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가장 나쁜 제도 가운데 하나가 노예제다. 노예제도는 역사발전 단계에서 원시공동체가 해체되면서부터 나타났다. 성경에서도 노예제를 확립된 제도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대철학자들조차 선천적 노예 제도를 인정했던 사실은 슬픈 역사를 웅변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인구 가운데 5분의 2가 노예였고, 고대 로마 인구 가운데 4분의 1이 노예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 유럽인구 10명 중 1명이 노예로 살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양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예제도 중에서도 역사상 최악의 오점으로 꼽히는 건 대서양을 넘나들며 이루어지던 아프리카 노예무역이다.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무려 1200만 명의 노예가 배에 실려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팔려갔다.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사라진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 폐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장편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원제 Uncle Tom’s Cabin)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흑인 노예들의 잔혹상을 그린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해방의 전기가 된 미국 남북전쟁을 촉발한 결정적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더 넓게 보면 흑백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세계역사를 바꾸는 데 크게 공헌한 소설이 됐다. 한 편의 문학작품이 세상을 이처럼 단숨에 바꾼 사례는 그리 흔치 않다.

                                                                  

 

 잔인하고 비정한 노예제의 실상을 폭로해 미국인들의 양심에 호소한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미국 켄터키 주의 지주 셸비는 노예들에게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한 뒤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충직했던 노예 톰과 혼혈 노예 엘리자 사이에 태어난 다섯 살짜리 아들 해리를 노예상인에게 판다. 이 사실을 안 엘리자는 아들 해리를 데리고 목숨을 건 탈출극을 벌인다. 엘리자는 우여곡절 끝에 한 퀘이커교도의 도움으로 자유의 땅 캐나다에 무사히 안착한다. 반면 톰은 하루아침에 가족과 생이별한 채 팔려가는 도중에 같은 배의 승객인 에바의 생명을 구한다. 이것이 인연이 돼 톰은 에바의 아버지 오거스틴 세인트클레어에게 팔려 한동안 행복하게 지낸다. 하지만 에바와 세인트클레어가 잇달아 죽고 나서 냉혈한인 사이먼 리그리의 손으로 넘어간다. 톰은 리그리의 목화밭에서 혹사당하며 원주인의 아들이 다시 매수하려고 찾아오기 직전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소설에서 시종 독자의 가슴을 사로잡는 건 노예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이다. 노예들은 새벽 세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혹사당하는 것은 물론 옥수수 가루로 연명하며 흙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나무에 묶여 매질을 당하기 일쑤인데다 돌멩이나 채찍으로 얻어맞으며 감금된 채 굶어죽기도 한다. 노예 상인에게 자기 아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밤을 틈타 도망치는 엘리자, 노예 사냥꾼과 대치하며 자신이 자유인임을 비장하게 역설하는 조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자식을 빼앗긴 뒤 그런 인생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갓난아기에게 아편을 먹이는 캐시 같은 등장인물은 노예들의 운명을 실감나게 증언한다. 혹사당한 노예가 병에 걸리면 죽을 때까지 부려먹고 나서 새 노예를 사는 게 경제적이라고 말하는 리그리는 노예를 물건으로 취급하는 사악한 노예주인을 상징한다.

 

 이 같은 극적인 상황 설정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현실과 거의 그대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 스토는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사건들은 거의 다 실화이며 노예제도의 실상을 생생하고, 드라마틱하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셸비 부부의 성격은 작가 스토 부부와 비슷한 점이 많다. 흑인 하녀가 구원을 요청한다는 스토 부인의 말을 전해들은 남편과 스토 부인의 오빠 헨리 워드는 밤중에 이 하녀를 마차에 태워 오하이오 오지의 농장주에게 데려가 감춰줌으로써 추적이 중지될 때까지 실제로 피신시켜주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이 작품을 집필한 직접적인 계기는 1850년 반포된 도망노예법이었다. 이 법은 도망간 흑인노예를 소유주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1793년과 1850년 2차례에 걸쳐 미국 의회가 통과시켰다. 노예의 도망을 도와준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이 법 때문에 노예제를 막연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북부 사람들은 그 잔악상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스토는 1850년부터 워싱턴 D.C.의 노예제도 폐지 운동 기관지 ‘내셔널 이러’에 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소설의 의미를 분명하게 명시해 놓았다. “이 소설의 주된 목적은 우리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 종족에 대한 동정심과 이해심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학대와 그들의 슬픔을 묘사함으로써, 현재의 제도가 얼마나 잔인하고 불공정한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이 하나님의 저작이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스토는 메인 주 브런즈윅의 한 교회예배에 참석했다. 예배가 끝나고 성가대의 합창이 시작될 무렵, 예배석에 앉아 있던 스토에게 매질을 당해 죽어가는 환상이 보였다. 그 포악한 백인 주인은 자신이 직접 매질을 하지 않고 타락한 두 흑인 감독에게 시켰다. 그 늙은 흑인 성자는 죽어가면서도 두 고문자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 환상 속에서 죽어가는 흑인 성자는 톰 아저씨였고, 고문을 가하는 두 감독은 삼보와 큄보였다. 사악한 노예주인 사이먼 리그리라는 이름도 이때 나왔다.

