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2-22 16:42:21수정 : 2008-02-22 16:42:26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00년이 지나지 않은 책은 읽지 않는다고 했다던가. 예외 없이 실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구한 세월에 걸쳐 검증된 고전만 탐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리라.

그렇다면 2500년 넘게 숙성된 노자(老子)의 ‘도덕경’은 무라카미의 마음을 얻고도 넘친다. 하지만 ‘도덕경’이야말로 주석과 해설이 올바르지 않으면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다. 게다가 ‘무위자연’에서 노니는 대범무쌍한 이야기여서 따분하리란 선입견이 지배하기 십상이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주석서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겠다. 중국에서만 1500권이 넘는 주석서가 쓰였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길을 따라 노자 곁으로 걸어갔을지 짐작이 가고 남는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삼인)는 수많은 ‘도덕경’ 주석서나 해설서 중에서 가장 쉽고도 재미있는 책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은 엄격한 의미의 주석서가 아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1928~94)이 직접 쓴 게 아니라 그를 스승이자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처럼’ 따랐던 이현주 목사와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어서 소설마냥 편안하게 읽힌다. 유명한 한문학자였던 선친으로부터 배운 장일순처럼, 한학에 남다른 조예를 가진 이목사와 더불어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초교파적 담론으로 원문을 해석하고 풀어나가는 걸 따라가다 보면 법열마저 느낀다. 매 장마다 도교, 유교, 기독교, 불교, 심지어 동학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도가(道家)의 관(冠)을 쓰고 유가(儒家)의 신발을 신고 불가(佛家)의 옷을 걸치니, 세 집안이 모여 한 집안을 이루도다”라고 한 부대사(傅大士)의 문장에 ‘기독’과 ‘동학’을 넣었다고나 할까.

‘…노자 이야기’는 일본이 자랑하는 대표적 석학 모로하시 데쓰지의 독특한 역저 ‘공자·노자·석가’를 연상케 한다. 저자의 탁월한 상상력을 동원해 세 성현의 가상 대담으로 엮은 ‘공자·노자·석가’는 모로하시의 나이 100세 때 펴낸 책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화제몰이를 했던 것 같다. ‘…노자 이야기’는 여기에 예수를 더해 현대의 거목들이 현실 담론으로 감흥 높게 펼쳐가는 쾌작(快作)이다. 덧붙이자면 책이 미처 완성되기 전에 장일순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후반부는 이목사가 이심전심으로 대화하며 마무리지었지만 읽는 이는 전혀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감쪽같다.

‘원주의 예수’로 불리는 장일순은 스스로 노자의 삶을 살았다. 중국에서 ‘노자’를 제대로 읽은 사람으로 손꼽히는 장자(莊子)와 장자방(張子房)은 각기 글과 삶으로 노자를 표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장일순은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장자방처럼 노자의 가르침을 체현한 인물로 추억된다.

스스로를 ‘좁쌀 한알(일속자·一粟子)’이라 일컬을 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삶을 영위해 일반인들에게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석 유영모와 씨알 함석헌에 버금가는 민족의 스승으로 손색이 없는 장일순이다. 민주화운동의 기둥이었지만 훗날 박정희와 전두환조차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친 넓은 가슴의 지성. 학창시절을 제외하곤 거의 치악산 자락의 원주를 떠나지 않은 채 세상의 중심에서 멀찍이 산 은둔자. 지학순 주교의 든든한 동지. 김지하 시인의 둘도 없는 스승. 당대의 지성 리영희 선생이 ‘살아있는 노자’ ‘벗으로 사귀게 된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고 그리워한 분이 바로 장일순이다. 편벽되지 않은 해박과 언제나 낮은 곳으로 임하는 그의 삶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노자 이야기’는 장일순의 그런 삶이 녹아나 노자를 그저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올곧은 삶의 가치를 전도한다. ‘한살림운동’을 새로운 생명운동으로 제창한 그가 진정 깨달음을 실천한 자유인이었음이 은연중에 스며 나온다. 말년의 호를 제목으로 삼은 ‘좁쌀 한알’(도솔)이란 책을 함께 읽다보면 장일순의 삶을 온전히 가늠할 수 있는 일화들이 따사로운 봄볕처럼 다가온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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