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탈북민이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느라고 여념이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선입견일 뿐이다.


 그런 편견의 틀을 깨는 단체가 있다. 남한 청년 6명을 포함해 50여 명의 탈북민 대학생들이 활동하는 ‘유니시드(Uniseed) 통일봉사단’이 그곳이다. 유니시드는 ‘통일의 씨앗’이란 뜻을 가진 이름으로, 이 봉사단은 매달 한 번씩 직접 만든 도시락을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나눠 준다.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겪는 자신들보다 노숙인들의 처지가 더 딱하다고 판단해서다.


 그들의 활동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 음식 문화 교류, 아동 복지시설 선물 전달, 그리고 쪽방촌에 김치와 연탄을 배달하는 활동도 연중행사로 벌인다. 또한 이들은 중국 등지에서 숨어 지내는 탈북민에게 거의 매달 생필품과 의류를 모아 보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모여 나눔으로 소통하고 사랑하며 하나가 되자”는 슬로건을 실천하고 있다.

                                                                        

 ‘미리 온 통일’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1시, 서울역 부근 만리현 감리교회 주방에 유니시드 통일봉사단 청년 10여 명이 어김없이 모여든다. 이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밥을 짓고 국을 끓인다. 또 돼지 불고기, 멸치 볶음, 오징어 오이 무침, 김치 같은 반찬도 능숙하게 만든다. 국과 반찬은 철따라 종류가 조금씩 달라진다. 겨울에는 따끈한 어묵국이나 된장국, 봄에는 싱싱한 봄나물, 여름엔 시원한 오이냉국처럼 계절을 감안해 메뉴를 구성한다.
                                                                       

 봉사단 청년들은 이렇게 정성껏 만든 도시락을 오후 5시 서울역 광장으로 가져가 노숙인 200여 명에게 이른 저녁 삼아 나눠 준다. 200인분의 도시락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 60만 원은 봉사단원들이 형편껏 갹출하거나 팬시 용품을 제작해 팔아서 보탠다. 때로는 각종 공모전에 참가하여 받은 상금으로 경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조리하는 과정이나 비용 마련 모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식사를 마친 노숙인들이 전하는 감사 인사가 그간의 노고를 잊게 한다.

 유니시드 통일봉사단을 창단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4학년 엄에스더(嚴Esther) 대표가 도시락 나눔 봉사에 나선 것은 2014년 7월부터다. 자신이 받은 장학금 250만 원을 종잣돈 삼아, 뜻을 같이 한 탈북민 대학생 친구 네 명과 함께 시작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뒤따랐다. 남북이 하나가 되게 하자는 생각으로 북한 음식인 두부밥 700개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는데, 예상과 달리 반응이 좋지 않았다. 낯선 음식이 노숙인들의 입에 잘 맞지 않은 탓이었다. 그 일로 봉사단원들은 “도움은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걸 주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노숙인들에게는 어떤 별미보다 따뜻한 밥과 익숙한 된장국이 최상의 메뉴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이후 반찬도 일반 가정집 식단으로 짜게 되었다.

 

 순수한 열정을 인정받다
 
 도시락 봉사 활동을 하면서 상처를 받는 일도 있었다. “물은 왜 갖다 주지 않느냐”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빨갱이들이 주는 음식은 안 먹겠다”고 말해 가슴을 아프게 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눔의 시간이 지속되면서 봉사단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일화도 생겨났다. 2014년 가을쯤이었다. 도시락 나눔 봉사를 마치고 떠나려는 순간, 노숙인 한 분이 엄 대표에게 다가와 봉지 하나를 건넸다. 봉지 안에는 찹쌀떡 세 개와 귤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엄 대표는 ‘누군가에게 받아 나중에 드시려고 챙겨둔 걸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2015년 여름에는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뜨거운 음식을 해 나르느라 진땀을 흘리는 봉사단원에게 노숙인 한 분이 종이 박스를 뜯어 부채질을 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봉사단원들과 노숙인들 사이에는 상대를 존중하는 진심이 오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도시락을 나눠 주느라 분주한 봉사단원에게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 주는 분, 배식이 끝난 뒤 쓰레기를 함께 치워 주는 분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간혹 도시락을 받아 갔다가 탈북 청년들이 어렵사리 마련한 음식이란 얘기를 듣고서는 “도무지 마음이 아파 먹을 수 없다”면서 돌려주러 오는 분들도 생길 정도가 되었다.

