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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무능 황제’ 낙인 지우고 ‘개혁 군주’로 본 고종

입력 : 2010-08-13 21:07:11수정 : 2010-08-13 23:53:33



ㆍ식민사관 의한 편견 없애고 파랑의 격동기 국권 지키려 부국강병 등 개혁상 재조명


▲고종 44년의 비원…장영숙 | 너머북스

2010년은 유난히도 기억하고 되새김질해야 할 한국 근현대사 속 사건들의 마디가 지어지는 해이다. 그 절정은 8월이다. 한·일 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것이 100년 전 8월22이었고,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이 65년 전 8월15일이었다. 자연히 읽을거리가 풍성하게 쏟아진다. 지난 100년, 한반도와 일본, 동아시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읽는 것은 결코 철 지난 레코드판을 듣는 것과 같을 수 없다. 강제 지배에 관한 일본 총리의 담화에 담긴 메시지가 한국과 일본에서 논란거리가 되듯 역사는 단순한 과거에 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의 고종처럼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도 흔치 않다. 그것도 ‘망국의 군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다수다. 그에겐 엄한 아버지 대원군과 명민한 아내 명성황후 사이에서 ‘우유부단했던 군주’라는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래서 무능하고 실패한 황제로 낙인이 찍힌 상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식민사학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최근의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단한 개명군주라는 재평가를 받기도 한다.

양 극단을 오가는 시선을 뛰어넘어 한 젊은 사학자가 다면평가에 의한 ‘고종 다시보기’를 신선하게 시도하고 있다. 장영숙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이 바로 그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고종의 정치사상과 정치개혁론 연구>를 쓴 데다 후속 저작을 대부분 고종시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신진전문가다.

그는 우선 고종이 꽉 막히거나 갈대처럼 흔들린 군주가 아니라 유연한 대외인식 속에서 대부분이 오랑캐라며 멀리하던 서양과 일본을 동시에 품으려 했던 왕으로 매긴다. 이와 함께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꾼 군주는 아니었지만 통치규범과 윤리는 유교의 정신적 가치에 의존하면서 서양문명과의 절충을 꾀해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추구한 ‘과도기적 개혁군주’로 평가한다. 고종에 대한 시각이 다층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이 같은 이중적 모습을 든다.

지은이는 고종을 왕후와 처족 민씨들의 꼭두각시로 여기는 관점에도 반기를 든다. 여흥 민씨 일가가 왕후를 매개로 삼아 왕권 위에서 세도로 군림한 게 아니라 처족을 활용하기 위한 고종의 정치적 고단수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한다.

고종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영조와 숙종에 이어 세번째로 장기간 왕의 자리에 있었던 군주이다. 1863년 철종의 뒤를 이어 제26대 국왕으로 즉위한 후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강제 양위됐으니 재위기간만 44년이다. 그는 통치 규범과 윤리는 유교의 정신적 가치에 의존하면서 서양문명과의 절충을 꾀해 나간 과도기적 군주였다.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층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왼쪽 사진은 대한제국 시기 정장을 한 고종황제의 모습, 오른쪽은 고종과 동고동락했으나 45세의 나이로 비명횡사한 명성황후를 위한 장례식 모습. | 너머북스 제공


저자는 여러 사람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고종이 조용한 성격과 침착하고 신사적인 태도를 지닌 인물이라고 규정한다. 매사에 신중한 편이어서 결정을 서둘러 내리지도 않았을뿐더러 자신의 생각을 쉽게 노출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의견을 앞서 피력하기보다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고 귀담아 듣는 타입이었다. 이런 개성이 태평성대에는 안성맞춤이지만 명쾌한 판단력과 결단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격동기에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분석하고 있다.

그가 후반기에 추진한 ‘광무개혁’도 정치체제 면에서 서양의 입헌군주제만 수용하지 않았을 뿐, 각종 사회·경제적 제도의 변화를 추동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고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개화자강정책 가운데 하나는 강성한 군대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부국강병책인 셈이다.

고종은 선왕들 가운데 정조를 이상적인 롤 모델로 여기고 이를 따르려 애썼던 인물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정조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백성을 위한 개혁정치에 앞장섰던 다산 정약용도 흠모했을 정도다. 다산의 <여유당집>을 읽으면서 자신에게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걸 한스러워했다고 한다.

저자가 고종에게 칼을 들이댈 때는 매섭다. 을사늑약이 끝내 강제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선 무기력한 대신들을 개탄했지만 책임을 전가하는 자세였다고 비판한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주한영국공사와 미국공사가 일본에 축전을 보내는 실정이었음에도 고종은 이러한 세계의 질서와 흐름을 까마득하게 놓치고 있었다고 꼬집는다. 결국 고종이 개명적인 요소를 지녔음에도 보수성과 진보성, 전통유지와 개혁추구, 폐쇄성과 개방성 등을 불균형적으로 구현함으로써 과도기의 혼란한 군주로 남게 됐다고 본다. 지은이는 고종을 단순히 ‘망국의 군주’로서만이 아니라 개혁을 위해 애쓴 과정과 동기를 조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고종평전에 가까우면서 흥미로운 인물 평가와 일화들도 적잖게 담아내 한국근대사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새로운 고종시대사’로도 손색이 없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은 지금도 여전히 열강에 둘러싸여 지혜로운 선택이 절실한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새겨야 할 교훈이 많다.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