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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이명박의 돈·권력·명예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가운데 하나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들곤 한다. 이 전 대통령은 닳을 정도로 이 책을 여러 번 읽었고, 해외순방이나 휴가를 갈 때도 빼놓지 않았다고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참모들이 애써 알렸다. 이 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돈 문제로 엄청나게 시달리자, 전 재산 기부를 공약한 뒤 ‘청계재단’을 설립할 무렵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법정 스님이 입적하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길상사 빈소를 찾아가 조문할 정도였다.


 그는 돈 욕심이 없다는 걸 기회 있을 때마다 극구 부각하려 했다. 아킬레스 건처럼 여긴 탓이다. 그는 선거 때 말썽 많았던 ‘BBK’와 ‘다스’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지금도 우긴다. 이 전 대통령이 한 측근의 입을 빌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변호인단 구성에 어려움이 있다”고 황당한 해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 재산이라곤 29만원 밖에 없다’며 추징금 납부를 거부했던 희언(戱言)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밝혀진 이 전 대통령의 재산 실상은 복마전을 방불케 한다. 1천억 원대의 차명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이 사실상 입증되고 있다. 사회기부형태로 세웠다는 청계재단마저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운영해 변칙상속 수법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됐다. 심지어 스님에게서까지 받은 뇌물은 11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소한의 명예를 지켜야할 대통령의 돈 집착은 서민들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그것도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형·아들·부인·사위·조카에 이르는 ‘가족 게이트’다.

                                                                                


 한때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비극은 돈과 권력을 동시에 잡으려 한 것이다. 돈이 일종의 신앙, 돈의 노예가 돼 있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정치인에게 돈은 필요악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까지 그토록 돈의 노예가 될 까닭이 있을까 하고 많은 이들이 의아해 한다. 법정 스님이 말하는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다.


 2007년 대선 후보자로 등록하면서 프로필에 적은 이명박의 가훈은 ‘정직’이었다. 어머니의 평소 가르침이 ‘정직하게 살아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겨뤘던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합동연설회에서 이명박 후보는 자신의 도덕성에 문제가 없음을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시장 시절에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그였으니 거짓말은 털끝만큼도 없을 법했다. 많은 국민은 믿지 않았겠지만. 그는 재임 시절인 2011년 9월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흑점도 찍으면 안 된다”고 가식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사기극이었음이 끝내 파헤쳐졌다. 국민을 속여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 거짓을 바탕으로 비리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증거물은 조작이고, 측들의 검찰 진술은 허위라고 버텼다. 자신의 대선 홍보물에 ‘전과경력 없음’으로 기재했던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엔 ‘전과 11범’이란 사실도 이번 검찰 수사 결과 처음으로 확인됐다.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네 차례의 수사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했던 검찰과 특검이 이번처럼 제대로 수사를 했더라면 이 전 대통령은 당선조차 되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 구속은 법의 심판 과정이기 전에 절제를 모르는 권력의 탐욕에 대한 엄중한 경종이기도 하다. 이 전 대통령의 구속 사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기소와 더불어 ‘제왕적 권력바로세우기’의 본보기다. 최고 권력자의 국민 기만과 권력 남용의 재발방지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정치보복을 하고 싶어도 이 정도의 죄상이 아니라면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지경이 됐을까 하는 반문도 가능하다. 심증은 넘쳤으나, 그동안 ‘스모킹 건’(결정적 물증)만 확보하지 못했던 적폐였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게다. 철저히 속여온 핵심 사건인 ‘BBK’와 ‘다스’는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상존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사화(士禍)까지 들먹이며 정치보복으로 몰아가는 견강부회는 정치적 언사에 불과하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을 함께 감옥에 보내는 게 세계인들에게 마냥 부끄러운 일일까.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