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4년 4월 소나기가 내리는 밤이었다. 훗날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는 침소로 잠입하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는 잠자리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 무기를 챙겨들었다. 문 밖으로 나간 그는 굴뚝 옆에 몸을 숨겼다. 번갯불이 번쩍이는 순간 침소를 들여다보고 있는 자객을 발견했다. 누르하치는 벼락처럼 빠른 동작으로 자객을 넘어뜨린 뒤 시위병을 불러 묶게 했다.

 

  시위병들은 그 자리에서 자객을 찔러 죽이려 했다. 누르하치는 순간적으로 자객을 살려주고 그의 마음을 얻어야겠다고 판단했다. 자객에게 “소를 훔치러 왔느냐”고 물었다. 누르하치의 의도를 눈치 챈 자객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시위병들은 죽여 없애야 한다고 고집했다. 누르하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소도둑이 맞는 것 같다”며 자객을 풀어주라고 했다.


 

  그 해 5월 어느 날 밤 또 다른 자객이 누르하치의 침소에 몰래 들어와 암살을 기도했다. 누르하치는 이번에도 자객을 잡았다가 풀어줬다. 사소한 듯 한 두 사건이 큰 반향을 낳았다. 많은 사람들이 누르하치의 대범함에 감탄해 몰려들었다. 여기에 자객들이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누르하치는 전쟁터에서 얼굴을 맞대고 싸우던 적장들도 인재라고 생각되면 과거를 불문하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중국 리수시가 쓴 ‘용인’(用人·랜덤하우스)에 나오는 얘기다.
                                                                 

                                                       <청 태조 누르하치>

 아름다운 우정의 상징인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일화는 참된 친구관계 못지않게 지도자의 통 큰 용인술이 돋보이는 전범이다. 자신을 죽이려했던 관중(管仲)을 포용해, 그것도 파격적으로 재상에 발탁한 제나라 환공의 인사스타일이 천하통합의 밑거름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환공이 사촌형제 간의 권력다툼 때 화살을 자신의 가슴에 명중시킨 관중을 사면한 후 최고요직에 기용한 일은 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포용력이다. 그 과정에서 포숙아(鮑叔牙)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지만 최종 선택은 지도자의 그릇 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40명이 넘는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고의 리더십을 자랑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성공도 적을 포용한 인사에서 비롯됐다. 링컨은 치열한 대통령 경쟁자였던 윌리엄 시워드를 삼고초려 끝에 국무장관으로 앉혔다. 시워드는 링컨을 철저하게 무시했던 사람이었다. 링컨은 선배 변호사이자 자신을 ‘긴 팔을 가진 고릴라’라고 경멸했던, 민주당 출신 정적 에드윈 스탠턴을 전쟁장관(국방장관)에 기용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의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새먼 체이스 오하이오 주지사를 설득해 재무장관으로 썼다.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끈질기게 반대한 참모들에게 링컨은 “그런 바보짓은 수천 번을 해도 좋다”며 밀어붙였다.
                                                                 

                                                  <에이브러햄 링컨>

 이런 사례들은 국민 대통합을 다짐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첫 조각(組閣) 때 적극 본받을 만하다. 모든 지역·성별·세대를 골고루 기용하겠다고 약속한 박 당선인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모델로 삼으면 좋겠다. ‘100% 국민’의 대통령을 기치로 내걸었던 박 당선인과 ‘하나의 미국’을 공약한 오바마는 닮은 점이 많다.

 

  오바마는 1기 각료 구성 때 20개의 자리를 인종·성별·연령·정파 별로 균형 있게 배분했다. 경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힐러리 클린턴에게는 국무장관직을 맡기고, 야당인 공화당에도 두 자리를 나눠줬다.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 소수인종에 무려 아홉 자리, 여성 몫으로 다섯 자리를 배정한 것은 파격이었다. 이런 인사에 상찬이 쏟아졌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탕평 인사를 제일성으로 천명한 박 당선인도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인사를 보여줘야 감명을 줄 수 있다. 역대 정권보다 조금만 더 낫다는 평가를 받으려 한다면 실패작이나 다름없다. 감동 넘치는 인사스타일을 보여주지 못하면 역대 정권의 전철을 밟기 십상이다.

 

  산술적 균형이나 구색 맞추기 차원의 탕평, 정치적 계산에 따른 안배, 시혜를 베푸는 듯 한 모양새로는 감동을 주기 어렵다. 그렇다고 얼굴 마담형이나 명망가 중심으로 짜라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전문가와 안목을 지닌 인물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인사’가 그렇듯 첫 인상이 5년을 좌우한다. 천하의 인재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는 느낌을 주도록 과감해야 한다.

 

                                  <이 글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첫 인사를 발표하기 전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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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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