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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사냥개 논쟁

입력 : 2008-11-14 18:01:25수정 : 2008-11-14 18:01:27

사냥에는 첫째가 개이고 둘째가 다리이며 셋째가 총이라는 말이 있다. 사냥에서 차지하는 개의 역할을 이보다 더 명쾌하게 요약한 것도 없다.

우리 사냥개는 명민하기로 소문이 나 중국의 황제가 선물로 요청한 적이 있을 정도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얘기다. 그럴지니 중국 사신들이 우리 개를 너나 없이 탐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태종 때는 세자가 5명의 사신에게 개 한 마리씩 하사했음에도 만족하지 않자 임금이 이튿날 두 마리씩 더 주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신라시대에는 금 2000냥에 맞먹을 만큼 대접받은 사냥개가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영리하고 충직한 사냥개가 동서와 고금을 뛰어넘어 곧잘 정치 무대의 주안상에 오르는 것은 은유와 풍자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인 듯하다. 사냥은 물론 양들도 썩 잘 돌보는 사냥개가 있었다. 주인은 다른 사냥꾼들에게 사냥개를 칭찬하느라 침이 마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막지 못해 사냥개도 점차 한창 때의 용맹과 힘이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주인은 개를 데리고 사슴 사냥을 나갔다. 늙은 사냥개의 이빨로는 사슴의 숨통을 끊을 수도 없었다. 사슴은 사냥개를 뒷발질로 차 버린 뒤 도망치고 말았다. “이제 아무 곳에도 쓸데없구먼.” 주인은 비참한 꼴을 보인 사냥개에게 욕을 해댔다. 그러자 개가 하소연했다. “제가 젊었을 때 주인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이제 나이가 들어 쓸모가 없다고 욕하시다니요.” 주인은 늙은 사냥개를 내버려둔 채 말 머리를 돌려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우화는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중국 고사와 흡사하다.

한나라당에서 때 아닌 ‘사냥개 논쟁’이 벌어졌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복귀문제를 둘러싸고서다. 대선을 끝으로 사냥이 끝났으니 조용히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경제 위기라는 토끼가 아직 남아 있으니 사냥개가 더 필요한 때라는 반박이 팽팽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결론은 권력다툼이다. 국민들의 고달픈 삶은 뒷전인 채. 후백제 견훤이 패권을 다투던 고려 태조 왕건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생각난다. “교활한 토끼와 날랜 사냥개가 서로 피곤해지면 남의 조롱을 받을 것이고, 큰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버티고 있는 것도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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