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에서

자살 극복의 묘책

입력 : 2008-10-17 17:53:30수정 : 2008-10-17 17:53:37

누구나 일생 동안 한 번쯤은 자살을 꿈꾼다고 정신분석학자들은 말한다. 삶에는 차마 견디기 힘든 고비가 찾아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알베르 카뮈는 단언한다.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을 괴로워하며 살 값어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게 철학의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악성 베토벤도 말년에 자살 충동으로 고심참담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의 자살을 막았다. “나는 본래부터 천성이 밝은 사람이다. 남과 사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남과 헤어져서 고독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정말 싫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좀더 큰 소리로 말해 주시오. 나는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추방당한 사람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살하려는 생각을 해보지만 예술이 나를 그러지 못하게 한다. 내가 작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모두 다 완성시킬 때까지 나는 이 세상을 버릴 수가 없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자살 충동을 느낄 때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들어 보라고 권하는 음악치료사도 있다. 이 곡에서 불굴의 투지로 고난과 공포를 극복하고 승리를 구가하는 그의 정신이 강렬하게 분출돼서다.

삶과 죽음을 고민해 온 수많은 철학자와 문호들은 한결같이 자살의 해악에 일침을 놓는다. 막상 억울한 사형을 감수한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자기가 갇혀 있는 감옥의 문을 두드릴 권리가 없는 죄수다. 인간은 신이 소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스스로 생명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톨스토이 역시 “인생은 유희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자기만의 의사로 이것을 포기할 권리는 없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세르반테스, 나폴레옹은 일제히 자살을 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존스홉킨스대 정신의학자인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교수는 그 자신이 자살을 기도했던 가슴 아픈 경험 때문에 자살을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선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함께 자살을 고민했던 절친한 친구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엄청난 충격을 받기도 했다. 10여년간 조울병으로 고생하다 스물여덟 살 때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재미슨은 자살을 연구하고 방지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물의 하나가 <자살의 이해>(뿌리와 이파리)라는 세계적인 저작이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의 고전 <자살론> 이래 자살에 관한 저서가 쏟아져 나왔지만 체험에 기초한 절박한 연구결과는 흔치 않다. 그의 절절한 열정과 학문적 진력이 담긴 책이다.

재미슨은 개인, 사회, 생물학이라는 세 측면에서 자살의 실체를 뜯어보고, 극복방안을 모색했다. 방대한 자료에다 풍부한 임상경험을 토대로 자살의 사례와 해결책을 알기 쉽게 풀어간다. 자살의 심리적인 충동 과정도 다양한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부모, 학교, 사회가 더불어 해야 할 숙제를 명쾌하게 들어보인다. 자살 위험이 큰 우울증환자에 대한 약물치료의 중요성을 설파한 최초의 책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특히 자살 충동에 시달려본 적이 없거나 자살자를 가족으로 둔 적 없는 사람들은 자살을 ‘심약한 자아의 선택’이며,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처사’이고, ‘정신장애에서 촉발된 행위’로 너무 쉽게 단정한다고 비판한다.

재미슨이 자살을 과도하고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보도에 일침을 가하는 것을 보고는 뜨끔해진다. 그는 오래전 고인과 그 가족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자살 보도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실 자살에 관해 쓰면서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다. 자칫 자살을 미화하거나 부추길 우려가 적지 않아서다. 연예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자살 바이러스가 만연하고 베르테르 효과가 걱정되는 요즘 ‘자살’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껄끄럽다. ‘자살 부추기는 사회’를 꾸짖고 전 사회적 배려를 독촉하면서도 말이다.


'서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안’ 극복의 길 있나  (0) 2008.10.31
악은 과연 평범할까  (0) 2008.10.24
탐욕의 거리, 월스트리트  (0) 2008.10.10
무릇 글을 쓴다는 것은  (0) 2008.10.03
신자유주의의 계산 착오  (0) 2008.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