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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겨울나기

입력 : 2008-12-19 18:01:41수정 : 2008-12-19 18:08:44

선인들은 계절에 맞춰 격조 있게 사는 슬기를 지녔던 것 같다. 청나라 초기에 살았던 장조(張潮)는 책도 철 따라 다르게 읽으면 좋다고 권면했다. 그는 <유몽영(幽夢影)>이란 저서에 이렇게 썼다. ‘문집을 읽자면 봄이 제격이다. 그 기운이 화창하기 때문이다. 역사서 읽는 때는 여름이 적당하다. 그 날이 길기 때문이다. 제자백가 읽기에는 가을이 꼭 맞다. 그 운치가 남다른 까닭이다. 경서 읽기는 겨울이 좋다. 그 정신이 전일한 까닭이다.’

그는 계절과 비도 품격을 나눴다. ‘봄비는 책읽기에 알맞고, 여름비는 바둑·장기 두기에 꼭 맞으며, 가을비는 점검하여 간수하기에 마침 맞고, 겨울비는 술 마시기에 적당하다.’ 우리네 서민들은 계절 비를 속담으로 구전하고 있다. ‘봄비는 일 비이고, 여름비는 잠 비고, 가을비는 떡 비고, 겨울비는 솔 비다.’ 봄에는 비가 와도 들일을 해야 하며, 여름에는 비교적 농한기여서 비가 오면 낮잠을 자게 되고, 가을비는 햅쌀로 떡을 해 먹으며 쉬고, 겨울에는 술을 마시며 즐긴다는 뜻이다.

‘봄꽃은 화사해서 가슴에 깃들고 여름꽃은 강렬하여 심장에 피며 가을꽃은 청초해서 그리움을 닮고 겨울꽃은 고결해 영혼을 담금질한다’며 꽃의 정감을 철따라 즐기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봄꽃은 환희로, 여름꽃은 정열에 의해, 가을꽃은 향기를 담고 멋대로 피고 지는데, 환희·정열·향기를 누린 겨울꽃은 오로지 사람 마음에서만 피고 진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봄바람은 술과 같고, 여름 바람은 차와 같으며, 가을바람은 연기와 같고, 겨울바람은 생강이나 겨자와 같다는 비유도 전해진다. 계절 따라 일미 어종도 달리 한다. 봄에는 도다리, 여름엔 민어,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숭어가 제격이라고. 19세기 여성생활백과인 <규합총서>는 식음료를 계절에다 맞추는 지혜를 전수한다. ‘밥 먹기는 봄처럼 하고, 국 먹기는 여름 같이 하며, 장 먹기는 가을 같이 하고, 술 마시기는 겨울 같이 하라.’

어느 때보다 힘들고 살천스러운 겨울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계절에 맞는 정취를 즐기는 여유도 필요하지 않을까. 애옥살이 속에서도 더 어려운 이웃과는 작은 정이라도 나누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아름다운 정신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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