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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주고 받음’의 미학, 선물

 
선물의 유래가 그리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족간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귀한 소금을 둘러싸고 부족 간의 약탈과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물물교환이 이뤄졌던 것이 선물의 시초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남아도는 가죽과 소금의 물물 교환이 인심과 실리를 동시에 얻는, 세련된 방식인 선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선물의 기원이 원시시대에 남자가 식량으로 여자의 환심을 사려했던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도 있다. 호감을 사기 위해 주는 선물은 특정집단에서 자연스레 문화적 관습이 됐다고 한다.

선물 문화는 아프리카 갈로족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전해온다. 갈로족은 땅을 공평하게 나누어 농사를 지었지만 빈부격차를 막을 수 없어 3년에 한 번씩 명절 때 곡식을 나눴다. 토질, 날씨, 농부의 정성에 따라 개인의 수확량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한해 농사가 끝나면 가족 식량을 제외한 나머지 곡식을 자루에 담아 마을 공동창고로 가져간다. 3년이 지나 창고에 곡식이 가득 쌓이면 추장은 타로이(선물)를 선포하며 창고 문을 활짝 연다. 곡식이 부족한 주민들은 이때 필요한 양만큼 가져간다. 부자라도 곡식을 남기지 않으므로 이듬해에도 당연히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흉작이 게으름에 대한 신의 경고라고 여긴다.

이와 비슷한 문화는 북미 태평양 연안 인디언들과 남태평양의 일부 원주민들에게서도 엿보인다. ‘포틀래치’와 ‘쿨라’가 그것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대표작 <증여론>(한길사)에서 선물 교환의 가장 단순한 형식을 북미 원주민의 ‘포틀래치’에서 찾아낸다. 치누크 인디언 용어인 포틀래치는 원래 ‘식사를 제공하다’ ‘소비하다’는 뜻이다. 모스는 인류의 원초적 거래방식이 사회적 통념인 ‘물물교환’이 아니라 ‘선물주기’라고 주장한다. 이때 선물은 ‘공짜’가 아니다.

모든 선물에는 언제나 세 가지 의무가 존재한다. 선물을 줘야 할 의무, 주는 선물을 받아야 할 의무, 받은 선물에 답례할 의무가 그것이다. 주는 것을 거부하거나, 초대를 소홀히 하는 것은 전쟁 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결연이나 교제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진다. 집단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포틀래치에는 보편적 특징이 있다. 손님 초대와 연설할 때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선물의 크기는 주는 사람의 사회적인 지위를 반영한다.

포틀래치는 생산력이 불균등한 종족 사이의 부의 생산과 분배를 재조정해주는 메커니즘인 셈이다. 모스는 선물이 주는 사람의 우월성을 증명한다고 설명한다. 포틀래치를 열지 못하고 선물을 받기만 하는 것은 예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스레 위계가 형성된다.

멜라네시아 남동부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주민들이 행하는 선물교환제도인 ‘쿨라’는 ‘갑’에게서 선물을 받으면 그에게 답례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웃인 ‘을’에게 선물을 하고, ‘을’은 ‘병’에게 선물을 주는 방식이다. 결국 ‘갑’에게도 선물이 돌아간다. 이 같은 선물 체계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의무적인 호혜성을 지닌 선물 교류는 평화로운 관계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이다.

선물과 교환이 인류의 보편적인 관습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관찰한 모스의 <증여론>은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학의 아버지’ 에밀 뒤르켐이 외삼촌인 모스는 구조주의의 선구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가슴을 울리게 만든 존재이기도 하다.

추석을 앞두고 선물들이 오가는 것을 보면 <증여론>에 담긴 모스의 혜안이 드러난다.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선물은 신도 설득할 수 있다”고 했지만 “거저 받은 선물만큼 비싼 것은 없다”고 한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의 말을 더 명심하는 게 지혜롭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