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11월22일 영국에서 504쪽짜리 두꺼운 책 한권이 나오자마자 초판 1,250부가 하루 만에 다 팔려나갔다. 녹색 헝겊표지로 장정한 이 책은 학술서적임에도 당일 매진의 진기록을 남겼다. 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에서만 500만 부가 팔렸다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과 더불어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판매기록으로 남은 이 책은 곧바로 유럽 지식인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다.


  ‘스펙테이터’ 신문은 “인류 역사가 글로 기록된 이래 인간을 이처럼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킨 예가 없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많은 지식인들은 이 책이 대중에게 파고들어 워털루 역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팔리고 있다며 태산이 무너질 듯 걱정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은 이 책을 도서관에 소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은이는 “당신의 어머니나 아버지 중 누가 원숭이요?”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못된 궤변’이라는 종교계의 거친 비난은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거셌다.

 상찬하는 사람들은 주로 합리적인 학자였다. 식물학자 헨리 왓슨은 “선생은 19세기 자연과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가입니다. 선생의 선구적인 생각은 과학의 확고한 진리로 인식될 것입니다”라고 지은이에게 편지를 썼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 책은 내 견해에 대해 자연사적인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반색하며 18년 뒤 출간한 ‘자본론’을 이 책의 저자에게 헌정했다.
                                                             

 

 이처럼 심각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책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원제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이다. 다윈은 이 책에서 모든 생명체는 신의 섭리가 아니라 자연의 선택 과정에 따라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자연선택이란 자연계에서 생활 조건에 적응하는 생물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을 일컫는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지구상에 살아남은 종(種)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지적인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이다”란 부분이다.


 

 이 책은 변이, 유전, 경쟁이라는 세 가지 핵심단어로 간추릴 수 있다. 생물의 형질에는 충분한 변이가 존재한다. 생존 경쟁을 거쳐 주어진 환경에 더 잘 적응한 변이가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이 세 가지 조건은 반드시 충족돼야 한다. 진화는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에 따라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힘세고 포악한 종은 멸망하고 착하고 배려하는 종은 생존한다’는 내용이다. 다윈 비판자들이 흔히 지목하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는 같은 시대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허버트 스펜서가 맨 처음 사용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오해와 오용을 낳았다.


 

 다윈은 이 책에서 동물은 4~5개의 조상에서 나온 것이며, 식물도 그와 같거나 더 소수의 조상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독교 도그마에 억눌렸던 그는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윈이 본격적으로 인간을 다룬 것은 12년이 지난 뒤였다.


 

 ‘종의 기원’은 이렇게 끝맺는다. ‘생명은 최초에 창조자에 의해 소수의 형태로, 또는 하나의 형태로 모든 능력과 함께 불어넣어졌다고 보는 견해, 그리고 이 행성이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의해 회전하는 동안 이렇게 단순한 발단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경탄스러운 무한의 형태가 태어났고,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는 이 견해에서는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창조주를 등장시켰으나 이 마지막 결론은 다윈의 탁월한 문장력과 자부심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문체를 자랑하는 소설가 김훈도 다윈의 문장을 좋아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만연체가 나오는 게 거슬리긴 한다.
                                                                 

 

 ‘종의 기원’은 다윈이 해군 측량선 비글호를 타고 남미 갈라파고스 섬에 가 5주 동안 머무르면서 거북, 새, 고대화석, 산호초 같은 표본을 평생 연구해도 모자랄 만큼 채집해 분석한 결과물이다. 갈라파고스는 스페인어로 ‘거북’이라는 뜻이다. 다윈은 6년 뒤 표본 상자들을 정리하다 똑같은 것이라고 알았던 핀치 새가 사는 섬마다 부리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발견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렇게 태어났다.


 

 다윈은 ‘종의 기원’ 서문에서 경제학자이자 인구통계학자인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을 모든 동식물에 적용한 것이 자신의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다윈이 ‘인구론’을 읽은 것은 서양 생태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꼽힌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지 2년이 되던 1838년 10월 어느 날 머리를 식힐 참으로 ‘인구론’을 읽었다고 한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에겐 재앙이다.’ 그는 여기서 늘 생각해 오던 자신의 이론이 어떻게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지 명확하게 깨달았다.