 창단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노숙인들이 먼저 봉사단을 반긴다. 엄 대표는 한 노숙인으로부터 “다른 단체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유니시드 청년들에게서는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때로는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가도 그런 말이 생각나면 주저앉을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탈북민 봉사단원인 조은희 씨는 “처음엔 노숙인들이 무서워 선뜻 다가갈 용기를 못 냈는데 이제는 먼저 안부도 묻게 되었고, 봉사하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유니시드 통일봉사단이 하필 노숙인들에게 손을 내밀게 된 것은 그들이 장애인이나 고령의 노인들 못지않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봉사단원 김미정 씨는 “남한 사람들은 우리가 노숙인 돕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며, “아마도 일부 노숙인들이 잦은 음주나 거친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도움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들과 함께 도시락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30대 후반의 한 남한 청년은 “탈북 친구들이 노숙인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전했다.

                                                                        

탈북민의 자존감을 높이다

 

 엄 대표는 두 번의 탈북 끝에야 겨우 남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2004년 3월 탈북에 성공했지만, 그해 10월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되었다. 하지만 2006년 중국으로 재탈북해 2008년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중국 옌지(延吉)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이 자신의 눈앞에서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가는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홀로 남아 도움을 청할 곳조차 없었던 당시, 엄 대표는 삶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거리에서 사지가 없는 노인이 입에 붓을 물고 글씨를 써서 생계를 잇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슴이 뭉클해져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낸 그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생겼고, 그 길로 무작정 장애인 시설에 찾아갔다. 하지만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신분증부터 보여 달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그때 “숨어 사는 사람은 좋은 일도 못 하는구나” 싶어 무척 서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엄 대표는 남한에 도착하자마자 지인에게 소개받은 장애인 사회복지 법인 ‘엔젤스헤이븐(Angel’s Haven)’을 찾아갔다. 그것이 봉사 활동의 시작이었다. 그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새벽부터 일어나 장애인들을 씻기고 시설 곳곳을 쓸고 닦았다. 학교 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고된 일상 속에서도 토요일 봉사는 빼먹는 법이 없었다. 힘에 부쳐 코피가 터질 때도 있었지만, 봉사 활동은 남한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봉사를 통해서 나도 어딘가에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죠.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존감도 부쩍 높아졌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 활동에 엄 대표가 더욱 빠져들게 된 것은 이후 개인적 아픔이 더해지면서부터다. 북한에 있던 남동생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1000만 원이나 들여 어렵게 탈북시킨 어머니가 암 판정을 받는 등 불운이 한꺼번에 찾아오자 엄 대표는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로 인해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을 때 가족보다 먼저 떠오른 것이 자신을 응원하고 걱정해 주던 동료 봉사자들의 얼굴이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엄 대표는 “봉사야말로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탈북자들의 극단적 선택을 막는 해법임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탈북자의 자살률이 남한 사람의 세 배에 이른다고 하니,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

 개인적 상처로 아파하던 엄 대표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탈북민이 자존감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2014년 자원봉사단을 창단했다. 지인들을 설득해 조리를 위한 장소를 비롯해 도시락, 젓가락 등 물품을 후원받았던 엄 대표는 좀 더 안정적인 봉사단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 음식을 개발·판매하는 사회적 기업 ‘오순도순’을 창업했다.

 이 기업은 2015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Korea Social Enterprise Promotion Agency)이 주최한 전국소셜벤처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탈북민 경제 자립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그리고 2016년 11월부터는 서울 성동구 심(SEAM; Social Entrepreneurship and Mission) 센터에서 푸드트럭 영업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심센터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을 키우는 곳으로, 엄 대표는 이곳에서 진행하는 푸드트럭 운영을 기반 삼아 ‘유니시드 컴퍼니’를 차려 봉사 활동의 폭을 넓힐 계획이다.

 엄 대표의 꿈은 대학교마다 유니시드 컴퍼니의 지부가 생겨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통일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탈북민의 남한 정착이 ‘남한 사람화’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 시대의 가교’가 되게끔 하려고 한다. 그것이 진정한 탈북민의 정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탈북민 자원봉사단들의 다양한 활동

 

 자발적 봉사 활동을 전개하는 탈북민 자원봉사단은 비단 유니시드 통일봉사단 하나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선정한 10여 개의 봉사 단체로 구성된 ‘착한(着韓)봉사단’이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2015년 11월에 구성돼 1년에 두세 차례 합동 봉사 활동을 펼치는 착한봉사단은 탈북민 회원이 50% 이상인 봉사 단체를 선정 기준으로 삼는다.

