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범죄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전세계가 한국의 딥페이크 범죄 확산을 걱정할 정도로 심각하다. 영국 BBC는 한국이 딥페이크 음란물 비상사태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가짜 음란물을 생성·유포하는 세계적인 문제의 진앙이 한국이라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는 ‘여성 말고 딥페이크 제작자를 처벌하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써 한국에 훈수를 두었다.
자고 나면 새로운 피해자들의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전세계 딥페이크 성 착취물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딥페이크 음란물 대상 가운데 53%가 한국인이라고 미국 사이버보안업체 시큐리티 히어로가 보고서로 발표했다.
이와 비슷한 통계는 수년 전부터 있었지만 한국정부와 사회에서는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N번방’ ‘서울대 N번방’ 같은 단발적인 사건에 반짝 눈길을 주었을 뿐이다. 피해자는 유명 연예인, 교사, 군인, 언론인,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속출한다. 피해자의 99%가 여성이고 이 가운데 60%는 미성년자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딥페이크 성범죄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되풀이되는 사건이지만 제대로 된 대응이 없으니 핵폭탄이 될 때까지 쌓였다. 가해자들은 죄의식 없이 신기하고 재미있다면서 하나둘씩 만든 자극적인 영상을 SNS로 퍼트렸다. 사진 한장에 650원만 내면 되고 몇초 만에 딥페이크를 어렵잖게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절박한 사태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나라와 달리 정부가 딥페이크 성범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정부와 정치인은 성적 호기심에 그럴 수도 있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심각한 범죄라는 공감이 부족해 경찰의 수사도 미흡했다. ‘어차피 못 잡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적극적인 수사로 이어질 수 없었다.
유포의 중심이 해외 서버라는 이유로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가 직접 찾아 나서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엄청난 ‘N번방’ 사건 때도 수사를 제대로 시작하지 않다가 ‘추적단 불꽃’ 활동가들이 나서 취재하고 가해자를 특정한 뒤에야 수사로 이어졌다. 가해자들은 ‘어차피 못 잡는다’ ‘안 잡는다’는 걸 알아채고 피해자와 공권력을 비웃었다.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법원 처벌은 대부분 솜방망이 수준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10건 가운데 6건이 ‘집행유예’로 끝난다는 통계도 나왔다. 딥페이크 불법합성물에 ‘실제 성 착취 행위가 수반되지는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양형기준 하한보다 낮은 형을 선고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양한 이유를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 ‘범행과 그에 따른 책임을 인정한다’ ‘영리 목적으로 허위 영상물을 편집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등. 딥페이크 성 착취물에 대해 양형기준을 높이고 피해가 제한적이라는 법원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이 때문에 나온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020년 확정한 양형기준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 착취물 제작과 반포 때 기본 6개월에서 최대 1년 6개월까지 선고하게 돼 있다. 영리 목적 반포의 경우도 최대 4년이다. 불법 촬영물 같은 실제 성 착취물 반포가 기본 1년에서 2년 6개월, 영리 목적 반포의 경우 최대 8년인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딥페이크 불법합성물이 크게 늘어난 데는 법적 제도가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날로 지능화하는 딥페이크 범죄를 막기에는 현행법에 한계가 있어서다. 불법 합성물을 만들고 소지해도 ‘반포 등을 할 목적이 없다’고 하면 적발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
딥페이크 불법합성물의 유통을 제한하거나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삭제하도록 하는 규정이 딱히 없다. 정부는 딥페이크 음란물을 소지한 사람까지 형사처벌하는 방안과 제작자 검거를 위해 경찰에 신분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고 나섰다. 그러자 국회는 부랴부랴 법 개정안을 쏟아내느라 호들갑을 떤다. 그동안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플랫폼에 불법 콘텐츠 삭제 의무를 부여하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소프트웨어를 원천적으로 범죄나 음란물 제작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할 수는 없다. 해외 주요국에선 이미 플랫폼의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를 발의하거나 마련해 불법·유해 콘텐츠 차단에 나섰다.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유해 콘텐츠 검열 의무를 규정해 놓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시론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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