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같은 입으로 자유와 민주를 욕보이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민주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횡행하는 모순을 목도해야 하는 늦가을이 스산하다. 자유주의의 첨병이자 보루로 자처하는 자유경제원이라는 단체는 국가주의의 전사가 아닌가 싶은 느낌을 준다.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뛰어넘어 자유와 민주적 가치와 역행하는 교과서 국정화의 전위대로 나선 듯하다.


 보수의 새로운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전도사로서 보수진영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보수의 여전사’로 미화되는 전 총장은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률이 1%에도 못 미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 실패’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정부가 개입해 국정 교과서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시장실패 논리대로라면 편향이 심각하다고 단언하는 교육 출판 매체 역시 국유화해야 옳다. 보수주의자는 자유를 강조하면서 시장논리에 맡기자고 주장하고, 진보주의자는 평등에 방점을 찍으며 정부 역할을 확대하자는 견해를 펼친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교학사 교과서의 품질에 문제가 없는지를 먼저 묻고, 정부가 개입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해야 맞다. 자유주의는 국가가 국민의 생활에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하지만 전 총장은 독재체제 시절처럼 하나의 교과서로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고 다닌다. 민주화투쟁 세력과 정치 인연을 처음 맺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그런 인물을 ‘영웅’으로 추어올리면서 “밤잠 자지 말고 다니며 강연해 달라”고 주문한다.

                                                                                    


 대기업이 후원하는 자유경제원과 전 총장의 생각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경제, 문학, 윤리, 사회 교과서까지 바꿔야 한다고 우긴다. 전 총장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완성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며 당당하다. 이 분야의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불평, 남 탓, 패배감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이댄다.

 

  대표적인 예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최인훈의 ‘광장’,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황순원의 ‘학’, 이태준의 ‘밤길’ 같은 명작을 사실상 가르치지 말아야할 작품으로 매도한다. 이들은 집권 세력과 기득권층이 “잘 한다, 잘 한다”고 추어주니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게 아닌가 싶다. 


 이들이 휘두르는 사상 검증의 칼은 자신들이 그토록 타매하는 북한의 사고방식과 흡사하다. 북한이 인민의 사상을 개조하듯 정부가 국민의 사상을 개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체주의 사고나 다름없다. 자유주의는 전체주의와 권위주의 극복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유주의 지식인이라는 다수의 사람들도 그리 다르지 않다. 김무성 대표, 황교안 국무총리, 황우여 교육부장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등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받들어 실천하는 4인의 주역들도 마찬가지 논리를 편다. 검정교과서가 오히려 다양성을 파괴한다는 이들의 궤변은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일이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다수 국민들의 반대의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교과서 국정화가 옳은 길”이라고 견강부회한다. 그는 “교과서처럼 전문적인 분야는 (국민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판단할 몫이 따로 있다”고 실토했다. 국민보다 전문가들의 반대가 훨씬 더 많은데도 논리가 꼬여 이 같은 자기모순을 불러오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29일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연설했던 유엔 총회는 2년 전 “하나의 역사 교과서만을 승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다양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다양한 교과서들이 승인됨으로써 교사들이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사 교과서 서술과 역사교육의 방향을 제시했다. 유엔은 더 나아가 “역사교육은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원칙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순투성이의 자유주의자들은 유엔이 틀렸다고 반박하는 성명서라도 한번 내보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를 옹호해 온 사람이라면 국정 역사교과서 편에 서서는 안 된다. 국정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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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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