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08-05
유권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 때론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있는 조그만 읍인 「수놀」의 주민들은 지난 83년 견공(犬公)을 읍장으로 뽑았다. 사람 읍장에 오죽 넌덜머리가 났으면 그랬을까. 요즘 우리 정치인들을 보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자신을 위해(危害)하지 않는 한 결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개의 품성에서 암시를 얻은 유권자들이 1회성 시위 정도로 시작했다가 무려 여섯차례나 연임시켰다.

읍장으로 선출된 보스코 보스 라모스란 이름의 이 사냥개가 유권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더없이 충직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4년 전인 지난 94년 천수(天壽)를 다할 때까지 11년간이나 자신의 임무에 일로매진(一路邁進)했다. 비록 인구가 1,000여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지역의 장이었지만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은 견공 읍장은 TV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국제부장

격노한 유권자가 동물을 대표로 뽑은 실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59년 10월4일에는 브라질에서 코뿔소 1마리가 무려 5만표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상파울루 시의회 의원에 당선된 적이 있다. 한낱 해외토픽 같은 얘기로 돌리기엔 그곳 주민들이 너무나 진지했다.

우리 유권자들은 심하게는 「식물국회」니 「뇌사국회」니 타매(唾罵)하면서도 여전히 차가운 이성보다 감성만 앞세우는 2중성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게 한계다. 여름잠을 자던 국회가 66일만에 시답잖은 국회의장을 뽑느라 진통을 치렀을 뿐 유권자의 뻥 뚫린 가슴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싸움박질만 하고 있는데도 한번쯤 분통을 터트리거나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며 냉소하는 것으로 그만이다. 그럴수록 주인인 국민의 뜻은 견공만큼도 헤아리러들지 않는 국회의원들만 은근히 즐길 뿐인 데도 말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이제 말로만 개혁하라고 다그쳐 봐야 어디 개가 짖느냐는 투가 된지 오래다. 타박하는 강도가 좀 거세지면 시늉만 하다가 마는 꼴도 진절머리가 나도록 잦다. 여기에다 대고 자율적인 정치개혁을 주문하는 자체가 소극(笑劇)이다. 개혁은 그만두고라도 제발 월급(세비)값이나 해달라고 애원조로 사정해야 할 판이다.

다만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 불기 시작해 후텁지근한 정치 무더위를 식혀줄 실낱같은 희망으로 바뀌지 않을까 일단 기대를 걸어보게 한다. 마침내 유권자들의 의분(義憤)이 극단적으로 분출하려는 조짐이 엿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이 일하지 않은 기간의 세비를 가압류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아 국민이 본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 단체가 지금에야 등장한 것은 아쉬움이 있지만 때는 늦지 않다.

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고 점수까지 매겨 발표하겠다는 본격적인 시민감시단체가 나타난 것은 한걸음 더 나간 것으로 평가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실직자들이 중심이 됐다니 전시용은 아닐 듯하다. 참여민주주의와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의 작은 싹을 우리는 소중하게 키워가야 할 때다.

하지만 그것으로 먹혀들 우리네 국회의원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막상 선거때만 되면 의정활동 성적은 표와 무관하다는 것을 국회의원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서글픈 것은 바로 이런 우리 유권자들이다. 막 움튼 시민운동의 싹이 반갑기 그지없으나 여기에 그쳐서는 수확은 기대난일 수밖에 없다.

심한 얘기일지 모르나 개만도 못한 국민의 대표를 혼내주기 위해서는 우리도 견공을 국회로 진출시키는 것과 흡사한 극단의 조치까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우리 유권자가 선거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잊지 않아야 할 사실은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엉성한 기억력을 먹고 산다」는 점이다.


Posted by 김학순

1998-07-15
한나라의 포괄적 건강상태를 단숨에 읽어내는 수단으로 증권시장을 능가하는 것이 없지 않을까 싶다. 정치·경제적 민심 감지에는 더욱 그렇다. 한결같이 경제적 위기에 시달리는 아시아국가들의 경우 외환시장을 추가하면 그만일 듯하다.엊그제 끝난 일본 참의원 선거결과에 대한 일본 국민의 생각도 주가와 엔화에 거의 그대로 투영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권 자민당의 참패 직후 주가가 떨어지기는커녕 반등세를 나타냈다. 엔화 역시 초기엔 약세를 면치 못하다 회복세로 돌아섰고 하루가 지난 뒤엔 좀 더 강세로 접어들었다.

