗물 재활용 시설, 황토벽돌, 천연페인트, 옥상녹화, 벽면녹화, 에코 보도블록, 절수형 소변기, 절수기까지 갖춘 이상적인 모델이다.

 

 이와는 달리 호화건물에다 에너지효율까지 빵점인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와 의회 건물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초호화 청사로 지탄을 받고 있는 성남시청사는 화려한 외양과는 반대로 에너지 효율은 낙제점이어서 여름철엔 ‘찜통청사’, 겨울철엔 ‘냉동청사’라는 오명을 얻었다. 행정안전부 조사 자료로는 신축청사 에너지 사용량이 구청사보다 2.2배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1인당 에너지 사용량도 1.5배로 늘었다.

 

   먼저 지은 용인시청이나 이보다 나중에 건축한 서울 용산구청의 매머드 빌딩도 흡사하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투어 ‘에너지 하마’ 같은 초현대식 유리청사 건축에 나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조사결과, 2005년 이후 새 청사를 지은 지자체 12곳의 전체 유지·관리 비용이 기존 청사의 3배에 이른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의원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짐바브웨 같은 곳에 가서 에너지 절약 지혜를 배워왔다는 얘기를 풍문으로도 들은 적이 없다. 이들의 머릿속엔 아프리카 미개국에 가서 뭘 배울 게 있겠느냐는 고리타분한 생각만 잔뜩 들어 있을 게 틀림없다.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선진문물을 배워온다는 명목으로 일삼는 관광성 외유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이젠 지겨울 정도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뻐기는 인간들의 생각이 미물인 개미보다 이처럼 짧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에 분량을 늘려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