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 정기국회가 열릴 때면 실세 의원들이 거액의 자기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는 꼴불견 행태가 어김없이 나타난다. 여기엔 실세 의원들이 화급하지 않은 지역구 예산 잔치를 벌이는 동안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밑바닥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국가예산 수천억 원이 뭉텅이로 잘려나가는 데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실세 의원들이 언론으로부터 비판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즐기는 후진성이다. 중앙 언론에서 비판 기사를 쓰면 지역주민들이 ‘고생한 의원 나리’라고 박수를 쳐 주기 때문이다. 부정청탁이나 다름없는 쪽지 예산을 통과시킨 직후 국회 예산결산위원들이 하필이면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정치 후진국으로 ‘예산심의 시스템연구’ 외유를 떠난 것은 코미디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성격은 달라도 이와 흡사한 권력기관과 권력자들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다. 표본적인 사례는 검찰 수사에서 숱하게 드러난다.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됐다가 추석 연휴 직전 무죄를 선고받은 이석채 전 KT 회장에 대해 언론들은 하나같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질타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취임해 연임하던 이 전 회장이 박근혜 정부의 눈총에도 물러나지 않자 검찰은 표적수사라는 전가보도(傳家寶刀)를 휘둘렀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주변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를 벌이고, 무려 반년 동안 샅샅이 뒤져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자 불구속 기소해 재판에 회부했다.


 올 3월 시작해 7개월째 진행하고 있는 포스코 수사를 비롯한 대다수의 기업수사 역시 비슷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이 남긴 친박 리스트 수사의 경우는 정반대다. 계좌 추적이나 압수수색조차 없이 서면 조사 같은 적당주의 수사로 넘어 가버렸다는 언론의 비판이 검찰에겐 더 없이 반가울 게다.

                                                                                               


 무리하게 수사해 무죄가 났다면 창피한 표정이라도 지어야 하지만, 대한민국 검찰이 그 정도로 양심적이라면 벌써 인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을 터이다.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썩은 고기를 물어뜯다가 망신당한다는 질타는 수십 년 동안 들어온 ‘경읽기’나 다름없다. 실제로는 청와대로부터 암묵리에 고생했다는 응원가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실세 국회의원들처럼 노골적으로 웃고 즐기지는 못하겠지만, 언론의 비판이 이들에겐 존재 이유를 방증하는 것이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과잉 수사나 무리한 기소로 최종 무죄 확정판결이 난 경우 수사 검사나 지휘부가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랬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2009년 별건 수사 금지, 기소 후 무죄가 선고될 경우 경위 규명, 무죄 선고가 많이 나올 경우 해당 검사의 인사 고과 반영 같은 ‘검찰수사 개선 방안’을 검토했지만, 실행됐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국가정보원의 경우도 유사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 시절 국가 2급 기밀문서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정치에 개입했다는 언론의 비판을 샀지만, 그 문제로 처벌을 받기는커녕 권력 핵심에게는 대선 개입의혹사건에 물타기를 한 작전으로 사실상 인정받았다. 민간인 해킹의혹 사건도 언론의 질타와 상관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


 국세청은 최근 7년간 세 차례나 세무조사를 받은 것은 물론 2년 전 모범납세자 표창까지 받은 IT 대기업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정치적 의도를 지닌 표적조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세청은 ‘정윤회 문건 의혹사건’이 터지자 통일교 관련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세계일보 특종 보도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는 화살을 맞았다. 

                                                                                        

 
 검찰청, 국정원, 국세청과 더불어 4대 권력기관의 하나인 경찰청의 무리한 수사도 도마에 올랐다. 구속 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발부가 되지 않은 비율이 현 정부들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구속영장 미발부율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22.4%에서 지난해 30.2%로 증가했으며, 올 들어서도 6월말 현재 28.6%에 이르렀다.

 

  이런 문제로 언론이 비판할수록 권력기관은 내심 박수를 친다는 얘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권력기관이 더 큰 권력의 정치적 의도에 후진적 행태로 복무하는 것을 존재 이유의 하나로 삼아야 하는 일이 언제쯤이나 사라질까.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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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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