하루 이틀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하기 어려운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국은 단기적으로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만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총리의 사임 발표가 국민에게 기대감을 높여준 것만은 틀림없다.

물론 일본 정치와 경제의 함수관계가 외환위기로 말미암아 정권교체까지 이뤄진 다른 아시아국가들과 똑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참패만으로는 당장 정권교체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며 한때 세계 최고였던 일본의 경제나 정치상황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차이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일본 선거결과가 주는 귀감(龜鑑)은 어느 나라에나 적용된다해도 무리가 아니다. 요즘처럼 개방사회에서 경제를 망치면 국민의 지지를 지켜내기 힘들다는 사실은 한국을 비롯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먼저 실감나게 입증됐다. 나라밖에서 인기가 있고 외교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국내 경제정책에서 실패하면 국민이 참을성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스럽지만 하시모토총리에게도 들어맞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꼼수를 쓰거나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하려는 정치 지도자가 깨어 있는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이번 선거에서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였던 이른바 「영구감세(永久減稅)」를 둘러싸고 하시모토총리가 보여준 2중적인 태도는 선거에 관심조차 없었던 「잠자는 유권자들」을 깨어나게 하는 정도를 넘어 격노(激怒)를 사고 말았다. 영구감세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하시모토와 자민당은 당초 선거 때만 얼렁뚱땅 넘겨 보겠다는 얕은 꾀를 썼던 것이다.

선거 막바지에서야 세 불리를 깨닫고 영구감세추진방침을 전격 발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도리어 국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경제개혁에 주저하는 하시모토의 내심을 꿰뚫고 있었다.

하시모토는 그런 민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국민의 정치 무관심으로 인한 낮은 투표율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으로만 알고 표를 오산(誤算)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일본 국민의 하시모토 후임에 대한 관심도 누가 참된 개혁노선을 갖고 있느냐에 쏠려 있는 것은 선거결과를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일본보다 더욱 철저한 개혁이 절실한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가장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더구나 요즘엔 정치에서도 「복잡계 이론」의 한 예인 「나비효과」가 거론돼야할 만큼 작지만 중요한 징후들을 알아채기는 힘들다. 남미에서 펄럭이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북미대륙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가 과장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고 보면 정치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국제부장


Posted by 김학순

1998-04-22
앨버트 고어 미국 부통령 부자의 선각(先覺)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우연의 일치부터 우선 이채롭다. 그 성격은 다르지만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온존하는 데 한몫을 하는 「고속도로」와 공교로운 인연을 맺고 있다. 고어 부통령의 아버지인 앨버트 고어 1세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약하면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고속도로망을 구축하는 일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의 자동차도로가 광대무변한 국토를 사통팔달하는 고속도로망으로 거듭난 것은 앨 고어 1세의 선견지명 덕분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1956년 제정된 미국의 「고속도로법」은 대부분 그의 남다른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선지 고어 부통령은 미국이 지난 93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최첨단 「정보초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는 한편 방대한 「지구촌 정보초고속도로(GII)」 구축계획의 주역이 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깜짝 놀란 일본과 유럽이 이에 뒤질세라 「아시아정보초고속도로(AII)」 건설을 위한 「신사회 간접자본 구축계획」과 「유럽 정보고속도로(TEN)」 구상을 각각 발표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고어 부통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14일엔 현재의 인터넷보다 1,000배나 빠른 차세대 인터넷 구축을 진두지휘하고 나섰다. 미국의 야심은 정보화전략을 통해 21세기에도 세계의 헤게모니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오늘날 다시 태어났다면 「자본론」이 아닌 「정보론」을 썼을 게 자명하다는 유추전망까지 나올 정도이고 보면 정보화의 긴요성은 새삼 들출 필요가 없다.

