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宋代)에는 황제로부터 대신과 문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권학문’(勸學文)이니 ‘권학가’(勸學歌)니 하는 것들을 많이 썼다. 송진종이 쓴 ‘권학문’을 보면 이러하다. “집을 부유하게 하려고 좋은 밭을 살 필요가 없다. 책 속에 자연 엄청난 곡식이 있기 마련이니, 편안히 거하려고 고대광실을 지을 필요가 없다. 책 속에 황금집이 있기 마련이다. 문을 나설 때 따르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해 마라. 책 속에 거마가 가득하다. 처를 들임에 좋은 매파가 없음을 탓하지 말라. 책 속에 얼굴이 옥 같이 예쁜 미인이 있다. 남아로서 평생의 뜻을 이루고자 하거든, 창문 아래서 부지런히 육경을 읽으라.” 또 사마광의 ‘권학가’를 보면 “어느 날이고 출셋길에 오르기만 하면 이름 높아져 선배라 불리리. 집안에서 아직 혼인 맺지 않았어도 가인이 절로 배필 되길 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왕안석의 ‘권학문’에서는 “독서에는 비용이 들지 않고, 글공부를 하면 만 배의 이익이 생긴다. 창문 아래서 옛 책을 읽고, 등불 아래서 책의 뜻을 찾으라. 가난한 자는 책으로 부유해지고, 부자는 책으로 귀해진다”고 하고 있다. 이처럼 한결같이 적나라하게 부귀와 이록(利祿)을 글공부와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었으니, 그것을 버리고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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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계 미국학자가 미국에 유학중인 중국학생들이 보편적으로 성적이 우수하다는 걸 얘기하다 “중국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험사회였기 때문”이라고 농담 삼아 말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험이라는 방법을 채용한 나라다. 과거제도가 그것이다. 문제는 내로라하는 거유(巨儒)들조차 과거와 독서를 세속적인 출세와 부귀, 이권의 수단으로 권면하는 풍토였다. 시험에만 능할 뿐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유는 한참 모자란 재사만 낳았다. 지식인은 쉽게 길들여졌다. 오늘의 우리 풍토는 뭐 그리 다를까. 찬란한 속물근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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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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