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대국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상군을 투입한 전쟁에서 목적을 달성한 적이 없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가장 먼저 치른 한국전쟁부터 그렇다.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은 38선을 돌파하더라도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했다. 하지만 30여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민해방군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현재까지 정전상태에 머물러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물리치기는 했으나 결과는 현상유지에 그쳐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얻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피그만 침공 역시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주도한 베트남전에서도 치욕적인 패퇴를 맛보았다. 북베트남군이 어뢰정으로 미 군함을 선제공격했다며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뒤 본격적인 베트남전쟁 개입을 시작했던 것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거짓으로 꾸민 일과 흡사하다. 1992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희망 회복작전’이란 이름아래 개입한 소말리아 내전에서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물러났다. 1983년 카리브해 그레나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단행한 기습공격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실책 가운데 하나로 비판받고 있다.
<미군 스트라이커 부대>
가장 치명적인 것은 2003년 시작한 2차 이라크 전쟁이었다. 미국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WMD)를 꼬투리삼아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사로잡아 처형하고 정권을 축출했으나 일방주의 전쟁이란 비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2003년 5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개전 3주일 만에 호기롭게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 그랬지만 이라크의 안정은커녕 자살폭탄테러로 혼란만 가중시켰다. 반미 감정은 더욱 높아졌다.
알카에다 세력과 오사마 빈 라덴 체포를 명분으로 2001년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을 합하면 미군 전사자가 5000명을 넘고 비전투원 사망자도 870명에 달한다. ‘미완의 전쟁’으로 남게 됐다는 비판보다 더욱 뼈아픈 것은 1조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전쟁비용이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내주고 내리막길을 걷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사실이다.
다만 1991년 이라크와의 40일 걸프전쟁과 1999년 78일간의 코소보 전쟁에 잠깐 성공했을 따름이다. 코소보 전쟁 개입은 이번 리비아 개입처럼 나토군을 주축으로 한 공중 작전 수행뿐이었다. 두 전투는 사실상 지상군 점령전이 아닌 매우 제한적인 목적의 군사작전에 불과했다.
따지고 보면 미국뿐만 아니라 냉전시절 강대국 소련조차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상전을 통해 단 한 번도 완벽한 응징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한국전쟁 참전 미군 지휘부>
코소보 전쟁은 클린턴 행정부의 지상군 파병 배제 결정에도 불구하고 나토의 일사불란한 지휘로 세르비아의 독재자를 추방하는 데 성공한, 거의 유일한 사례에 속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나토 회원국과 더불어 리비아 내전 개입에 나섰지만 현재까지는 지상군 배제의 코소보 모델을 따르고 있다. 미군 인명피해를 줄이면서 리비아 민간인을 보호하고,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축출하려는 게 목표인 듯하다. 하지만 카다피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지지부진하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적인 지도자를 내세우려는 리비아 국민을 돕는 전쟁의 명분은 분명 정의롭게 보인다.
그럼에도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했던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전쟁에는 실수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실수는 전쟁 그 자체다.” ‘오래된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정의로운 전쟁’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시작한 전쟁이라도 끝까지 정의로우리란 보장은 없다. 주권국가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신중해야한다는 교훈을 미국은 역사적인 경험에서 얻지 못하고 있다. 향후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운위하는 미국과 한국의 고위정책결정자들에게도 미국의 전쟁 결산서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피그만 침공 역시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주도한 베트남전에서도 치욕적인 패퇴를 맛보았다. 북베트남군이 어뢰정으로 미 군함을 선제공격했다며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뒤 본격적인 베트남전쟁 개입을 시작했던 것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거짓으로 꾸민 일과 흡사하다. 1992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희망 회복작전’이란 이름아래 개입한 소말리아 내전에서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물러났다. 1983년 카리브해 그레나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단행한 기습공격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실책 가운데 하나로 비판받고 있다.
<미군 스트라이커 부대>
가장 치명적인 것은 2003년 시작한 2차 이라크 전쟁이었다. 미국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WMD)를 꼬투리삼아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사로잡아 처형하고 정권을 축출했으나 일방주의 전쟁이란 비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2003년 5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개전 3주일 만에 호기롭게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 그랬지만 이라크의 안정은커녕 자살폭탄테러로 혼란만 가중시켰다. 반미 감정은 더욱 높아졌다.
알카에다 세력과 오사마 빈 라덴 체포를 명분으로 2001년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을 합하면 미군 전사자가 5000명을 넘고 비전투원 사망자도 870명에 달한다. ‘미완의 전쟁’으로 남게 됐다는 비판보다 더욱 뼈아픈 것은 1조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전쟁비용이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내주고 내리막길을 걷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사실이다.
다만 1991년 이라크와의 40일 걸프전쟁과 1999년 78일간의 코소보 전쟁에 잠깐 성공했을 따름이다. 코소보 전쟁 개입은 이번 리비아 개입처럼 나토군을 주축으로 한 공중 작전 수행뿐이었다. 두 전투는 사실상 지상군 점령전이 아닌 매우 제한적인 목적의 군사작전에 불과했다.
따지고 보면 미국뿐만 아니라 냉전시절 강대국 소련조차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상전을 통해 단 한 번도 완벽한 응징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한국전쟁 참전 미군 지휘부>
코소보 전쟁은 클린턴 행정부의 지상군 파병 배제 결정에도 불구하고 나토의 일사불란한 지휘로 세르비아의 독재자를 추방하는 데 성공한, 거의 유일한 사례에 속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나토 회원국과 더불어 리비아 내전 개입에 나섰지만 현재까지는 지상군 배제의 코소보 모델을 따르고 있다. 미군 인명피해를 줄이면서 리비아 민간인을 보호하고,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축출하려는 게 목표인 듯하다. 하지만 카다피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지지부진하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적인 지도자를 내세우려는 리비아 국민을 돕는 전쟁의 명분은 분명 정의롭게 보인다.
그럼에도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했던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전쟁에는 실수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실수는 전쟁 그 자체다.” ‘오래된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정의로운 전쟁’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시작한 전쟁이라도 끝까지 정의로우리란 보장은 없다. 주권국가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신중해야한다는 교훈을 미국은 역사적인 경험에서 얻지 못하고 있다. 향후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운위하는 미국과 한국의 고위정책결정자들에게도 미국의 전쟁 결산서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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