고어 부자의 탁견(卓見)은 정치지도자들의 앞선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나게 예증한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이에 자극받아 흉내라도 낸 것까지는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2010년까지 초고속 국가정보통신망, 2015년까지 초고속 공중정보통신망 건설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김대중 대통령도 정보통신의 중요성을 누구 못지 않게 역설하곤 한다. 지난 주말 정보통신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45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우리의 계획은 경제위기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우리의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정보선진국을 따라잡기는 지난(至難)해졌다. 정보화의 국제질서에도 마태(Matthew)효과로 불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우리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의 정보마인드에 대한 실상을 알고 나면 한숨이 나오다가 놀라 멈춰설 지경이다. 수십억원을 쏟아부어 어렵사리 구축해 놓은 정부청사의 근거리통신망(LAN)조차 컴맹인 장관과 고위공직자들 때문에 낮잠을 자고 있다는 실상이 밝혀진 게 바로 김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받기 직전의 일이다.

LAN을 활용하고 있는 곳은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의 몇몇 부서에 불과하다. 어떤 부처는 설치후 단 한번도 전자결재에 이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쓰지도 않는 애물단지에 드는 유지비만 수억원에 달한다. 말로만 정보화를 떠드는 국회의원들은 한술 더 뜬다. 홈페이지를 개설해 놓고 있는 의원은 전체의 5분의 1에도 못미치는 50여명에 그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2년전 15대 총선을 앞두고 만든 낡아빠진 홈페이지를 그대로 방치했다가 들통난 것 역시 바로 지난 주말이다. 「전자민주주의 연구회」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한 뒤 「정보화시대를 앞서 간다」고 이미지 관리나 하려는 얄팍한 술책에 다름 아니다. 얼마전에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방한했을 때는 대통령부터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몇마디 대화를 나누고 증명사진이나 찍기에 바빴다. 그런다고 정보화가 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고어의 얘기대로 정보화도 실행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오늘 정보통신의 날을 맞아 정보입국(情報立國)과 전자정부 수립이 허울좋은 정치구호에 지나지 않는 우리의 현주소를 보노라면 씁쓸하기만 하다. 국제부장


Posted by 김학순

1998-04-08
역사에 길이 남는 건국엔 으레 걸출한 지도자와 그에 버금가는 1등공신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국 가운데 모범생으로 일컬어지는 싱가포르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간관계는 리콴유 초대총리와 고갱쉬 전제1부총리다.

두 지도자의 관계는 찾기 힘들 만큼 특이하다. 그들은 함께 손을 맞잡고 나라를 일으켜세운 주역이면서도 인간적인 친근함은 나눠갖지 못했다. 1인자와 2인자 사이였던 두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부인 콰걱추를 제외하고는 리콴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었던 사람은 고갱쉬가 사실상 유일했다.

고갱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 리콴유의 정책결정에 도전하거나 수정을 강요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리콴유는 화를 내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그만큼 고갱쉬의 생각은 리콴유를 설득하고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리콴유 총리의 대역을 할 때도 많았다. 그는 총리가 되고 싶었을 법하지만 결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생각이 달랐지만 상호보완적인 장점을 살려 오늘날의 싱가포르를 일궈낸 것이다.

서독의 초대 총리였던 콘라트 아데나워와 2대 총리를 지낸 루트비히 에어하르트 초대 경제장관의 관계도 몇가지만 빼면 「리콴유와 고갱쉬의 사이」와 흡사하다. 아데나워와 에어하르트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다.

특정정당에 속하지 않았지만 자민당 계열에 가까웠던 에어하르트를 끌어들이지 못했던들 기민당 소속의 아데나워가 정치적 입지는 물론 국부(國父)로 숭앙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아데나워는 「라인강의 기적」이 에어하르트의 작품으로 표상되는 것을 싫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에어하르트가 자신의 후임자가 되는 것도 마지막까지 훼방을 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데나워는 경제문제만은 에어하르트에게 맡겨 철저한 역할분담을 했다. 실제로 에어하르트는 독일 경제부흥의 물꼬를 튼 획기적인 조치들을 독자적으로 취해 나갔다. 에어하르트가 만든 기민당의 경제강령을 아데나워는 손하나 대지 않고 받아들였다.

