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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차기 대권의 정·반·합 변증법

 노무현 정부 후반 아이돌그룹 동방신기가 ‘O!정반합’이란 철학적인 제목과 가사의 노래로 한 때를 풍미한 적이 있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하는 사회의 모습이 곧 정반합이며, ‘O’은 원을 상징한다. 이 노래는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단순히 ‘반’을 위한 ‘반’이 아니라 ‘합’을 위한 ‘반’이 돼야 한다는 명제를 내걸었다. 정반합이 헤겔의 변증법 논리에서 따온 것임은 물론이다.

 가사도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걸음 물러서 지금 이 시대를 돌아본다면/ 원리도, 원칙도, 절대 진리도 없는 것/ 시대 안의 그대 모습은 언제나 반(反)이었나/ 현실에 없는 이상은 이상형일 뿐 “O”/ 이제 난 두려워, 반대만을 위한 반대/ 끝도 없이 표류하게 되는 걸/ 나 이제 찾는 건, 합(合)을 위한 노력일 뿐 나와 같은 손을, 한 외침을/ 꿈이 실현 되는 걸 갈망하는 자여/...난 가야 돼, 가야 돼, 나의 반(反)이 정(正), 바로 정(正), 바로잡을 때까지/ 정·반·합의 노력이 언젠가 이 땅에 꿈을 피워 낼 거야....’

 가수 신해철은 동방신기가 이 노래를 부른 게 민망하다고 꼬집었다. 음악이 파워풀하고 퍼포먼스도 멋있지만 남이 써준 사회비판적인 가사가 지독하게 싫다는 게 요지다. 당시 지식인이나 기성세대들로부터도 찬반 어느 쪽으로든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색다른 노래였던 건 분명하다.
                                                      

                                                 <아이돌그룹 동방신기 자료 사진>

 노무현 정권이 끝난 뒤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뭐든지 거꾸로만 했다. ‘노무현이 하던 것과 정반대로만 하면 성공한다’는 철학 아닌 철학이 난무했다. 미국에서 아들 부시 정권이 출범한 후 보여준 ‘클린턴 전임 대통령과 반대로만 하면 된다’(Anything But Clinton)는 정책과 판박이였다. 이명박 정권의 실패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조건적인 반노무현정책’이 주요 원인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차기 대권주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반이명박 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이명박 정책으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노무현 정책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유력 대권주자들의 움직임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여권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9대 총선을 계기로 좌클릭해 가운데 쪽으로 조금 이동했다.

 야권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현재로선 가장 중간지대에 자리한 듯하다. 출마결정을 하지 않은데다 구체적인 정책 노선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언행을 종합하면 중도적인 이념성향과 정책노선이 엿보인다. 역시 유력주자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총선 이후 중도성향 강화에 ‘일리 있음’이라고 내비쳤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사회·남북·정치 통합의 ‘3통’ 시대 만들자고 선언해 놓았다. 손 고문의 멘토이자 진보진영의 사상적 원로인 최장집 고려대명예교수는 올 연말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통합’을 오래 전에 찜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총선 패배 후에도 노선논쟁이 끝난 상태는 아니지만 중도와 통합 강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추세다. 486세대를 중심으로 총선패배의 원인이 좌클릭에 있지 않다는 주장이 강하지만, 객석에서 관전하는 전문가들은 대선 승리방정식인 산토끼를 잡기 위해선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선과정만 그런 건 아니다. 차기 정권은 누가 맡게 되든 진보·보수 정권을 거치는 동안 한층 첨예해진 갈등과 양극화를 누그러뜨리려면 중도와 통합이 필수불가결하다. 집토끼들의 반발이 만만찮겠지만 우리 사회 내부문제와 남북문제 해법을 위해서도 한층 열린 자세로 접근하지 않으면 또다시 실패하는 정권이 되기 십상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자 시절에는 통합을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다짐했지만 한결같이 진영논리에 밀려 약속위반으로 끝났다.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정반합의 변증법적 지혜를 진정성 있게 검토해 볼 때가 됐음을 방증한다. 진보진영도 2013년체제에 대한 실망감이 크겠지만 통합과 관용을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개연성이 높아졌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