 남북하나재단(Korea Hana Foundation) 관계자는 “착한봉사단은 탈북민들이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수혜자가 아닌 기여자라는 인식을 제고하고, 대한민국에서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정착 의지를 높임과 동시에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 시작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착한봉사단은 2017년 4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Sudokwon Landfill Site Management Corporation) 안에 조성된 숲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통일 나무’를 심는 행사에 참여했다. 기아자동차 가족 봉사단과 함께 진행한 이 행사는 남북한 주민들이 직접 통일을 염원하는 나무를 심고 이후 이 나무를 북한에 보내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날 착한봉사단의 일원이 되어 통일 나무 심기에 참가한 탈북민 자원봉사단은 광명하나향우회, 하나봉사회, 새터민햇빛사랑회 등이다.

 대한적십자사 산하의 하나봉사회 곽수진 대표는 “봉사라는 단어를 남한에 와서 처음 들어 봤다”면서 “우리는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돕고 탈북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함경북도 무산이 고향인 안영애 씨는 “북한의 산들은 대개 민둥산인데 통일이 되는 날 고향 땅에다 옮겨 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었다”고 말했다.

 착한봉사단 합동 봉사 활동은 2016년 5월 14일 첫발을 내디뎠다. 경기도 연천군 나룻배 마을이 첫 무대였다. 나룻배 마을은 휴전선과 연접한 최북단 마을 가운데 하나다. ‘평화생태마을’로 지정된 이곳에 위치한 하천은 2009년 북한이 황강댐을 방류하는 바람에 6명의 사망자를 냈다.

 봉사 활동은 마을 어른들에게 북한 음식 대접하기, 통일을 염원하는 벽화 그리기, 마을 가꾸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착한봉사단이 준비한 북한 음식은 두릅냉면, 북한식 만두, 두부밥, 인조고기 등 현재 북한에서 인기 있는 먹거리였다.

 이밖에도 착한봉사단은 2016년 5월 국립현충원의 무명용사 묘를 찾아 벌초를 비롯한 환경미화 봉사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11월에는 서울역 인근 쪽방촌에 있는 독거 노인들을 방문해 직접 담근 김치를 전달하기도 했다. 착한봉사단 이외에도 2015년 이후 크고 작은 탈북민 봉사 단체 50여 곳이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KOREANA 2017년 가을호에 실린 것입니다.                

 

TALES OF TWO KOREAS

 

Volunteerism Laying the Groundwork for Unification

 

Kim Hak-soon Journalist and Visiting Professor, School of Media and Communication, Korea University
Ahn Hong-beom Photographer

 

 The notion that North Korean defectors are content with merely receiving help is a stereotype as wrongful and unhelpful as the view that they are simply preoccupied with the hardships of adapting to their new environment. Those are sheer prejudices. That generosity and altruism are innate human qualities is well established by biological and behavioral sciences, including the tendency of people in need to help others in a worse situation.

 A small group of people has broken the hard shell of such prejudices. They formed a volunteer group called UniSeed, consisting of some 50 undergraduate students who are North Korean defectors and six young South Koreans. Members of UniSeed, short for Seed of Unification, raise funds for meals they themselves prepare and distribute once a month to people who live rough near Seoul Station. These students from North Korea believe that homeless people are in worse situations than they themselves who are going through tough times surviving in a new society.

  The group works on a variety of charity activities year-round, reaching out to share what comforts they can offer to people in need: They pool money to give gifts to child welfare facilities and make kimchi that they deliver, along with coal briquettes for heating, to residents of poor neighborhoods. Almost every month, they also gather donations for daily necessities and clothing to send to defectors who are hiding in China and other countries. Through such activities, they are putting into action their group’s slogan: “Young people of the two Koreas should get together to communicate with each other through sharing and become one by loving each other.”

 

A Taste of Unification

 

 About 10 UniSeed volunteers arrive at the kitchen of the Mallihyeon Methodist Church near Seoul Station at 1 p.m. on the third Saturday of every month. They are assigned different tasks and work quickly and efficiently, mindful of a self-imposed deadline. They cook rice, soup and pork bulgogi; they stir-fry dried anchovies, make a salad of squid with cucumbers, or pickle kimchi. They prepare different kinds of soups and side dishes each season. They make hot fish-cake soup or soybean paste soup in winter, fresh wild greens salad in spring, and chilled cucumber soup in summer.

