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토머스 페인 <상식> 효형출판

 

 

  역사에 가정법은 없지만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한참 늦어졌거나, 캐나다처럼 오랫동안 영 연방국가로 남아 있었다면 세계역사는 사뭇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독립선언 반년 전인 1775년 말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독립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다. 지도자들조차 완전한 독립을 지향할지, 영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선에서 갈등과 마찰을 마무리할지 우왕좌왕했다.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도 1770년대 초까지는 독립에 반대했으며 벤자민 프랭클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영제국의 호위 아래 정치적 자치와 경제적 번영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군주제와 공화제를 섞은 영국의 정치체제가 최선이라고 여겼다.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르는 게 상식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무모한 일 같은 정황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1776년 1월10일 토머스 페인이라는 급진주의 사상가가 쓴 ‘상식’(원제 Common Sense)이 출간되자 아메리카 대륙은 단번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46쪽에 불과한 된 소책자(팸플릿)였지만, 이 조그마한 책 한 권이 미국 독립운동에 불을 질렀다. 이 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페인은 미국의 독립이 상식이자 역사적 순리라고 역설했다. 그는 상식에 관한 최초의 언급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 나는 오로지 단순한 사실, 명백한 논거, 평범한 상식만을 제시할 것이다.” 여기서 상식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의 쓰임새에 따라 근본적이고, 객관적이며, 반박불가능한 형태의 인식력과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판단력을 의미한다.

 

  ‘상식’은 군주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민주적 공화제만이 대안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페인은 식민지 아메리카 인민들에게 영국 왕실로부터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공화제에 입각한 새 나라 건설을 촉구했다. 그는 영국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견해의 모순, 세습 군주제의 불합리성, 독립에 따르는 경제적 이익, 독립의 역사적 의의, 대의제에 따른 정치적 대표기관의 구성방법에 이르기까지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펼쳐나간다.


 

   페인은 당시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통박한다. 입헌군주제가 옳지 못한 이유로, 견제를 통해 국왕의 권력을 둔화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권력을 정지시킬 수는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영국이 절대군주에 대해 문을 닫아 버리고 자물쇠로 잠갔지만, 동시에 국왕에게 열쇠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유한다. 군주제적 유물과 귀족제적 유물이 새로운 공화적 요소(하원)들과 혼합돼 있어 불합리하고 터무니없는 모순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토머스 페인 초상>

  이 책에는 흥미로운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대목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매춘을 일삼는 남자가 자기 아내를 판단할 자격이 없듯이, 부패한 정치제도를 지지하는 선입견에 얽매이면 훌륭한 정치 제도를 식별하지 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 정부 형태의 제도적 오류를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영국에서 국왕이란 전쟁이나 일으키고 관직을 주는 일 외에 하는 일이 없으며,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고 서로 싸우게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게 페인의 생각이다. 왕의 자리만해도 후손들에게 세습할 권리는 없다고 말한다. 한 개인은 다른 사람에 비해 상당히 높은 지위를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후손들까지 지위를 물려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페인의 지론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독립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영국이 ‘아메리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자기의 적으로부터’ 보호한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편다. ‘상식’은 미국이 왜 독립해야 하는가를 입증해야할 의무가 미국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왜 영국에 종속돼야 하는가를 영국인들이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메리카는 유럽 각지에서 박해받은 사람들의 피난처이기 때문에 미국의 모국은 영국이 아니라 전체 유럽이라고 페인은 생각한다. 영국과 관계를 유지하자는 주장에는, 유아가 이제껏 젖을 먹고 자랐으니까 앞으로도 절대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다름없다고 반박한다.


  영국의 신민으로부터 벗어나더라도 아메리카의 곡물은 유럽의 어느 시장에서나 제값을 부를 수 있고, 어디로부터 물건을 사들이더라도 그 대가는 동일하다는 이유를 들어 독립의 경제적 이득을 설명한다. 또 유럽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메리카의 진정한 이익이라고 설득한다. 영국에 예속될 경우 외려 아메리카 대륙은 곧바로 유럽의 전쟁과 분규에 휘말려 든다는 것이다.


  그는 영국과의 ‘화해’가 성립하면 통치권이 여전히 국왕의 수중에 머물러 있어 사실상 노예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시기’에 독립해야만 하는 이유는 아메리카에겐 충분한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충분한 무장 군대, 함대를 건설하기에 유리한 위치와 조건, 풍부한 방어물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용감한 업적들은 언제나 미성년기에 있을 때 성취됐다’고 재치 있게 비유한다.

                                                                                                          
  그는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법률이 곧 국왕이어야 하고, 그 밖의 아무 것도 국왕이 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광범하고 평등한 대표권을 갖는 정치체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그릇된 것을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오래 굳어지면 겉보기에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명문이 각별한 눈길을 끈다.