 

 노예제에 대한 작자의 비판의식은 통렬하기 그지없다. 소설의 2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주 인도적인 한 법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을 최악으로 학대하는 방법은 그를 목매달아 죽이는 것이다.’ 아니다. 그보다 더 나쁘게 인간을 학대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노예제도이다.”

 

 이 소설은 노예제도 논쟁이 치열하던 1853년 출간 첫해에만 30만부라는, 당시로선 놀라운 판매기록을 남기며 남북전쟁의 불씨를 댕긴다. 북부에서는 출간 즉시 칭송과 찬사가 이어졌으나, 남부에서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노예해방에 반대하던 미국 남부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1862년 11월 스토 부인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당신이 이 엄청난 전쟁을 촉발시킨 책을 쓴 바로 그 조그마한 여인이로군요”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시대를 초월해 가치를 인정받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소설은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더불어 미국 최대 베스트셀러의 하나로 손꼽힌다. 19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모두 300만부 이상 팔린 공전의 베스트셀러다. 당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집계됐다.

 

  발표된 지 1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 독자들의 감동과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2개 국어로 번역된 것은 물론 연극으로도 각색되어 끊임없이 공연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오랫동안 ‘엉클 톰스 캐빈’이라는 번역서 제목으로 더 알려진 한국에서는 이 이름이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스토 부인은 소설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노예해방운동에 참여한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북부의 편을 들어 맹렬한 유세를 펼쳤다. 아들 프레더릭도 북군 대위로 참전했다. 1865년, 마침내 미국에서 노예 해방이 선언되기까지 이 소설이 수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고 노예 해방에 대한 보편적 합의를 이끌어낸 점은 명백하게 인정받는 사실이다.

 

 노예제도가 분명 해악인데도 붕괴되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노예제 아래에 있는 착한 농장주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18세기 아일랜드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가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던 명언과 상통하는 말이다.

 

 이 작품은 비평가들에 의해 몇 가지 단점이 지적되고 있긴 하다. 소설의 구성이나 기교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눈물을 자아내는 신파조의 통속적인 소설이라는 게 그 하나다. 게다가 톰 아저씨가 흑인 사도 바울 정도로 격상되어 있어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는 비판도 받는다. 작가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바탕에 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문호들은 소설의 기교에 대한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진실이 기교를 이긴다는 생각에서다. 레프 톨스토이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이 물처럼 흐르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예술 작품”이라고 극찬한다.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도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톰 아저씨가 평생 학문을 연구해온 나보다 더 깊이 있게 신의 뜻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실천한 것을 보고, 나는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평했다.

 

  저명한 신학자 찰스 브릭스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는 워싱턴 어빙이나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언어의 정치(精緻)함도, 제임스 쿠퍼의 모험 로맨스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풍경 묘사도, 허먼 멜빌의 모험담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울 만큼 감각적인 요소도 없다. 그러나 이런 인도주의나 인간의 철학적 통찰을 다룬 사회소설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광범위하고 더 깊고 더 고결하고 더 성스러운 공명(共鳴)이 있다”고 진솔하게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형식적인 노예해방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해방은 오랫동안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다. 1965년에 흑백 격리 법률이 폐지되고서야 흑인들은 비로소 참된 자유를 얻었다. 2008년 11월 버락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돼 아프리카 노예 퍼즐의 마지막 문제가 풀렸다. 그동안 백인으로만 알려졌던 오바마의 어머니도 400여 년 전 미국 버지니아에 살았던 아프리카계 노예의 11대 후손이라는 게 최근 족보 연구결과 밝혀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가 케냐 출신 흑인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2년 9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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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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