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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김정일 부자 사격 표적지 논란

2004년 4월 27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놀라운 소식 하나를 전했다.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평안북도 룡천역 열차폭발사고 당시 주민들이 아비규환의 순간에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목숨과 바꾸며 챙겼다는 얘기다.
 

중앙통신은 ‘수령결사옹위의 숭고한 화폭’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상점 수매원 두 사람이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중 강한 폭음소리를 듣고 기업소로 달려가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품에 안고 나오다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폭발사고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룡천소학교의 30대 교사는 수업 도중 학교건물이 붕괴되면서 교실에 불이 나자 3층 교실에 있던 김일성 부자 초상화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 제자 7명을 구해내고 자신은 숨졌다. 또 다른 50대 교사도 초상화를 품에 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중앙통신의 최상급 칭송은 극진하다. “주민들이 가족의 생사 여부와 가장집물들을 찾기에 앞서 가정에 모신 초상화들을 안전하게 모시었다. 뜻하지 않은 피해 속에서도 김일성 동지를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시고 김정일 동지를 끝없이 신뢰하고 따르는 조선인민의 고결한 사상정신세계가 수령결사옹위의 숭고한 화폭을 펼치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계자 김정은이 201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대경축야회를 관람하고 있다.>

 
또 다른 일화는 아직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2003년 여름 대구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 기간 내내 화제를 뿌린 북한 미녀응원단이 예천에서 양궁응원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대구로 가다 비를 맞고 있는 현수막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과 마주쳤다.
북한 여성응원단은 버스에서 모두 내려 눈물을 흘리며 항의했다. 이들은 끝내 현수막을 걷고 접어서 소중하게 가져갔다. 남한사람들이 이 소식을 접하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물어보나마나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올 초엔 함경남도 리원군의 총무부지도원이 김 위원장의 사진이 실린 신문으로 담배를 말아 피운 일이 적발돼 직무해임된 것은 물론 가족들과 함께 천마광산으로 쫓겨난 사실이 보도됐다. 지난해 10월 중순쯤엔 양강도 혜산예술전문학교 여교사 화장실에서 김 위원장의 사진이 버려진 채 발견돼 북한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북·미간 핵 협상 당시 미국 측 인사가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실려 있는 신문을 무의식적으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거나 김 위원장 사진이 들어 있는 신문 위에 물건을 올려놓았다가 북한 측이 항의하는 바람에 협상이 중단된 적도 있다.


김 위원장의 사진이 훼손되는 걸 목숨까지 걸고 막아내는 북한 주민들의 행태는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다루는 것과 흡사하다. 어진을 훼손하는 것은 능지처참 당할 만큼 무거운 죄다.
조선시대 어진과 초상화는 인물과 동일시되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 권력을 표상한다. 전란이 일어나면 미천한 참봉들이 어진을 보전하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피난 때 왕과 신료들이 어진을 앞에 두고 얼마나 통곡하며 비탄에 빠졌는지에 대한 당시 기록들을 보면 처연하기 짝이 없다. 뿐만 아니라 진전(眞殿)에 불이 나면 왕은 소복한 채 백관을 거느리고 3일간 곡했으며, 자전, 내전, 빈궁들 역시 소복을 3일간 입었을 정도다.(한국의 초상화·조선미/돌베개) 

                                               


북한과 같은 행태는 일본제국주의 시절에도 있긴 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당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중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미친 듯이 헤맬 때 일본 공무원 네 명이 무거운 상자를 들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달리면서 외쳤다. “어진(일본 천황의 초상화)이다! 어진이다!” 그러자 군인들은 상자를 향해 경례를 하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은 90도 절을 하며 경의를 표했다. 누워있던 사람들은 몸을 일으켜 머리를 숙였다.


북한이 지난 1일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남북 비밀접촉을 공개하며 반발한 것은 우리 군이 최근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 3대의 얼굴 사진을 예비군 사격 표적지로 사용한 것과 연관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1호 사진’으로 부르며 각별하게 관리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단순한 훼손도 참지 못하는 그들이 사격의 표적지로 사용된 걸 대화를 위해 무덤덤하게 넘기리라고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 지난달 30일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동해 쪽의 군 통신선을 차단하고 금강산 지구 통신연락소도 폐쇄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니나 다를까 3일에는 남측의 사과와 주모자 처벌,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며 전면적인 군사보복 위협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베이징 비밀접촉 과정에서 생긴 일을 비롯해 다른 요인도 있긴 하겠으나 이 같은 북한의 특성을 빼놓고선 최근의 격렬한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을 두남두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 군 당국의 짧은 생각은 대결의 당사자이면서 대화의 상대이기도 한 북한을 너무 모르는 데서 나온 게 아니었나 싶다.
북한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마지노선을 지키는 자제력은 달라야 한다. 국방부가 늦게나마 정상적인 표준 표적지를 사용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은 다행이다. 북한 역시 사태를 악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분량을 늘려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