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성인을 꼽자면 약간의 논란이 따른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까지는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서양에서는 당연히 소크라테스에게 나머지 한 자리가 돌아가야 한다는 견해가 대세다.
여기에 가장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는 게 이슬람권이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마호메트)가 4대 성인의 반열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무함마드가 빠지는 건 이슬람을 견제해온 서구의 영향 때문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없지 않다.
무함마드를 4대 성인에 포함할 수 없다는 이들은 몇 가지 이유를 댄다. 그가 포교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부잣집 과부를 만나 경제적으로 비교적 풍족하게 살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무함마드가 4대 종교인 이슬람교의 창시자이긴 하지만 온전히 성인다운 삶을 살았다고 보긴 어렵다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그에 비해 소크라테스는 예수, 공자처럼 평범한 서민 출신으로서 인류의 전범이 될 만한 삶을 영위한 데다 ‘아테네 민주정치의 희생양’ ‘철학의 순교자’로 상징되는 것만 봐도 성인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
실존철학의 거장인 카를 야스퍼스도 4대 성인으로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공자, 예수를 주저없이 든다. 야스퍼스는 <위대한 사상가들>(책과함께)에서 이들 네 사람을 신격화하지 않고 객관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인류에게 가장 긍정적 영향을 끼친 모델로 삼을 만하다고 확언한다. 종교의 창시자라 하더라도 인간적 한계까지 서술하고 있어 책 제목도 <위대한 사상가들>(원래는 위대한 철학자들)로 정한 듯하다.
야스퍼스는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조로아스터, 이사야, 예레미아, 무함마드, 노자, 피타고라스 등을 더 들 수 있지만 네 명의 위인만큼 역사적으로 깊이 있고 지속적인 영향을 준 인물은 없다고 주장한다. 유일하게 무함마드만은 역사적 영향력에서 네 명의 성인과 어느 정도 견줄 만하지만 인간적 깊이에서는 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의견이다.
그 자신도 위대한 철학자인 야스퍼스는 4대 성인이 인류에게 던져준 빛이 조금씩 다르다고 비교 분석한다.
‘소크라테스가 실재적인 빛이라면, 예수는 마법처럼 변용된 빛이고, 석가는 마력적인 추상의 빛이며, 공자는 냉정하게 빛나는 객관적인 빛이라 할 수 있다.’
야스퍼스는 인류에 대한 가르침의 방법도 정리해 준다. ‘소크라테스는 사고를 통해 진리를 깨닫게 했고, 석가모니는 명상을 통한 깨달음의 길을 제시했으며, 공자는 교육을 통해 인간의 삶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예수는 이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세상의 악에 대응하는 방법도 네 성인이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를 드러낸다고 야스퍼스는 본다. 예수는 잘 알려졌듯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공자는 선을 선으로 갚고 악은 정의로 갚으라고 권면한다.
소크라테스는 악을 갚기 위해 불의가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석가모니는 어떤 악에도 저항하지 않는 보편적 사랑, 모든 생명체에 대한 자비심을 역설하고 있다.
네 명의 성인 모두 스스로 쓴 책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도 공교로운 공통점의 하나다. 이는 훗날 제자들에 의해 이들 성인의 삶과 가르침이 보강되면서 변용 과정을 거치는 요인의 하나가 된다.
그렇다고 야스퍼스는 4대 성인을 우리가 단순히 모방해야 할 대상으로는 보지 않는다. 다만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표로 생각한다. 성인들처럼 하늘의 뜻을 깨달아 중생을 일깨우고 옳은 길을 가도록 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성인들의 사상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위대함은 훌륭함을 뛰어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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