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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서정주 시문학관과 박정희 기념 도서관

 

 전북 고창의 작은 폐교를 고쳐 세운 미당(未堂) 서정주 시문학관은 마당의 커다란 자전거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이름하여 ‘바람의 자전거’다.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는 구절의 8자를 상징한다. 자전거가 쉼 없이 굴러가야 하듯이, 영원히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바람의 역동성을 뜻한다. 바람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시인의 모습을 이곳을 찾는 이들과 함께 바라보기 위해 조형물을 세웠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바람의 자전거’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미당의 명시와 함께 전시돼 있는 친일 작품과 군부독재자 전두환 찬양시들이다.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 ‘오장 마쓰이 송가’(시) ‘무제’(시) ‘항공일에’(시) ‘스무살된 벗에게’(수필) ‘최체부의 군속지원’(소설) 등 모두 11편의 친일 작품은 읽다보면 야비하고 교활한 말장난에 슬픔을 느낀다. 토박이 말을 빼어난 시어로 빚어낸 시인의 천재성을 떠올리면 그 느낌은 배가된다.

                                                                 

   

 ‘그러나 이 무렵 나를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는 이의가 있다’로 시작하는 변명은 한층 가관이다. 훗날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고 둘러댄 말은 측은할 정도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라고 시작하는 전두환 56회 생일 축시 ‘처음으로’를 읽으면 실망감을 넘어 좌절감마저 느끼게 된다.

                                                                                      


 미당의 대표적인 친일 문학작품과 독재자 찬양시의 전시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시문학관운영위원회가 모두 수용해 결정한 것이다. 미당의 문학적 업적보다 친일을 더 비판하는 쪽에서는 애초부터 문학관 건립계획 자체에 반대했다. 운영위원회측은 문학관을 찾는 관람객과 문학인들이 이런 작품을 읽고 미당의 친일 문제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시를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당시 태평양 전쟁희생자 유족회 손일석 지회장은 뒤늦게나마 미당의 작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다행이며, 전시를 계기로 일제 강점기의 역사가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정희 기념·도서관 반대 운동과 관련해서도 서정주 시문학관의 사례를 참고할만하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다는 논란이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녔다. 지난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이 들어간 기념관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타협의 여지가 그리 없어 보인다. ‘박정희기념·도서관 명칭 변경과 공공성 회복을 위한 마포·은평·서대문구 시민회의’라는 긴 이름을 지닌 시민단체는 10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이 기념관이 지금처럼 운영된다면 마포·상암도서관 같은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를 발전시킨 공로를 부인하긴 어렵다. 고은 시인이 한때 미당을 가리켜서 ‘그는 또 하나의 정부(政府)’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한국 최고 반열의 시인임을 인정해야하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박정희의 인권탄압과 민주주의의 퇴보 같은 유신통치의 그늘마저 눈감을 순 없지 않은가. 박정희의 친일 논란도 마찬가지다. 당시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던 25살의 청년이 일제의 만주 군관학교에 자진해서 들어간 것은 설사 강제징병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하더라도 친일이라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박정희 기념관이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왜곡하는 등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과오를 축소·은폐하는 것은 역사정신에도 어긋난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문학관이 그렇듯이 한국을 대표하는 지도자의 업적과 과오에 관한 교훈을 모두 객관적으로 드러내 후세를 위한 역사교육장으로 삼는 게 마땅하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기념관이 정치적 목적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듣는다면 존재 의미가 무색하다. 서정주 시문학관이 반대 측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여 운영하듯이 박정희기념·도서관도 비판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해 보완하는 것이 옳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