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차원의 복지정책을 사상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 오토 폰 비스마르크 독일 총리였던 건 역설이다. 지주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철혈 재상으로 불릴 만큼 카리스마가 강하고 보수 성향인 비스마르크가 좌파·개혁 성향의 입법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는 세계사적으로도 뜻 깊은 공적 사회보험을 역사상 처음 발의하고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881년 발의한 산재보험 입법안에 관해 ‘무산계급의 요구와 이익에 봉사하는 공적 보험제도 수립이 곧 인륜과 기독교의 의무이자 국가를 수호하는 정치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정책이 완성될 무렵 자기 이름으로 이뤄낸 위대한 복지제도를 ‘의회와 관료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스스로 혹평하는 또 다른 아이러니가 발생했지만 말이다.
당시 진보적인 사회민주당은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이 진정한 사회개혁을 얼버무리는 사이비 정책이라고 맹비난했다. 사회민주당은 훗날 자신들이 공적 사회보험의 유일한 수호자라고 선언한 뒤 복지정당의 길로 접어들었다.(<복지국가 만들기> 박근갑)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해 5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처음 차기 대선의 화두로 ‘복지국가’를 들고 나온 이래 최근까지 간단없는 화제와 논쟁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 비스마르크가 먼저 떠오른다.
역대 정부에서 복지정책 공약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12년 대선구호로 ‘복지국가론’을 첫머리에 내세우고 향후에도 강하게 밀고나갈 유력 대권주자가 박 전 대표다. 서민과 중산층의 표를 겨냥한 것은 같지만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와 구별 지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아직 구체성이 없는 데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목표가 복지국가였다고 언급한 대목에서는 지나친 비약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사실상 대항마로 나선 게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를 주도하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다.
이상이 제주대 의료관리학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3월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밈)을 내놓았다. ‘복지국가론’은 대권주자가 아닌 시민단체 차원이긴 하지만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박 전 대표보다 먼저 들고 나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이미 <복지국가혁명>이란 책과 더불어 진보정당 대통합을 주창하고 나섰다. ‘복지국가’라는 깃발아래 진보 정치세력을 묶어 정권 창출의 대안세력으로 나서겠다는 취지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원리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 등 4가지다.
‘역동적 복지국가’는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를 모델로 삼고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란 복지 혜택이 시혜로서 소외층에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중산층 이상 전 국민에게 권리로 제공되는 국가를 뜻한다.
메리 힐슨의 <노르딕 모델>(삼천리)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꿈과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다섯 나라의 차이점도 부각시켜 한국 실정에 맞는 복지국가를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이들 나라를 무조건 유토피아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박 전 대표를 포함한 보수진영의 복지정책이 선별적·시혜적 복지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어쨌거나 박 전 대표 쪽에서도 사회복지기본법을 설계 중이라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걸 보면 차기 대선의 화두는 단연 ‘복지국가’가 될 게 틀림없다.
이미 6월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인복지 등을 놓고 전초전을 벌인 바 있다. 서민과 중산층이 단순히 표 계산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질이 진정으로 높아지는 대한민국을 꿈꾸는 건 시기상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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