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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김정은의 깜짝 방중에 쏠린 특별한 시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4일 중국 방문은 사뭇 뜻밖이고 이례적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고, 당일치기로 접경 도시 단둥만 방문한 뒤 곧바로 귀국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실용외교랄까. 김 위원장이 방중 기간 시진핑 주석과 만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지난해 9월 중국 항일전쟁 승전 80주년 기념행사(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베이징을 찾은 이후 1년 1개월 만이자 집권 후 여섯 번째다.


 김 위원장의 일정은 불과 9일 전 개통한 신압록강대교를 자동차로 건너 항미원조기념관을 참관하고, 중국 권력서열 4위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 회담한 후 버스 공장을 함께 시찰한 게 사실상 다다. 외부 세계에는 전격적이고 깜짝 방문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꽤 오래전부터 계획이 짜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방문한 항미원조기념관은 10월 19∼24일 휴관한다고 지난 9일 공지했다. 이를 유추해 보면 적어도 보름 이상 전부터 김 위원장의 방중 계획이 추진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는 다목적이 있는 것으로 읽힌다. 우선 중국과 전통적인 혈맹 관계를 한층 다지는 일이다. 시기와 장소, 경로가 절묘하다. 10월 25일은 중국이 6·25전쟁 참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기념일이다. 그 76주년을 하루 앞두고 중국을 찾아갔다. 올해가 ‘조중(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 체결 65주년이라는 점도 뜻깊다. 중국이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단둥에 항미원조기념관을 세운 의미도 크다.


 김 위원장은 기념관에서 중국 인민지원군 전사자들에게 헌화하고 친필 문구를 담은 역사 사진을 기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항미원조기념관은 불패의 조중 친선에 대한 고귀한 피의 검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위원장의 단둥·항미원조기념관 방문에는 섬세한 계산이 깔린 듯하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러시아에 파병하고 군사협력을 확대하면서 북러 관계를 유례없이 밀착시켰다. 이게 중국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일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가 중국과 관계 소원으로 이어진다는 인상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항미원조기념일과 신압록강대교 개통은 더없는 호기다. 


 이번 방중의 또 다른 노림수는 경제협력 확대다. 김 위원장이 이 다리를 건너 중국을 방문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중 관문인 이곳을 경제협력으로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로 포장했다. 왕후닝 주석은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계기로 인적 왕래와 경제·무역 협력을 확대해 양국 인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를 먼저 꺼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원래부터 몹시 바라던 바다)인 격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달리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준수한다는 입장이나 북한은 중국에 제재 정책 전환을 원할 게 분명하다.


 북한의 전체 대외 수입에서 대중국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압도적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공식 발표를 보면 무려 98%를 넘는다. 중국이 북한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경제적 후견국처럼 여겨진다.


 북한은 최근 3년간(2023~2025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모두 3%를 넘어 자신감을 얻은 상태다. 반등 흐름은 수년간 이어지던 고질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탈출해 확실한 호황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무기 공급, 파병 대가 등으로 막대한 자금과 자원이 유입된 것이 호황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때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협의가 있었을까 하는 점도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다음 달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이 성사되느냐가 세계적인 관심사여서다. 김 위원장은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네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을 영접한 왕후닝 주석은 중국 권력서열 4위에 해당하는 핵심 인사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정협 주석으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복심(腹心)으로도 알려졌다. 왕이 외교부장도 배석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아닌 권력서열 4위 인사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논의를 한다는 격에 맞지 않는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외교적 상상력을 남겼을 법은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에 관심을 보일수록 김 위원장은 거리를 두면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게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직접 북미 대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중국과의 관계를 과시하며 향후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고위 인사들과 공개적으로 만나고 현지 일정을 소화해 최근 해외에서 무성했던 사망설을 일축하고 확산을 차단하는 효과도 거둔 셈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