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에서

무릇 글을 쓴다는 것은

입력 : 2008-10-03 16:42:34ㅣ수정 : 2008-10-03 16:42:37 
                                                                             


서양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듯이 동양문학의 숲에 들어서면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을 지나칠 수 없다. 중국 근대문학의 큰 별 루쉰이 서양에 ‘시학’이 있다면 동양에는 ‘문심조룡’이 있다고 어깨를 으쓱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중국에는 문장을 논하자면 ‘문심조룡’이고, 역사를 논하자면 ‘사통’(史通·당나라의 유지기가 지은 중국 최초의 사학 이론서)이라는 말도 있다.

소설가 이문열도 초년 시절 위진남북조 시대의 중국 문학 이론서 ‘문심조룡’을 자신의 문학 수원지(水源池)라고 소개한 적이 있을 정도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동양문학사에서 ‘문심조룡’의 위상을 상징하는 사례다.

‘문심’은 문장을 짓는 원리를 뜻하며, ‘조룡’은 용을 조각하듯 문장을 정교하게 갈고 닦는 수사법을 일컫는다. ‘문심’이 문학 활동에서의 마음의 작용이라면 ‘조룡’은 언어문자의 예술적 표현인 셈이다.

‘문심조룡’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잘 집대성한 문예 이론서인 동시에 글쓰기의 전범으로 통한다. 이 책이 주목받는 까닭은 중국 고대의 역사서나 사상서 가운데에도 문학을 다룬 것이 적지 않으나 문학에만 초점을 맞춰 서술된 것으로는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 문학 이론서나 미학서적에 나오는 다양한 견해들이 두루 망라돼 있다는 게 놀랍다. 내용의 방대성과 논리성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한문 문체만으로도 매력을 지닌 책이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사자성어가 썩 잘 어울릴 듯하다. 저자 유협(465?-520?)의 문재(文才)는 중국문학사에서 굴원, 이백, 두보, 소식 등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심조룡’이 후세의 호평을 받는 것은 내용뿐만 아니라 귀족이 아닌 서족(庶族) 출신의 소외된 지식인으로서 간난신고 끝에 일궈낸 역작이라는 사실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일독을 부탁받은 당대의 제도권 중진 심약(沈約)이 감탄을 금치 못한 나머지 죽을 때까지 책상 위에 두고 읽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문심조룡’은 한자의 형태와 소리, 뜻 등 미적인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미문의 극치를 추구하는 ‘변려문’이라는 양식으로 쓰여 있다. 게다가 1500년 전에 쓰인 글이지만 요즘 부쩍 강조되는 상상력에 관한 이론의 핵심도 다루고 있어 혜안이 돋보인다.

동양은 물론 상당수의 서양 언어로도 번역·주해서가 출간된 것은 시공을 초월해 적용 가능한 보편적 문예이론을 전개하고 있어서다. 글쓰기에 관한 한 ‘쇼생크 탈출’ ‘유혹하는 글쓰기’ 등의 작가 스티븐 킹 같은 서양 명문장가들의 견해도 그 옛날 유협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문심조룡’은 혼을 충만시켜야 사물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고 바른 글을 쓸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귀담아들을 만한 걸 한두 가지만 더 봐도 금방 고개가 끄덕여진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적당한 한 글자를 찾지 못해 두고두고 고심하게 된다. 한 장(章)을 고치는 것이 새로 한 편을 짓는 것보다 어렵고 글자를 바꾸는 것이 구절을 바꾸는 것보다 힘들다.” “구절이 청신하고 빼어나려면 문자를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풍골만 구비되고 수식이 결여된 작품은 매처럼 높이 날 수는 있으나 아름답지 못하고, 화려한 수식만 있고 풍골이 결핍된 작품은 살찐 꿩과 같아서 화려하기는 하나 높이 날지 못한다.”

다독을 강조한 대목도 명문이다. “천 개의 곡조를 다룬 후에야 음악을 알게 되고 천 개의 칼을 본 후에야 명검을 알게 된다. 우선 많은 작품을 보아야 한다.”

을유문화사, 민음사, 현암사, 살림출판사, 연변인문출판사 등에서 펴낸 번역·해설서가 여럿 나와 있다. 나뭇잎 하나에도 생각이 일어나고 벌레소리에도 마음이 이끌리게 된다는 선인의 명저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본으로 삼아도 괜찮겠다.

'서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살 극복의 묘책  (0) 2008.10.17
탐욕의 거리, 월스트리트  (0) 2008.10.10
신자유주의의 계산 착오  (0) 2008.09.26
전설을 역사로 만든 슐리만  (0) 2008.09.19
‘성숙한 종교’ 보고싶다  (0) 2008.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