                                                                                          

                                                                                  <상식 초판본>


  폭발력을 지닌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순식간에 미국의 첫 번째 베스트셀러가 됐다. 3개월도 안 돼 10만 부, 1년 만에 15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브리태니커 사전에는 1년 만에 50만 부가 팔렸다고 전하고 있으나 과장이 섞였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국 전체 인구가 60여 만 명의 노예, 100만 명 이상의 계약제 외국인 노동자까지 포함해 300만 명 정도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판매기록이다. 글을 아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이 책을 읽은 셈이다.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제2차 대륙회의에 참석했던 존 펜은 1776년 봄 “여행길 내내 상식과 독립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상식’이 나온 직후, 미국 독립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륙에 가득 찼다. 그 해 7월4일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문은 페인의 주장을 대부분 담았다. 이 책을 발표하기 전에는 독립해야 한다거나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 아니었다. 미국이 독립하기 전에 영국 왕은 상원과 하원에 권력의 일부를 나눠주어 당시에는 나름으로 이상적인 군주제로 평가됐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아메리카 사람들은 왕을 부정하지도 독립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많은 미국인들이 조지 3세 왕을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왕이란 왕은 다 못마땅하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상식’을 꼼꼼히 읽어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가 발견된다. 영국 왕 조지 3세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모든 왕, 모든 불합리한 권위, 전 세계의 크고 작은 폭군 모두를 공격하는 글이었다.


  에피소드지만 ‘상식’은 제목 덕을 많이 본 베스트셀러라는 뒷얘기가 전해진다. 페인은 이 책의 제목을 ‘명백한 진리‘(Plain Truth)로 결정해 놓고 있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제목을 제외하곤 ‘상식’이라는 표현이 세 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필라델피아 의사이자 페인의 후원자였던 벤자민 러시의 권유로 밋밋한 ‘명백한 진리’ 대신 ‘상식’으로 바꿨다.


  그렇다고 제목에만 성공요인이 있는 건 아니었다. 문장의 묘미를 아는 페인의 솜씨로 유럽 대륙의 급진적인 철학자들이 강조하던 양식과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이 중요시하던 상식을 교묘하게 결합할 수 있었던 게 또 다른 성공요인이었다. 라틴어 문구를 인용하지 않고 어려운 철학을 들먹이지 않은, 페인의 쉬운 문체도 한몫했다.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상식을 쓴 작가의 펜이 없었다면 (조지) 워싱턴의 칼도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애덤스는 처음엔 ‘상식’이 “무지하고 사악하며 근시안적이며 무도한 잡동사니”라고 했을 정도다. ‘상식’은 세계 민주주의의 주요 문헌이 됐다. 페인은 자기 묘비명에 단 한 구절 ‘상식의 작가’라고만 새겨 달라고 했을 만큼 이 책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컸다.

 
  페인은 미국 독립뿐만 아니라 프랑스혁명, 영국의 급진주의적 민주화 운동에서도 활약상이 두드러져 ‘세계 혁명의 전도사’로도 불린다. 민주주의의 3대 종주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모두에서 현대적 민주주의가 발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선언 11년 뒤 유럽으로 건너간 페인은 프랑스 혁명과 영국 민주화 운동에도 개입한다.

 

  그는 ‘인권’(1791년)이라는 책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지지한다. 영국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가 세계 보수주의의 바이블이 된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혁명을 비판하자 페인은 ‘인권’으로 반박했다. ‘인권’은 ‘상식’의 개정판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인권’은 조지 왕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라고 부추겨 영국 급진주의 운동의 핵심 문헌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영국에서 반란 선동이라는 죄목으로 페인 체포령이 떨어졌다.

 

 프랑스 명예시민이 된 페인은 1792년 프랑스 국민의회의 헌법제정 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사건’의 저자 폴 콜린스는 페인을 ‘걸어다니는 혁명’이라고 일컫는다. 페인의 전기를 쓴 W. E. 우드워드는 “페인은 인간의 자유와 인류의 권리에 대한 그의 주장을 세계가 수용할 준비를 갖추기 한 세기 전에 태어났다”며 그의 선견지명을 높이 샀다.


 페인의 사상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시대를 초월해 영향을 미쳤다. ‘상식’이 출간된 후 지금까지 200여 년 동안, 페인은 세계 각국의 급진주의자와 혁명가들의 수호성 노릇을 해왔다고 ‘상식의 역사’ 저자 소피아 로젠펠드는 말한다. 세계의 수많은 자유주의자, 페미니스트, 민주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를 사상적 선조의 한 사람으로 여긴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2년 1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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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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