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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한국적인 것의 결정체 도자기

“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500년 전 조선 도공의 길을 배우고 찾아가는 것이다.” 20세기 최고 도예가였던 영국의 버나드 리치(1887~1979)가 세계 최고의 명문 도자학교로 불리는 미국 앨프레드 도자학교 강연에서 던진 한마디다. 도예가 나아갈 길은 조선시대 ‘분청자(粉靑瓷)’가 이미 다 제시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뉴욕대 특강에선 이런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도자기를 아예 모르는 사람은 중국, 일본, 조선 순서로 좋다고 평한다. 조금 아는 사람은 중국, 조선, 일본 순이라고 한다. 도자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조선, 중국, 일본 순이라고 말한다.”

그는 동양 도자기의 특색을 ‘한국은 선이고 중국은 색채이며 일본은 모양’이라고 규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국으로 돌아가 <조선의 백자>라는 책을 펴낼 만큼 한국 도자기에 대해 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좋은 도자기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산을 내려오는 사람과 같이 손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했다.

흔히들 한국의 옛 도자기는 동양인의 고요한 정신자세를 상징한다고 품평한다. 선이 곱고 색은 순하며 내적인 품위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국 도자기의 특질에 관해서는 미술사학자인 윤용이 명지대 교수가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돌베개)에서 살갑게 들려준다. 그는 리치가 그랬듯 도자기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분청자를 꼽는다. 한국인은 분청자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재발견한다는 것이다. 분청자는 역동적이면서도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선(禪)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그는 해설한다. 분청자는 쉽게 풀이하자면 화장을 한 청자다. 센 리큐를 비롯한 일본의 최고 다인(茶人)들이 가장 사랑한 것도 분청자와 백자였다.



리치가 “나는 행복을 안고 간다”고 은유했던 조선의 백자 항아리는 순박하면서도 고아한 품격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상찬을 받는다. 윤용이는 조선 후기의 백자를 청초하고 단아한 멋을 지녀 간결하고 기품 있는 그릇으로 친다.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와는 달리 정돈된 맛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한다. 한국의 백자를 사람으로 치자면 자신은 전혀 뽐내지 않으나 주위를 빛나게 하는 등불 같은 존재라고 비유하는 이도 있다.

그는 청자와 백자에 비해 저평가됐던 질그릇(도기)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게 돋보인다. 조선시대 질그릇의 표징으로 소박함, 고요함, 단순미를 꼽는다. 전문가들은 신라 토기에는 신라 사람들의 넉넉한 미소가 담겼고, 청자에는 고려 사람들의 꿈이 담겼으며, 백자에는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 담겼다고 한다. 하지만 윤용이는 여기서 ‘토기’란 용어를 매우 못마땅해 한다. 일본이 만들어낸 말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게 옳다는 견해다. 그냥 ‘도기’로 분류하면 족하단다.

도자기는 흙과 불, 사람이 삼위일체가 돼야 최상품을 만들 수 있다. 흙이 도자기의 살이라면 불은 도자기의 피이고 작가의 마음가짐은 도자기의 혼으로 불린다. 사기장들은 흔히 말한다. 도자기의 3분의 1은 사기장이, 3분의 1은 불이, 나머지는 사용하는 사람이 만든다고. 그만큼 누가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윤용이도 천편일률적인 그릇 대신 우리 도자기로 생활의 멋을 한껏 부려보라고 적극 권면한다. 일본에선 도자기가 식기로 대중 속에 파고든 지 오래다. 그 배경에는 미식가이며 도예가인 기타오지 로산진이란 인물이 있다. 그는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이고, 요리와 그릇은 한 축의 두 바퀴”라는 명언을 남겼다.

전국 각지에서 도자기 행사가 풍성한 가을, 가장 한국적인 결정체를 찾아보고 직접 만들어보는 낭만과 즐거움은 비할 데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