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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명견만리와 과학기술 인식

 천동설을 가르쳤던 하나님과 지동설을 믿게 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은 다른 분일까? 지동설을 주창한 과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교회가 천동설을 믿은 근거는 신이 인간을 중심으로 우주를 창조했다는 하나님 말씀을 기록한 성서였다.

 

  우주를 창조했다고 확신하는 종교는 창조주의 무오류를 전제로 한다. 신은 오류가 없어야 하는데 왜 이런 우주의 모순이 일어났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1992년 10월31일 로마교황청이 1633년의 갈릴레이 종교재판에 대해 과오를 인정했을 뿐이다.


 가치중립적인 과학과 신념에 바탕을 둔 종교의 충돌은 진화론과 창조론에서 절정에 달한다. 양보할 수 없는 존립 근거가 달린 문제여서다. 진화론의 탄생은 인류를 뒤흔든 혁명이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 영역보다 사회 전반에 더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신이 창조했다는 인류(호모사피엔스)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제 신이 되려고 할 정도다.(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과학은 진화론을 신봉하지만 특정 종교는 여전히 창조론을 확신한다.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지명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우려를 낳는 것은 그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글과 강연으로 창조과학의 전도사 역할을 한 탓이다. 청와대는 후보자의 한국창조과학회 활동을 신앙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연구 관련 주무부처가 아니어서 창조과학회 이력은 상관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그동안 박 후보자가 펼친 창조과학 활동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실제로 바이오업계는 박성진 후보자 지명 소식에 걱정이 적지 않다고 한다. 벤처기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분야가 바이오 쪽이어서다.


 박성진 후보자가 2007년 창조과학 학술대회에서 한 말은 과학과 종교의 충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육, 연구, 언론, 법률, 기업, 행정,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1세대 창조과학자들의 뒤를 이을 젊은 다음 세대들의 대대적인 양육이 필요하다.”

                                                                       

 

   창조과학회 이사직을 사퇴하고, 홈페이지의 글을 삭제했다고 그의 생각이 달라질까. 프란치스코 교황조차 2014년 교황청 과학위원회 검토를 거쳐 진화론과 빅뱅이론이 가톨릭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국에서는 공직자의 신념이 직업윤리보다 우선이었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증언이 숱하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2014년 ‘상상, 현실이 되다’는 책을 창조과학론자로 분류되는 인물과 공동으로 펴낸 사실 때문에 창조과학 신봉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장관으로서 답변하기가 적절치 않다”고 답변해 구설에 올랐다. 사실 유 장관은 창조론에 대한 생각보다 과학기술과 무관한 그의 경력이 더 많은 지적을 받았다. 대기업 임원, 전경련 교육원 교수, 국회의원 낙선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산업계 인사여서다.


 전대미문의 과학사기사건인 ‘황우석 사태’의 공범격인 인물인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과학기술혁신본부 초대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나흘 만에 사퇴한 일은 새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다시 보게 된 소동이었다.

                                                                                     


 조금 넓혀보면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인선도 과학에 대한 인식 결여가 드러난다. 류 처장은 살충제 달걀 파동에 이어 터진 생리대 부작용, 유럽산 간염 소시지 파문에 대한 수습도 허둥대고 있다. 그는 약국을 운영해 본 게 전부일 뿐 아무런 행정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 조직 운영의 기본 상식이 없어 거대한 국가 조직의 수장으로는 부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처음부터 뒤따랐다. 고위공직자의 책임감도 찾아볼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윤진숙 해양부산부 장관’에 비견되는 오명을 떨쳐버리지 못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초기에 감동을 준 인사와 달리 과학기술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생각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수준의 인사가 이뤄진 것은 안타까운 일다. 해당 분야의 수장들은 한국의 미래가 걸려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야 할 선봉장이다. ‘명견만리’(明見萬里)라는 책을 온 국민에게 추천할 정도인 대통령의 인식에 참모진이 제대로 보좌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