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절박한 국가인력구조 재편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 홀딩스 회장은 한국 젊은이들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투자를 하려면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미래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방한한 그가 그래서 찾은 곳이 한국에서 청년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는 노량진이었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한국 청년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은 로저스는 깜짝 놀랐다. 젊은이들이 바라는 직업 1위가 공무원이어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도전정신이 사라진 한국에서 더 이상 투자 매력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두 차례 세계 일주를 한 로저스는 한국처럼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나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통계청이 2016년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청년층 취업시험 준비생 가운데 40%가 공무원시험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수치는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가장 높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고교생의 장래희망 1위도 공무원, 2위가 건물주라는 점이다. 이런데도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더불어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로저스가 보는 한국의 장래가 밝다면 외려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젊은이가 공무원이나 대기업만 좇으면 5년 이내에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기간 노량진 고시촌을 방문해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에게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충원하겠다고 약속해 이곳 분위기는 한층 들떠 있다. “추경 통과됐어요. 이번에 모두 파이팅 합시다.” 국회가 추가경정 예산안을 통과시킨 지난달 22일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의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공무원시험 합격률이 1.8%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 정부의 졸속 교사 수급정책으로 초등교사 임용대란이 심각하다. 전국 시·도교육청이 초등교사 선발인원을 최대 90%가량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2018학년도 공립학교 교사 선발계획’을 보면, 올해 초등교사 선발인원은 지난해에 비해 43% 줄었다.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 학령인구 감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초등교사 선발인원을 대폭 늘린 업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간한 ‘대학 전공계열별 인력수급 전망 보고서’는 교육계열 인력이 2025년까지 17만4000명이나 초과 공급될 것으로 내다본다.

                                                                                    


 자연계 우수학생들의 의대 쏠림현상과 더불어 의사인력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도 내부자들이 공식적으로 제기할 정도다. 대한의사협회가 2019년부터 의과대학 입학정원이 축소돼야 한다는 입장을 최근 보건복지부에 정식 요청했다. 한국 인구가 2000년 대비 2014년에 7.3% 늘어났으나, 같은 기간 의사 수는 7만2503명에서 11만2407명으로 55%나 증가해 의사인력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현상은 역대 정부가 정책적 합리성보다 정치적인 의도로 의대 신설을 인가하거나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린 탓이다.


 이와는 달리 공학계열은 2025년까지 7만7000명 정도의 인력부족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국고용정보원이 경보를 발령했다. 가장 심각한 전기전자분야를 포함해 공학계열 전반에서 고급 인력 부족현상이 두드러질 전망이라고 한다. ‘서울대 공대 대신 무조건 의대’란 공식은 너무나 오래된 걱정거리다. 서울대 합격 포기자가 해마다 10% 달하고, 그 가운데 약 40%가 공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대학생의 20%가 창업을 검토하고 10% 정도는 실천에 옮기는 반면, 한국 대학생의 3%가 창업을 꿈꾸며 0.1%만 실제로 창업에 도전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한 격차는 성공확률이 낮은 토양이 주요원인이다. 젊은이들을 나무랄 수 없다. 지난 20년간 억만장자를 분석한 결과, 부의 대물림이 아닌 자수성가형은 미국 71% 일본 81%인데 비해 한국은 26%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가인력구조 재편의 긴요성을 보여주는 지표들은 차고 넘친다. 국가 차원에서 치밀한 전략과 실행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한국의 장래가 밝지 않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야할 때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큰 그림을 세밀하게 그리고, 정치적 고려 없이 실행해 나가야 할 숙제다. 경제계, 대학을 포함한 이익집단의 이기주의와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은 난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해관계를 지혜롭게 조정하는 게 정치의 본령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