  At 5 p.m., the young volunteers deliver the boxed meals they prepared as an early dinner to about 200 homeless people at Seoul Station Plaza. It costs them 600,000 won to make boxed dinners for about 200 people; they chip in their own pocket money and raise the rest of the amount by selling small handicraft items they produce. Sometimes, they join contests to raise money, and the cash prizes they win help fund the meals they prepare. It is not easy to raise money and cook so many meals but they feel rewarded when they hear words of thanks from the people they serve.

  Esther Um, the founder and head of UniSeed, is a senior majoring in Chinese language at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She began delivering boxed dinners to homeless people in Seoul in July 2014. She launched the effort with the help of four other students from North Korea with 2.5 million won she had received as scholarship.

 Like any fledgling effort, they learned by trial and error how to do such outreach right; even with the best intentions, gestures of caring can fall short. They once made 700 boxes of tofu rice (fried bean curd chunks stuffed with rice), a North Korean dish, to distribute among homeless people, wanting to help alleviate their hunger and at the same time to offer a taste of North Korean food. But contrary to their expectations, the recipients of the boxed meals did not seem to like it. The unfamiliar food did not suit their taste. This taught the volunteers a lesson: Helping is not one-sided giving; it must be a response to what people in need want. They realized that more than anything else, people who live rough just want a warm bowl of rice and delicious soybean paste soup. This prompted them to prepare homestyle meals.

 

Touching Hearts

 

 Hurt feelings come with the territory, and volunteers learn to take them in stride. Some of the homeless men would snap at them in a fit of temper, “Why didn’t you bring us water?” Others simply rejected their lunch boxes, saying, “I’ll not eat what pinkos are giving us.” But as time went by, heartwarming gestures came, too, moving the volunteers’ hearts. On an autumn day in 2014, Um was about to leave after serving boxed meals when one of the men approached and handed her a bag of three small glutinous rice cakes and an orange. She was deeply moved by this small gift, thinking aloud, “He must have received them from someone and stashed them away to eat later…”

 On a sweltering summer day in 2015, another man made a fan out of cardboard and fanned perspiring volunteers who were delivering warm food to them. A growing sense of appreciation for the volunteers arose from the people they served, manifested in different gestures. When it rained, some of them would hold umbrellas over the busy volunteers, and after the boxed meals were delivered, more and more of them joined the volunteers in cleaning up the area. Some even came back to return their meals, having found it hard to eat them after hearing that they had been prepared by young defectors who were struggling for survival themselves.

 Three years after the launch of UniSeed, the volunteers are now being received with open arms. Um said she once heard a man say, “I sometimes sense that people from other volunteer groups work mechanically. But I can feel sincerity in what the UniSeed people are doing.” This made her decide to hang in there despite difficulties, she added.

  Cho Eun-hee, a UniSeed volunteer from North Korea, said, “At first, I didn’t have the courage to approach homeless people because I was scared. But now, I can ask them how they’re doing. I can’t wait for our days of service to them.”

 UniSeed decided to reach out to people who live rough on the streets in the first place because its members believed that their lives were no less tough than that of people with disabilities or elderly people living in poverty. Kim Mi-jeong, another volunteer, observed, “South Koreans don’t seem to like seeing us help homeless people. They seem to consider them undeserving of help because they drink too much or behave in an unruly manner.”

 

 Sense of Self-worth
 
 Um barely reached South Korea on her second attempt. In March 2004, she fled North Korea but was captured in China and repatriated in October that year. In 2006, she fled to China again, and in 2008, she finally reached South Korea. In the process, she had to helplessly watch her mother and younger sister get caught by Chinese police in Yanji, northeast China.

 Hopeless and desperate, she considered ending her own life. But then she happened to see an old man on a street who had no limbs and held a brush between his lips, writing calligraphy to make a living. Deeply touched by the scene, she regained her courage to live on. She suddenly felt compelled to help other people and visited an institution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But when she said she wanted to do volunteer work there, a staffer told her to show them her ID card first. It made her feel very sad. “For a defector, even doing a good deed is neither simple nor easy,” she thought.

  She then went to Angels’ Haven, a welfare center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that an acquaintance had told her about right after she arrived in South Korea. Thus began her volunteer activities. Every Saturday, she rose early in the morning, helped people wash themselves, and cleaned every corner of the center. She never skipped a single Saturday despite her busy schedule as a student and part-time worker. Sometimes she had a nosebleed. But the volunteer service was the only pleasure she found in South Korea.
 

 She said, “I’ve strongly felt through doing volunteer service that I’m also needed somewhere. I found my pride buoyed significantly when I realized that I could do something for somebody else, not simply letting myself be helped by others.”