경제성장, 완전고용, 통화안정, 대외균형을 뼈대로 하는 이 강령은 오늘날 독일경제의 기틀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두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개인관계는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일에서는 환상적인 상호보완 관계를 형성,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 총리서리의 관계도 이들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이념과 정치노선이 달랐던 두 사람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한 배를 타고 숙명적인 1인자와 2인자 사이가 된 것부터가 그렇다. 용어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상황논리로만 따지면 지금은 「제2의 건국」이나 다름없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새정부를 더불어 출범시킨 지 달포가 거의 다 된 시점에서 보면 두 지도자는 끊임없이 「협력적 긴장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때로는 모양새를 갖춰주기도 하지만 엊그제까지 김대통령은 과거의 관례를 깨고 국무회의를 대부분 자신이 직접 주재하는 것을 비롯해 총리의 입지를 은연중에 압박하고 있다. 이에 맞서 김총리서리 역시 겉으론 예우를 하면서도 무언의 시위를 벌이곤 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세력확장을 둘러싼 신경전도 그 연장선상에서 파악된다. 국민이 관전하고 싶은 것은 이들의 개인적인 권력게임이 아니라 국정에서 얼마나 서로의 장점을 살려 나락에 떨어진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느냐는 것이다. 「정치수완의 비밀은 역사속에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충고는 김대통령과 김총리서리에게도 통한다. 국제부장


Posted by 김학순

1998-02-28

김대중 새 대통령이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닮은 점이 많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허버트 후버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미국의 31대 대통령이자 루스벨트의 바로 전임자인 후버는 「실패한 대통령」의 상징처럼 돼 있다. 그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경제를 임기 시작 7개월만에 파국으로 몰아넣어 세계역사상 가장 먼저 대통령제를 도입한 미국에서 무능지도자의 표본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가 현직에서 물러날 때 미국의 경제사정은 거의 정지된 상태였다. 현재의 한국 경제사정보다 더 나빴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 역사가들은 후버를 가장 많은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다가 비난 또한 가장 많이 받으며 퇴장한 대통령으로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취임 초기 90%대의 인기를 유지했던 김 전 대통령이 퇴임 무렵 한자리 숫자의 지지율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던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후버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철저한 개혁을 강조하고 실천하려 했던 점도 김 전 대통령과 같다.

그렇지만 후버는 지미 카터와 더불어 퇴임후의 활동을 더 평가받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전직 대통령은 이래야 한다는 표본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그는 58세로 퇴임한 뒤 90세까지 장수하면서 무려 30년동안 전직 대통령으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쳐 현직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말끔히 씻었다. 끔찍했던 임기를 마친 직후 한동안 스탠퍼드대학에 세운 후버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 정부에서 유럽인들의 기근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기아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봉사했다.

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단임으로 물러난 카터도 후버 못지않게 국민과 국제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여생을 바쁘게 보내고 있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는 손수 목수가 돼 길거리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는 불우한 이웃들에게 집을 지어 주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카터센터를 설립한 뒤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금까지 고난의 늪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 왔다. 두 미국 대통령의 명예회복 노력은 뼈저린 실패를 만회하려는 의지와 국민에 대한 속죄의식이 어우러져 나온 작품이 아닌가 싶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온 김 전 대통령은 현직때 부정적인 측면에서 후버와 유사한 처지였지만 전직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처신도 눈여겨 보는 게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여기에 카터까지 벤치마킹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김 전 대통령은 이제 정치에서 완전히 은퇴한 뒤 조용히 여생을 보내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의 명예회복이 뒤따라야 개인은 물론 나라를 위해서도 불행이 덜어질 것 같다.

그게 아니라도 김 전 대통령은 지난 93년 취임사에서 『가진 사람에게 고통을 주겠다』고 굳게 약속했다가 못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고 떠나게 된 사실을 평생동안 잊어선 안되며 잊혀지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민심이 어디로 흘러갈지 장담하기도 어렵다. 실업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경제파국의 여파가 훨씬 실감나게 와닿기 시작하면 국민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격앙될지도 모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김 전 대통령이 소외되고 의식주를 해결하기조차 힘든 이들을 몸으로 부딪쳐가며 돕고 멍든 가슴들을 보듬어 준다면 분노하던 마음들이 차츰 녹아들 게 틀림없다. 굳이 힘든 일이 아니라도 좋다. 국민 가운데는 꼴도 보기 싫으니 차라리 초야에 묻혀 조용하게 살기나 하라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게다.

