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섬나라 일본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 나쓰노 다케시 게이오대 교수가 이 조어를 창안한 것은 10년 전 일이다. 나쓰노 교수는 대륙에서 1000㎞나 떨어진 섬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고유한 생태계를 형성했지만, 외부종이 유입되자 면역력 약한 고유종들이 멸종 위기를 맞은 갈라파고스 섬들의 상황에 빗대어 이처럼 명명했다.

 

   휴대전화 인터넷망 아이모드(I-mode)의 개발자이기도 한 그는 소니, 파나소닉 같은 일본의 초일류 IT기업들이 세계 표준을 무시한 채 내수시장만을 위한 제품을 고집한 게 갈라파고스 현상을 자초했다고 진단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면서 인기몰이를 하던 일본이 고립을 초래해 쇠락의 길을 걸은 것은 더욱 역설적이다. 일본 기업들이 도전보다 안주를 택했기 때문이다. 나쓰노는 이를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지부조화는 명백한 판단 착오였음에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끝까지 믿으려하는 심리현상이다.

                                                                                    


 오는 7월3일 전당대회를 계기로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자유한국당도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져 있는 듯하다. 소속 정당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곧이어 치러진 대선에서 참패한 한국당은 혁신은커녕 진화를 멈춘 섬처럼 보인다.

 

  세상이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한국당의 시계는 여전히 2016년 가을에 머물러 있다. 어리석은 선택임에도 끝까지 자신이 옳았다고 믿는 인지부조화 현상도 일본 IT기업들과 흡사하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며 자기들끼리 권력싸움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세상의 흐름과 동떨어져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자기반성과 혁신 없이 강한 야당만 추구하다보니 무리수가 등장한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너나없이 좌충우돌 막말을 쏟아내 한국당 혐오증을 가중시킨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권을 다 잡은 것처럼 보이는 홍준표 대표 후보가 ‘아무말대잔치’의 선두주자다. 홍 후보는 이미 대선 과정에서 막말의 극치를 과시했다. 그의 막말은 전통적인 보수성향의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리게 한다는 비판이 많다. 홍 후보는 “중도층이나 외연 확장 같은 말은 학자들이나 하는 소리”라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국당은 국회 107석을 보유한 제1야당의 존재감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과시하고 있다. 인사 문제를 빌미로 한국당은 뭐든지 퇴짜 놓는 당 같은 모습이다. 한국당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예방을 저지하고, 청와대가 주도하는 여야정 협의체 참여를 거부했다. 문재인 대통령 초청 국회 상임위원장 오찬에도 불참했다. 국회의장과 원내 대표의 주례 회동에도 연속으로 불참했다. 한국당의 의도는 제1야당의 선명성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기세를 초반에 꺾겠다는 심산에서 나온 것 같다.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主思派) 정권이라고 공격하는 것도 극우정당의 잔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증좌의 하나다. 종북이라는 공격만하면 지지율이 저절로 올라갈 거라는 오판이 확장성은커녕 운신의 폭을 점점 좁게 만든다는 걸 모르는 낡은 습성이다.

 

   대구·경북 유권자와 60대 이상 노령지지층에 매달려 있는 것도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부추긴다. 벌써부터 홍 후보가 당권을 쥐고 그의 막말로 당이 운용되면 젊은 층의 외면과 ‘대구경북당’이란 낙인찍기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당내에서도 나온다. 친박계는 당을 쇄신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고, 홍 후보는 당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들려온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머지않아 자책골로 지지도가 추락하고 자신들의 지지도는 자동적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공식을 믿는 듯하다. 과거 정권들의 선례에 비춰볼 때 결국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한다면 거대한 착각이다.


 자기성찰도 없이 야당의 존재감만 찾으려 드니 정당 지지율은 대선후보의 지지율 24%에 턱없이 못 미치는 한자리 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같은 다른 야당과 거의 동률이나 다름없다. 실력에 비해 몸집이 너무 크다는 힐난도 그래서 나온다.


 사실 당내에서도 7·3 전당대회 결과보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는 얘기가 많다. 당 대표가 누가 되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치열한 혁신을 통해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앞날은 밝지 않을 게다. 일본기업들은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오픈 플랫폼 전략으로 돌파하면서 지난날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집념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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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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