 She dedicated herself more to doing volunteer service after tragedy struck her family once again. She became deeply depressed when she received news about her younger brother’s death in the North and when her mother, whom she had managed to spirit out of the country by spending as much as 10 million won in bribes, was diagnosed with cancer. Once again, she was on the verge of suicide when the faces of volunteers, who had cheered her up and showed sympathy for her, flashed across her mind. This second close call made her realize, she said, that “doing volunteer work is also a solution preventing defectors from making extreme choices.” She has a point: Statistics show that the suicide rate among North Korean defectors is three times as high as that of South Koreans.
 

 Rising above the devastation caused by her own family’s tragedy, Um launched UniSeed in 2014 to help other defectors regain their sense of self-worth. She persuaded people she knew to allow volunteers to use a kitchen and supply them with chopsticks and lunchboxes for the meals they would prepare. She also founded Osundosun, meaning “amiably and harmoniously,” a social enterprise that produces and sells North Korean foods to raise funds for a more stable operation of UniSeed.
 

 In 2015, Osundosun won a top prize in a national social venture competition sponsored by the Korea Social Enterprise Promotion Agency. Its staff underwent a refresher self-reliance course run by the Korea Racing Authority. Since November 2016, Osundosun has been running a food truck business with the help of the SEAM (Social Entrepreneurship and Mission) Center, a faith-based community project in Seongdong District, Seoul, that supports social enterprises. Um now plans to expand her services by launching UniSeed Company based on the food truck business.

  She envisions branches of UniSeed Company sprouting at each college and university campus for young people from both Koreas to join hands and create an environment for unification. Through this effort, she wants to see defectors become a bridge for the era of unification, instead of simply being South Korean residents. This will open a genuine way for defectors to settle down here, she believes.

 

Returning Love Received

 

 Besides UniSeed, there are other volunteer groups operated by defectors. One of them is the Chakhan Volunteer Group. (The word “chakhan” here refers to defectors who have arrived in South Korea; its pronunciation implies “good” or “good-hearted.”) Chakhan is made up of 10 small volunteer clubs selected by the Korea Hana Foundation, an agency under the Unification Ministry helping defectors to settle down here. Since its launch in November 2015, Chakhan has been organizing joint volunteer work by its member clubs, each with more than 50 percent of North Korean defectors as their members, two or three times a year.

  An official of the Korea Hana Foundation said, “The Chakhan project was launched to help defectors strengthen their resolve to settle down smoothly here and achieve social unity by raising their awareness as contributors, not simply as beneficiaries. Through volunteer service, they can return love, which they have received here, to neighbors in need.”

 In April this year, Chakhan volunteers planted trees in a forest developed on a landfill in Incheon, thinking of their own hometowns back in the North, together with volunteers from Kia Motors. The event was doubly significant in that South and North Koreans joined hands planting trees that will be sent to the North after they have grown, affirming their shared dream for national unification. The defectors who planted trees that day were volunteers from Chakhan member clubs, such as Gwangmyeong Hana Hyanguhoe (Gwangmyeong Hana Residents Group), Hana Bongsahoe (Hana Volunteers Group) and Saeteomin Haetbit Saranghoe (Defectors Who Love Sunshine).

 “I heard of ‘volunteer service’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after I arrived in South Korea,” said Kwak Su-jin, the head of Hana Bongsahoe, which is affiliated with the Korean Red Cross. “We started volunteer service to help neighbors in need and change people’s perception of defectors.”

 Ahn Yeong-ae, who hails from Musan in the North Korean province of North Hamgyong, said, “Most mountains in the North are bald. I planted trees in hopes of transplanting them to my hometown after unification.”

 Chakhan volunteers’ joint service activities started on May 14, 2016. They did their first volunteer service in a ferry port village in Yeoncheon County, Gyeonggi Province. It is one of South Korea’s northernmost villages, close to the Demilitarized Zone. They served North Korean dishes to the elderly, painted the walls of houses, cleaned roads and beautified the streetscape. The dishes the volunteers prepared included popular North Korean foods, such as cold noodles garnished with shoots of wild fatsia greens, North Korean-style dumplings, tofu rice and soy-meat. In May 2016, Chakhan volunteers mowed and trimmed greenery around the tombs of the unknown soldiers at the National Cemetery.
 

 Besides Chakhan, about 50 other groups of North Korean defectors have also been doing volunteer service across the country since 2015.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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