거리에 나서면 달걀세례나 돌팔매질하려는 시민들이 없으란 법이 없을 것이다. 그걸 두려워해선 안된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체면이나 위상을 따질 문제는 아닌 듯하다. 김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분의 전직 대통령들도 마찬가지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감옥까지 갔으면 됐지 뭘 더하란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온다면 더 할 말이 없다. <논설위원>


Posted by 김학순

1997-10-25
매화 옆의 바위는 예스러워야 제격이다. 소나무 아래 바위는 거친 듯해야 제맛이 난다. 대나무 곁에 놓인 바위는 앙상한 것이라야 어울린다. 화분 안에 얹는 돌은 작고 정교해야 좋다. 중국 고사에 적실하게 묘사된 명장면이다. 

이렇듯 삼라만상이 제자리에 있을 때라야 저절로 격조가 배어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우아하고 품격이 넘쳐나도 있을 자리가 아니면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하물며 대자연의 으뜸인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적재적소라는 말이 생겨난 연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올 대선정국을 관전하면서도 새삼 제자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낡아빠진 정치풍토에 한줄기의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를 모아온 이른바 영입지도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한계성은 단지 본인들의 안쓰러움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정치와 국민 전체의 불행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3김정치」라는 말로 대표되는 구시대의 청산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지만 이들에게 막상 메아리는 아련하기만 하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기대감을 채워주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다. 차라리 그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한두 사람만의 생각이 아닐 게다. 이회창 조순 후보는 물론 신한국당 경선에 참여했던 이수성 고문도 마찬가지다. 더 넓게는 경선에서 도중하차한 이홍구 고문도 같은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어떤 이는 평생토록 고이 쌓은 명성을 정치판의 아귀다툼에서 하루아침에 날려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겉으로야 매몰찬 다짐을 하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속으론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다목적카드를 준비해온 현직 대통령과 그의 덕담에 귀가 솔깃해 가슴이 부풀어있던 당사자들 모두에게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와 유사한 정치실험은 이번 대선에서만 겪는 게 아니다. 지난 대선때 출마하거나 대권에 뜻을 두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나 박태준 의원, 김동길 전 의원 등이 그랬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60년대의 유진오 전 고려대 총장도 마찬가지다. 한 분야에서 최고봉까지 오른 권위자요, 정치때가 묻지 않았던 인물인 이들이 순수한 자의건 타의에 떠밀렸건 대권실험에 동원돼 단 한번이라도 성공사례를 보여주지 못한 사실은 사뭇 교훈적이다.

정권을 재창출하려던 최고지도자, 자신의 권력욕구를 대리만족시키려는 개인이나 집단, 스스로 미망에 빠져든 인사들, 모두에게 주는 가르침은 간단하다.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거물급 정치신참들이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다는 점이다. 정치력과 지도력을 축적하지 않은 채 「이미지 정치」에만 의존하는 실험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는 웅변에 다름아니다. 역사는 백이숙제같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 아니라 한나라의 공신인 소하나 조참같이 시세를 탈 줄 아는 인물들이 이끌어간다는 사마천의 지적이 일면 타당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라 밖에도 선례가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정치개혁의 여망을 안고 92년 대권에 도전했다가 한계만 느끼고 사라졌다.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 전대통령은 비록 대권을 손에 거머쥐었지만 자유노조운동의 공로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던 영광에 상처만 남긴 채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굳이 대선이 아니더라도 선거때마다 정치권이 참신한 인물을 끌어들인다는 명분 아래 특정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전문가를 영입하지만 정치무대에서 성공적으로 홀로 선 인물은 극히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의 균형있는 발전과 경쟁력강화를 위해서도 그 길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대선을 관전하면서 배워야 할 또하나의 숙제는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 앞에만 서면 절로 옷깃이 여며지는 송백의 늠름함이 있는 인걸이 더욱 간절해지는 올 가을이다. <논설위원>


Posted by 김학순

1997-06-21

정치인은 이따금 배우에 비견되곤 한다. 양쪽 모두 연기를 필요로 하는 데다 인기를 먹고 사는 공통점을 지닌 속성 때문일 게다. 퇴장이 멋져야 명배우로 갈채를 얻듯 정치인도 끝맺음이 산뜻해야 평가받는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지 오래다.

