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다는 느낌부터 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후반부 핵심 국정목표로 ‘양극화 해소’를 들고 나와서 말이다. 2년 반 동안 양극화를 심화하더니 인제 와서 타개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22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임기 후반기에는 양극화 타개로 국민 모두가 국가 발전에 동참하도록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 첫날인 지난 11일 수석비서관회의 때도 양극화 해소를 천명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치를 기록하자 위기탈출 방안으로 내놓은 카드라는 분석이 그럴듯하다. 윤 대통령이 양극화 불만이 표출됐던 미국 대선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는 말도 들린다. 양극화의 불만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요인이라고 보는 듯하다.
한국의 양극화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비수도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깊어졌다. 각종 지표를 보면 윤석열정부 들어 양극화가 한층 심화했다. 특히 부동산과 가처분소득에서 빈부격차가 벌어졌다. 임금 근로자 소득양극화도 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정규직과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 격차가 174만8000원에 이르렀다. 역대 최대치다.
서울과 지방의 아파트 가격 차이도 양극화가 심해졌다. 지난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주택소유 통계에 따르면 상위 10% 가구가 소유한 평균 주택자산 가액이 하위 10% 가구의 40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양극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통계치다. 우리나라에선 보유한 자산 가운데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양극화 심화 원인으로 부자감세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윤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법인세를 내리고 부동산과 주식 부자의 세금을 깎아주고, 대기업 혜택을 확대하는 일부터 했다. 윤석열정부의 주식 양도소득세 기준 완화로 주식부자 9000명이 감세혜택을 받았다. 정부가 소득세법 시행령을 바꿔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부자감세 정책은 더 남아 있다. 정부가 세법 개정으로 고소득층 세 부담을 5년간 20조원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낮추고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약속했다. 하나같이 부자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다. 고물가 고금리 현상이 오랫동안 이어져 대다수 서민은 실질소득이 줄어들었으나 부자들은 감세혜택을 받아 자산과 소득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기업·부자 감세 여파가 아니라 글로벌 위기 탓이라고 핑계를 댄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경제는 저성장으로 말미암아 양극화가 발생하고 양극화로 인해 저성장이 심화하는 ‘우로보로스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하나금융연구소가 최근 보고서에서 진단했다. 내년의 가장 큰 걱정거리도 ‘저성장이 불러온 불편한 손님, 양극화’다.
감세가 양극화 심화와 더불어 복지축소 재정파탄 같은 많은 부작용을 불러온다는 사실은 검증됐다. 감세가 투자와 소비를 촉진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낙수효과를 윤석열정부가 맹신하는 바람에 양극화가 악화했다. 정부가 믿는 낙수효과는 국제기구에서도 이미 사망선고한 이론이다.
양극화를 타개하려면 정책전환과 돈이 필수불가결하다. 윤 대통령은 둘 다 없이 비법을 만들겠다는 기세다. 민간 중심 역동경제와 건전재정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내년 예산안은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어 양극화 해소 재원을 따로 마련할 방안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윤석열정부 들어 2년간 세수결손 규모는 86조원에 달한다. 역대 최대의 세수 펑크다. 세수 부족으로 내년에도 80조원이 넘는 재정적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내년 초쯤 양극화 해소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할 것이라고 대통령실이 예고했다. 하지만 믿음을 줄 만한 근거가 보이지 않아 기대난망이다. 기존 정책을 고수하면서 양극화를 타개하겠다는 건 형용모순이나 다름없다.
윤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다고 실토했다. 양극화의 기본적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진단해 달라고 참모들에게 주문했다. 본인이 원인조차 모른다니 타개할 카드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나. 웬만한 국민이라면 양극화 원인과 해소 방안의 큰 그림은 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얽힌 양극화 문제에 알렉산드로스 대왕 같은 단칼 해법은 없다. 병을 악화시키고 나서 약이라도 제대로 주면 다행이지만 마땅한 약을 줄 형편조차 못 되는 게 문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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