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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아직도 청산 못한 ‘일제의 잔재’ 근현대 100년사에 ‘멍에’가 되다

입력 : 2010-06-18 17:35:40수정 : 2010-06-18 17:35:47

올해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기념비적 사건이 겹치는 해인 만큼 책동네의 눈길도 자연스레 그곳을 향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기억하고 성찰해야할 만한 중대사건이어서 한해 내내 화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재조명한 역작, 월드컵 축구를 떠올리며 스포츠 민족주의와 일제 식민지 근대를 재발견할 수 있는 수작, 소외됐던 6·25 전쟁미망인 문제를 제기한 노작을 묶어 보았다. 세 책의 저자가 모두 성균관대 교수인 것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다.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서중석 | 돌베개

우리나라 현대 100년사에서 가장 부정적인 역할을 한, 암적인 내부 세력은 무엇이었을까. 거침없이 북한 김일성 집단을 꼽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군부독재 세력을 드는 사람도 있을 게다.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통일·민주세력을 탄압한 이승만 정권을 거론하는 사람도 없지 않으리라.

한국 근현대사 권위자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단연 친일파를 지목한다. 그 가운데서도 경찰과 일제 말기의 친일파는 우리 현대사에서 씻어내기 어려운 해독을 끼친 암적인 존재라고 여긴다. 동족을 짓밟으며 일제에 보여줬던 충성심과 탁월한 생존 능력을 바탕으로 미군정에서부터 유신체제에 이르기까지 권력실세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친일파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적이었음은 물론 반공의 외피를 쓰면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는 사고를 지닌 독버섯 같은 존재였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돌베개)에서 끈질긴 친일파 세력의 폐해와 친일잔재 청산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역설한다. 그는 이 책에서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 했는가’를 일관되게 물으며 역사의 구비구비마다 일제와 친일세력이 거는 딴죽에 몸서리친다.

지은이는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지배자의 국가관과 민중이 갖고 싶어 했던 나라는 확연히 달랐다고 전제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과 해방 이후 민주화운동이 추구하는 바가 같았다고 본다.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것은 이민족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였고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책의 범위는 일제의 지배정책과 독립운동가들의 새나라 구상, 해방 직후 여운형의 국가 건설방향, 남북 주요세력의 국가 건설방안, 이승만의 단정 운동과 반공국가·여순사건, 4월 혁명 이후 새나라 건설방향, 부마항쟁과 박정희 유신국가의 말로, 과거사 청산과 새로운 출발문제 등을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현대사가 어두운 과거만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덧붙인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자랑스러운 역사가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이승만 건국’을 찬양하며,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제정해 기념하고, 건국공로자를 서훈하자는 움직임에 경악한다. 이는 친일파의 위력을 실감케 해주는 일이라고 개탄한다.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역사관이 완전히 뒤집힌 해괴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올해 일제 식민주의, 그 가운데서도 해독이 가장 큰, 반공주의와 결합된 군국주의 파시즘이나 한국형 파시즘을 인적·물적으로 규명하고 청산하는 뜻 깊은 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1만8000원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

천정환 | 푸른역사

1936년 8월10일 새벽 신문 호외를 본 시인 심훈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신문 뒷장에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란 즉흥시를 단박에 써 내렸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남승룡이 3위를 했다는 소식에 마음을 가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장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마이크를 쥐어잡고 전 세계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 부를 테냐??”

심훈의 시는 모든 조선인의 감격과 흥분을 집약한 것이었다. 하지만 손기정은 우승하자마자 전남 나주의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 한글로 단 석자만 적었다. “슬푸다!!?” 식민지 조국의 한을 단 한마디로 축약한 것이다.

이렇듯 일제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들은 스포츠를 통해서도 ‘민족’으로 거듭난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의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푸른역사)는 스포츠 민족주의를 통해 본 식민지 근대의 초상을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그러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그려간다.〈근대의 책 읽기>로 주목받은 바 있는 지은이의 또 다른 ‘식민지 시대 읽기’인 셈이다. 저자는 스포츠를 근대성의 한 표현 양식으로 본다.

지은이는 식민지 시대 조선의 두 신드롬에 각별한 눈길을 준다. 손기정의 마라톤 금메달 획득과 일장기 말소사건 이후 이어지는 엄청난 파장, 1926년 순종황제 서거에 이은 6·10 만세사건이 그것이다.

윤치호, 여운형, 한용운, 이광수, 이상, 김교신, 함석헌 등 전혀 다른 생을 살고 다른 사상을 지녔던 동시대 주인공들이 놀랍게도 의견 일치를 본 사건이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이라고 한다.

민족주의 색채가 가장 분명했던 박은식·신채호 등 대한매일신보 논객들조차 운동회를 크게 보도해 문약성(文弱性)의 폐해를 치유하고 상무(尙武) 정신을 고취하려 했음을 눈여겨봤다.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들은 신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본인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을 주입받으며 살아야 했다. 차별 뒤에는 사회진화론에 뿌리를 둔 비이성적인 멸시가 있었다.

한국의 스포츠 민족주의는 1890년대부터 주조되고 1920년대에 온전히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스포츠 민족주의는 손기정으로 대표되는 일제 시대나 한국 스포츠 발전에 누구 못지않게 애정을 갖고 있었던 박정희·전두환의 군사정권 시절과는 내용이 다르다고 판단한다. 스포츠의 존재환경과 민족주의 구성요소가 변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신문기사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바탕 삼아 내러티브 기사(이야기체) 형태로 구성해 전혀 딱딱하지 않게 읽힌다.

5년 전 출간된 <끝나지 않는 신드롬>을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내용을 고치고 추가한 개정판이다.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