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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적폐청산=정치보복’이란 등식

 ‘모든 작용에는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뉴턴의 운동 법칙은 정치에 적용해도 유효할 때가 많다. 개혁에 대한 반개혁세력의 반격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속도를 내자 보수 야당의 반발도 흡사하다.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논리가 뒤따른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처럼 적폐청산이라고 쓰고 정치보복이라고 읽는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정원 7대 정치개입사건’ 재조사에 들어가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한풀이식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한다. 이 중에는 검찰 조사가 이미 끝난 사건도 있고, 대부분 정치적으로 이슈화돼 여론으로부터 혹독하게 검증을 받았던 사안들인데 이제 와서 무얼 더 캐내려 하느냐는 부연설명도 곁들인다. 짐짓 국정원 직원들 걱정까지 해준다. “국정원 공무원들은 무슨 죄가 있느냐?” 대부분의 언론기관이 쉬는 토요일임에도 긴급 논평처럼 냈다.


 재조사 사건은 2012년 대선 댓글사건, 북방한계선(NLL) 관련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보수단체 지원 의혹,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박원순 서울시장 사찰 의혹, 불법 해킹 의혹, 최순실 사건 비호 의혹 등 하나같이 중요하고 민감한 이슈다. 이 가운데 댓글 사건은 수사하던 검사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 인사로 쫓겨나기까지 했던 중대 사안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처벌받아야할 불법행위였다.

                                                                               


 일부 야당은 검찰이 다 조사한 사건을 다시 들춘다고 반발하지만, 권력의 주구역할을 한 검찰조사를 믿고 넘어가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정보기관과 정치검찰을 동원해 공작정치를 일삼았던 박근혜 정권 사람들이 적폐청산을 통해 탈정치권력기관으로 바로 세우겠다는 새 정부를 보고 정치보복이라니 적반하장이다.

 이명박 정부 때의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 등 속칭 ‘사자방’은 복마전으로 불릴 정도였다. 정권 차원의 적폐 상징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뿌리의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았다. 보수야당의 반발과 달리 국민여론조사에서는 4대강 사업 재조사 찬성의견이 무려 78.7%다.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 바른정당의 지지자 71%도 ‘재조사 찬성’이다.

 

  대다수 국민은 적폐청산대상으로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 인사들과 보수야당은 심각한 녹조현상과 가뭄 대책에 관해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호도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세월호 엄정 수사,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정윤회 문건 재조사 같은 적폐청산 작업도 이뤄졌거나 진행 중이다. 
                                                                                    

 

 적폐청산 전반에 관한 여론도 매우 호의적인 건 마찬가지다. 지난 주말 발표된 한국일보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노력에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78%로 집계됐다. 적폐청산에 대한 압도적인 긍정 평가는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국민적 열망의 연장선으로 봐도 무방하다. 시대가 변한 지금 정치보복이란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증거다.  


 당내 갈등 치유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전선구축을 목표로 삼은 한국당은 새 정부의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치환해 개혁법안이나 정책마다 반대에 나설 개연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정치보복이란 말은 잘못한 게 그리 없는데도 정치적 탄압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야당이 ‘정치보복’이란 말만해도 동정표를 얻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격변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밝혔듯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사람을 겨냥한 정치보복이 아니라 시스템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시스템 구축하는 일은 적폐청산의 성공여부에 달렸다. 박근혜 정권이 내걸었던 모순적인 ‘비정상의 정상화’는 새 정부에서 적폐청산을 거쳐 비로소 정상궤도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적폐청산에 매달리면 협치는 물거품이라는 주장은 협박성 언어에 가깝다. 협치 거부를 위한 명분쌓기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적폐청산은 곧 정치보복이라는 등식이 여전히 통용된다는 생각도 이젠 청산 대상의 하나다. 적폐청산 없이 제대로 된 개혁은 불가능하다. 적폐청산 없이 밝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