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희극을 가장 쉽게 구분한 사람은 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아닐까 싶다. 죽음으로 끝나면 비극이고 결혼으로 끝나면 희극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 공식에 맞춰보면 중세 유럽 최고의 연애담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대표적인 비극이고,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명작 오페라로 탄생한 <사랑의 묘약>은 희극이겠다. 넓게 보면 비극은 죽음·파멸·진정성, 희극은 환희·결혼·축제·번식·재생 같은 것과 연관된다.
비극과 희극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비극적인 결점’이 그것이다. 주인공이 그걸 극복하면 희극이 되고, 극복하지 못하면 비극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비극적인 결점을 극복하지 못해 비극으로 분류된다.
더 중요한 차이는 작품에서 주인공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처리방식에 따라 나타난다. 비극은 갈등의 해결책이 없을 때 일어난다. 반면에 희극에선 갈등이 결국 해결되고 만다. 비극이 주로 죽음으로 끝맺는 건 문제를 끝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극은 기원전 500년쯤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했다. 원래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기 위해 공연했다. 그리스 비극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이론으로 집대성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저 <시학>에서 비극의 본질과 카타르시스의 실체를 규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비극은 역사보다 철학적이고 주변 인간들보다 뛰어난 인물을 등장시켜 공포와 비애를 일으킴으로써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한다”고 정의했다. <시학>은 서양 최초의 문학이론서로 알려져 있으나 비극 이론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그리스 비극은 모두 33편.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이 7편, 소포클레스 작품 7편,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19편이다. 그리스 비극은 사실상 창시자로 불리는 아이스킬로스,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소포클레스, 가장 신세대였던 에우리피데스 등 3대 작가에 의해 꽃피었다. 이들은 인간 내면에 대한 성찰과 탐구로 그리스 정신을 구현해냈다. 그리스 비극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철학을 완성하는 전제가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리스에서 꽃피운 비극은 16세기 말 걸출한 셰익스피어가 등장해 다시 중흥기를 맞는다. 이어 유진 오닐의 희곡,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 예술·사상·종교·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그리스 비극 작품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번역본 <그리스 비극>(현암사)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편으로 나뉘어 있다.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과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등이 걸작으로 꼽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가장 완결된 비극의 전범으로 여겼다.
18세기 고딕 소설의 선구자 호레이스 월폴은 “세상은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라는 절묘한 명언을 남겼다. 3대 비극 작가 중 에우리피데스는 세상을 깊이 생각하고 깊이 느꼈으나 세상에서 우스개가 될 만한 것은 거의 찾아내지 못해 비극만 썼다고 전해진다.
지난주 방한했던 영국의 대표적 좌파 문화이론가 테리 이글턴은 현대사회의 갈등 국면을 진보·보수가 아닌 ‘비극적 휴머니즘’과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대립에 있다고 이채롭게 분석했다. ‘비극적 휴머니즘’은 현재 상태를 부숴야만 새로운 삶과 인류 발전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그리스 고전비극 같은 패턴을 지닌다. 이글턴의 얘기처럼 비극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웅숭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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