우리네 선인들은 안분과 더불어 「시중」을 공직 윤리와 처신의 기준으로 삼아 왔다. 시중은 나가야 할 때 나가고 물러가야 할 때 물러감을 일컫는다. 사실 나가는 것보다 물러날 때를 가리는 게 사뭇 어렵다. 오죽했으면 시경에까지 「시작을 잘못하는 사람은 없어도 끝맺음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경종을 울려 놨을까. 수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이 법언을 익히 들어오면서도 막상 자신에게 현실로 닥치면 여간해서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모양이다. 정치란 마약과 같아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끊기 어렵다고들 한다. 더구나 공적깨나 있고 성망마저 있다면 자리에서 떠나기란 더욱 힘들다. 상큼한 퇴진을 그토록 상찬하는 것은 그만큼 희소가치가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현대사에는 물러날 때를 잘못 잡아 참담한 비극을 맛보아야 했던 실례가 즐비하다. 대한민국의 국부가 되고자 했던 이승만 대통령과 논란 속에 재평가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 그 첫 손가락에 꼽히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역사의 비애다. 이 대통령은 오랜 미국 망명생활을 통해 민주주의를 체득했으면서도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재선으로 만족한 뒤 주위의 강권을 물리치고 마운트 버논의 옛집으로 돌아간 용기를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박 대통령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을 떨쳐 버리지 못해 충격적인 최후를 맞아야 했다.

한국 정치의 비운은 권력무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모한 대권욕이 여전히 계속되는 데 있다. 야당의 두 총재가 이 대열에서 빠지지 않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여당에서는 아예 「잘못된 출발」부터 너무 많다.

우리 정치사가 진퇴에 실패한 정치인들로 점철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가뭄에 콩나듯 하지만 정구영같은 신선한 지도자를 예로 들어도 좋을 듯하다. 생애의 대부분을 변호사로 일했던 그가 65세의 나이에 정계로 나가던 때의 선택을 두고 평가는 엇갈린다. 그가 한껏 돋보이고 길이 기억될 수 있는 것은 물러섬이다. 쿠데타를 한 박정희를 도와 공화당 초대 총재를 지냈지만 3선개헌 반대가 먹혀들지 않자 미련없이 정계퇴진의 단안을 내렸다.

세계사에서 가장 인상깊고 극적인 퇴장이라면 아무래도 프랑스의 영웅적 지도자 드골을 빼놓을 수 없다. 총선에서 예상밖의 승리를 거머쥔 여세를 몰아 「지방자치제도와 상원의 개혁」을 위해 국민투표를 강행, 패배하자 아낌없이 귀거래사를 부르고 말았다. 『이로써 프랑스 역사의 한 장이 끝났다』는 명언을 남긴 채 콜롱베의 고향마을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그가 명배우란 별명까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엊그제 있은 신한국당 이홍구 고문의 대권포기 선언은 「물러섬의 미학」이 뭔지를 보여준 드문 용단이라 할 만하다. 그의 「나섬」에는 비판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때를 앎으로써 적어도 비난의 화살만은 면하게 됐다. 합종연횡이니 권력나눠먹기니 해 흙탕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보다야 사뭇 다른 세평을 낳고 있는 게 확연하다. 게다가 그가 현실정치에서 느낀 한계는 잔잔한 파문을 낳으면서 정치판을 다소나마 바꿀 수 있는 전기를 만들어 줬다. 진퇴를 칼로 물베기하듯 하는 우리 정치풍토에 경종을 울린 것만으로도 그의 역할은 빛난다.