 

 ‘종의 기원’이 나오기까지엔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일화가 하나 더 있다. 다윈은 1858년 6월 말레이 반도에서 배달된 한 편의 논문과 편지를 읽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신자는 박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라는 사람이었다. 윌리스의 논문에는 진화론의 기본적인 골격이 간략하지만 명쾌하게 정리돼 있었다. 런던의 학계에 연고가 없던 윌리스가 간접적으로 알며 존경하던 다윈에게 자신이 쓴 논문을 보낸 것이다. 윌리스도 맬서스를 읽었다고 한다.


 

 윌리스의 논문이 먼저 발표되면 수십 년에 걸친 다윈의 독창적 연구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과 같은 친구들이 나서 다윈을 구할 방안을 모색했다. 1858년 7월1일 런던에서 권위 있는 린네 학회가 열렸다. 다윈의 글이 먼저, 윌리스의 글이 마지막으로 발표됐다. 사소한 속임수였지만, 사람들은 다윈의 글이 먼저 작성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윌리스는 진화론의 선구자로 다윈을 인정하며 변함없는 존경심을 나타냈다. 이듬해 마침내 ‘종의 기원’이 출간된다.  
                                                                

                                      <다윈이 타고 갈라파고스에 갔던 비글호 항해지도>

 당시 다윈은 20여 년 동안 부지런히 많은 양의 증거를 확보해 자신의 이론을 윌리스보다 훨씬 더 완전하게 다듬어낸 상태였다. 진화론을 발전시킨 공로는 다윈에게 돌려도 큰 문제가 없다. 다윈이 ‘19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발견’을 20년도 넘게 묵힌 것은 성서의 가르침을 거역하기에는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은 인간의 사고체계에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 위에서 군림하던 신을 몰아냈다는 사실은 사고의 혁명이었다. 신이 삼라만상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충격은 인간 자체의 위상 격하였다. 다윈은 인간을 철저하게 동물계의 일원으로 여겼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동일한 자연 질서의 일부라고 본 것이다. 그 때까지 인간은 창조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종의 기원’에는 길게 뻗은 나뭇가지와 비슷한 도표로 진화를 설명하는 계통수 하나가 나온다. 생물종이 단선적으로 진화하지 않고 나뭇가지처럼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가며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고 멸종한다는 사실을 표현한 그림이다. 여기서 인간은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무수히 많은 생물체와 똑같이 나뭇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이듬해인 1860년 옥스퍼드에서 열린 영국협회 정례회의장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싸고 유명한 논쟁이 벌어졌다. 새뮤얼 윌버포스 주교가 옆자리에 앉은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에게 유인원에서 시작하는 헉슬리의 가계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다윈의 불도그’이라 불리는 헉슬리는 “원숭이가 내 조상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주교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혈연관계라는 점이 더 부끄럽다”고 단호하게 반박했다.


 

 ‘종의 기원’은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어 정치, 철학, 사회, 문화, 예술 전반을 이전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생명체가 진화한다는 놀라운 발상은 우주와 만물이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발전한다는 인식도 깨우쳐주었다.


 

 ‘종의 기원’은 그 과정에서 숱한 오해와 오용을 견뎌내야 했다. 곳곳에서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강대국의 식민지 지배 정당화에 악용되기도 했고, 피식민지에서는 해방의 이데올로기나 진보의 희망으로 활용됐다. 독일 나치는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논거로 이 책을 들이댔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지적처럼 진화론만큼 가장 다양하고 가장 많이 왜곡돼 적용된 사례도 흔치 않다.


 

 ‘종의 기원’은 출간된 지 1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창조설을 믿는 기독교와 불화를 겪고 있다. 로마 교황청이 진화론은 가톨릭 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영국 성공회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은 2009년 “다윈을 오해해 그에게 잘못된 대응을 한 것을 사과한다”고 밝혔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이론 가운데 하나는 ‘지적 설계론’이다. 이 이론은 언뜻 과학적인 듯 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 이론은 ‘눈먼 시계공’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타당성을 잃었다.

 

  프랜시스 크릭과 더불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은 “다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내 어머니보다 더 중요하다. 그가 없었다면 생명과 존재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라고 극찬하면서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했다. 인류 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현대에 와서 일정 부분 상처 입은 것과 달리 ‘종의 기원’은 여전히 그 가치를 뽐내고 있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11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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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