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 4대 강국에 모두 ‘근육질 지도자’가 포진하자 은근한 걱정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의 ‘애송이 지도자’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분위기가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던 터여서 더욱 음울했다. 일각에선, 착해 보이기만 한 문재인 대통령이 하필이면 이때 한국 지도자로 뽑혔을까 하는 불운 타령도 늘어놓았다. 문 대통령을 ‘종북’이라고 비난하기에 급급한 보수진영이 특히 그랬다. 문 대통령이 국정 가운데 외교안보 분야가 가장 취약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곁들여졌다.


 올 초부터 급반전을 이룬 한반도 정세를 복기해 보면 동전의 양면 같은 우연과 필연이 모두 행운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새해 첫날 북한 신년사가 남북관계의 분수령이 된 데는 평창 겨울올림픽이라는 운명적 매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 1월1일 신년사에서 북한 대표단을 파견하고 이를 위해 남북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 있다고 제안하는 징검다리가 된 게 평창 겨울올림픽이다.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는 북한이 이명박 정부 이래 오랫동안 대결 국면상태였던 남북관계의 매듭을 풀 계기를 찾는 데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은 안성맞춤이었다.


 여기에다 북한에게 우호적인 남쪽 진보정권의 존재는 플러스 알파 이상이었다. 북한이 문 대통령에게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재역을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신뢰감이 바탕에 깔린 덕분이다. 이는 남북한 양측에 행운의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올림픽이 있더라도 강경노선을 선호하는 보수정권이 남한에 존재했다면 북한이 스스로 약점을 보이면서까지 속내를 터놓기 껄끄러웠을지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존재도 지금까지만 보면 행운을 낳고 있는 듯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여겨진 트럼프 대통령은 알고 보면 평소에도 통 큰 협상의 주인공이었다. 강대국의 명분이나 자존심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트럼프여서 김정은을 일단 믿어보자고 나선 것일 게다.

 

  국무장관 시절 ‘전략적 인내’에 익숙했던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었다면 진보정권임에도 이처럼 과감하고 전광석화 같은 거래를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북한에 늘 속아왔다고 생각하는 민주당 정부라면 돌다리도 두드려보며 천천히 건너려 했을 개연성이 높다. 미국 조야에서는 북미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가 확정된 지금도 ‘신뢰하되 검증하라’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말보다 ‘불신하고 검증하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냉전 시절 화해와 긴장 완화는 미국의 보수적인 공화당 정부 때 주로 나왔다. 1971년 키신저-저우언라이 비밀 회담으로 미·중 화해를 이끌어낸 것은 역설적이게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공화당 정부였다. 19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과의 몰타 정상회담에서 냉전종식을 선언한 것도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아버지)이었다.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역사적인 담판을 눈앞에 둔 트럼프와 김정은은 이제 ‘신뢰’라는 단어만 명심하면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지도자로 기록될 것이다. 70여 년이란 긴 세월동안 불신 속에서 대결해왔기에 티끌만한 오해의 소지도 치명타가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렇잖아도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 터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이란 핵 협정에서 탈퇴를 선언한 것도 불신이 바탕에 깔렸기 때문이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오는 23~25일 폭파 방식으로 폐기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신뢰를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긍정적인 조짐으로 평가할만하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 합의 후 북한이 국제사회가 원하는 핵시설을 언제, 어디든 사찰하도록 하는 검증방식을 수용하면 의심의 여지는 현격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미국은 북한 체제보장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과 실천과정에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평화체제는 북한이 오랫동안 줄기차게 요구하고, 미국이 기피해온 현안이다.


 남북한이 함께 추구하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라는 필연은 우연을 매개로 삼으며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역사학자 E. H. 카가 우연을 매개로 필연이 관철된다고 했듯이 말이다. 평화와 통일을 향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의 동방정책과 시민의 열망이 쌓여 우연 같은 필연을 낳았던 것처럼 남북한과 미국은 역사적 행운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평화를 위한 신념과 운명도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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