진퇴문제를 놓고 애면글면하는 졸장부들이야 어디 정치판뿐인가. 우리 주위의 크고 작은 조직에서도 알량한 권력과 일신의 영달 때문에 물러남의 때를 놓치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들은 대개 통한과 회오의 눈물을 흘린 뒤에야 때늦음을 깨닫는다. 진퇴의 미학은 배움이 아니라 행동의 몫이라는 상식같은 진리가 요즘 부쩍 마음에 와 닿는다. <논설위원>


Posted by 김학순

1996-03-16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시절 의회에 보낸 한 메시지 가운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선거를 공명하게 치를 수 있는 사람들은 반란도 진압할 수 있다』 선거수준이 국민의식과 정비례함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군사반란과 내란혐의를 받고 있는 12·12와 5·18 주역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고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선 가운데 15대 총선을 치를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국민주주의의 거울이 되다시피한 미국도 지난 92년 대통령선거와 의회의원선거를 계기로 한 차원 높은 선거문화를 일궈냈다. 상대후보에 대한 흑색선전과 비방이 당락의 주요한 변수가 돼왔던 선거풍토를 국민과 언론의 자성을 통해 이를 하찮은 종속변수로 바꿔놓은 것이다.

예비선거 초반부터 성추문에 시달렸던 빌 클린턴이 이같은 선거풍토변화가 없었던들 막강한 당시 대통령 조지 부시를 쓰러뜨릴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책대결보다 상대방 흠집내기로 쏠쏠한 재미를 봐 온 공화당의 결정적인 패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정적인 선거전략이 먹혀들지 않았던 데 있었다.

이같은 결과는 깨어난 유권자의식과 언론의 합작품이었음은 물론이다.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미국의 올 대선에서도 이런 추세가 이어져 21세기를 앞둔 정책비전이 주된 선거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싹이 트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15대총선과 관련한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 지난달에 비해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층과 선거기피증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런 징후는 「악한 정치가는 역설적으로 투표하지 않은 선량한 시민에 의해서 선출된다」는 미국의 선거법언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정당지지도가 전반적으로 하락한 것은 바로 저급한 말싸움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화를 찾아볼 수 없는 후보군과 이념성향, 상대방 깎아내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선거전을 지켜보고 있는 유권자들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권당인 신한국당은 『비판은 하되 비방은 하지 않는다』고 다짐하면서도 3개 야당의 공세에 그렇게 참을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 선거대책위의장은 정치의 품격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막상 당직자들과 후보들은 우이독경이다.

여야를 가릴 것없이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정책보다 지엽말절같은 자투리현안과 과거지향적인 문제로 선거전을 몰고 가는 게 승산이 한층 크다고 보기 때문인 것같다.

물론 선거자체가 이성적인 행위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감성에 좌우되는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H 먼로가 오래전에 꿰뚫은 바 있다.

『국민들은 분노에 투표하는 것이지 올바른 평가를 내려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은 어떤 것에 찬성해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반대하여 투표한다』
유권자의 귀책사유가 적지 않음을 꼬집은 말이다.

정책대결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것은 이른바 「작문정치」에 기인하는 점도 적지 않다.

여야 모두 유사한 「장밋빛 약속」만 늘어놓아 현재 내놓은 공약들이 대부분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는 것을 전문가들은 물론 시정의 장삼이사도 꿰뚫어 보고 있다.

정책대결 부재는 건전한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것에서도 비롯된다. 신한국당의 이회창 선거대책위의장이 카운터파트가 아닌 야당총재들과 토론하겠다는 발상은 자신의 위상과 당의 입장만 생각할 뿐 애초부터 토론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에 다름아니다.

토론을 기피하는 여당의 속셈은 3개 야당과 3대 1로 싸운다는 피해의식 때문이다. 지난해 지방선거때 서울시장 후보들이 좋은 선례로 만든 TV토론을 사리에 맞지 않는 제의로 회피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

이번 총선이 여느 국회의원선거와는 달리 21세기를 예비하는 국민의 대표를 뽑는 미래지향적인 정책대결의 축제가 돼야한다는 점을 입후보자와 정당책임자는 물론 유권자 모두가 각인했으면 좋겠다. <정치부 차장>


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