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프랑스의 진보적 권위지 르몽드는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정의가 이뤄졌다’고 달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심야연설 키워드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르몽드가 2001년 9·11 테러 다음날 머리기사 제목을 ‘우리 모두가 미국인이다’라고 뽑았던 걸 떠올려 보면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당시 충격을 표현할 말이 부족함을 느꼈다는 르몽드는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 1962년 베를린에서 스스로 베를린인이라고 선언했던 존 F. 케네디처럼 우리는 모두 뉴욕인이다. 광기는 그것이 비록 절망에서 비롯되었다는 핑계가 있다 하더라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라고 썼다.
 

                                              

                                                                           <오사마 빈 라덴>

진보신문조차 이렇다면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이자 9·11 테러 주모자인 빈 라덴 처단의 명분이 ‘정의’인 것은 명백해 보인다. 3000여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은 책임자를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 빈 라덴측이 무장했다고 백악관이 발표했을 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듯했다. 하지만 빈 라덴의 비무장 사실이 밝혀지고, 미군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정부의 승인 없이 영공을 침범한 일까지 드러나면서 정의의 이름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인과 열두 살 난 딸이 보는 앞에서 사살한 것으로 알려져 정당성 논란은 드세졌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 같은 이는 “미군 작전은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며, 빈 라덴 사살이 아랍세계에 엄청난 결과 몰고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논란을 보면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명저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실화이자 이번 사건과 연관성이 깊은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다. 그것도 이번 ‘제로니모’ 작전을 수행한 미국 해군 특수부대 실(SEAL)과 같은 부대원 이야기다. 2005년 6월, 미 해군 실 소속 마커스 루트렐 하사와 수병 세 명이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아프가니스탄에서 비밀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빈 라덴의 측근인 탈레반 지도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한 마을 뒤 산등성이에서 100마리 가량의 염소를 몰고 오는 아프가니스탄 농부 두 사람과 마주쳤다. 일행에는 열네 살 가량의 남자 아이도 끼어 있었다. 모두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 비무장 민간인 처리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들을 놓아주면 자신들의 소재를 탈레반에게 알려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여야 한다는 의견과 풀어주자는 의견이 맞섰다. 선임자인 루트렐 하사는 양심에 비춰보아 풀어주기로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곧바로 후회하고 말았다. 이들은 무장한 탈레반 80여 명에게 포위됐고, 총격전 끝에 루트렐 하사를 제외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구하려던 미군 헬기까지 격추돼 군인 열여섯 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루트렐은 당시의 일이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자신을 괴롭힐 것이라고 회고하며 책까지 펴냈다.

 
당시 상황과 이번 작전을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미국은 여기서 작은 교훈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프간 염소치기’ 사건이 없었더라도 미국은 빈 라덴을 이번처럼 처리했을 개연성은 높아 보인다.
비무장인 빈 라덴을 생포하지 않지 않고 사살해 버린 것은 뒤탈을 더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법정에 세워 처벌하는 과정에서 온갖 복잡한 부작용이 짐작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해서다.
 

국제사회의 역풍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 지도부가 치밀한 사전 시나리오를 짠 것은 전략적 측면에서만 보면 이해가 될법하다. 미국이 국제법 논란 따위는 테러전쟁 중이라는 명분으로 넘어가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게다. 빈 라덴이 9·11테러가 자신의 지시로 실행됐다고 공공연하게 밝힌 탓이다. 실제로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빈 라덴 사살을 ‘국가적 정당방위’라고 엄부럭을 부렸다. 
 

                                                  


 
하지만 이는 살인 혐의자가 자신의 입으로 범죄 행위를 자백했다고 해서 재판 절차 없이 곧바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과 그리 다를 게 없다. 정의의 상대성에 대해선 일찍이 영국 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날카롭게 꿰뚫었다. “인간이 맹수를 죽일 때는 그것을 스포츠라고 한다. 맹수가 인간을 죽일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재난이라고 한다. 범죄와 정의의 차이는 이와 비슷한 것이다.” 
 

                                                


 
큰 정의는 작은 정의도 지킬 때 정당성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존 롤스 하버드대 정치철학교수(1921~2002)는 명저 <정의론>(이학사)에서, 정의를 고민하는 올바른 방법이 행복, 자유, 미덕 세 가지를 기준점으로 삼는 것에 있지 않고 원칙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은 빈 라덴을 추적하면서 이미 수만 명, 넓게 보면 수십만 명의 무슬림 민간인을 9·11 테러 보복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힘이 곧 정의’라는 정글 법칙이 문명사회를 지향하는 지구촌을 한층 살벌하게 만들지 않을까 두렵다.


※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분량을 늘려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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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